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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 Story Oct 20. 2019

날씬해야만 승무원 하나

예쁘고 날씬한 게 일이랑 무슨 상관인데

베트남에서 무슨 일 했냐는 질문에, 혹은 지인이 나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승무원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나는 항상 '그렇게는 안 보이겠지만'이라는 말로 방어를 시작한다. 승무원이라고 하면 예쁘장하고 여리여리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엔 승무원 외모 기준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며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승무원을 도전할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면접 전 제일 빡세게 준비하는 부분이 '다이어트'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취준생 카페에 들어가면 대학, 영어성적, 자격증, 인턴 경험이 스펙이 되지만, 승무원 준비생 카페에 들어가면 키와 몸무게가 스펙이다. 나도 한창 승무원을 준비할 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일주일 만에 오키로 빼는 거 가능한가요?’

 

동기와 함께 게이트 앞에 앉아 대기를 하는데, 어떤 중년의 한국인 남성분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옆 친구는 날씬한데, 이쪽은 좀 덩치가 있으시네요.’ 나는 얼굴이 달아올라 소리쳤다. ‘이거 성희롱 발언인 거 아세요?’ 나만 혼자 있는 자리에서 그랬다면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옆에 있는 동기의 당황하는 리액션에 더 민망해져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받아친 것이다. 그 승객은 우리가 승무원이었기에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속으로만 생각했어야 할 말을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만든 그 무례한 용기는 승무원의 외모에 대한 사회적 잣대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베트남은 조금 다를까? 힘들게 서비스를 마치고 갤리로 들어갔는데, 베트남 동료들이 나를 슬쩍 보더니 ‘얘는 좀 뚱뚱하네’라며 자기들끼리 베트남어로 수군대는 것이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를 지칭하는 ‘cô’와 뚱뚱한 이라는 뜻의 ‘béo’라는 단어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물론 그들은 내가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고 한 얘기지만 나는 그 단어를 한 두 번 들었던 것이 아니었던 지라 귀에 익었다. 한 번은 동료가 너는 다른 한국인 승무원이랑 다르다고 말했는데, 끝까지 듣고 보니 다른 한국인 승무원들은 다 날씬한데 너는 왜 뚱뚱하냐는 말이었다.

  

기내식 메뉴는 분기별로 바뀌고 나는 연어 샐러드가 나오는 시기를 가장 기다렸다. 맛있는 기내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은 나에게 비행의 몇 안 되는 재미 중 하나였다. 좋아하는 연어샐러드를 집어 자리에 앉았는데 동료가 오더니 ‘밤에 그렇게 먹으면 살쪄’라는 충격적인 말을 남기고 갤리를 떠났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때 떨어진 입맛이 계속 유지됐다면 아직까지 다이어트를 하고 있진 않을 텐데. 그 일이 있은 후로 기내에서 밥을 먹을 때 주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깟 살이 뭐라고 내 소소한 재미 하나를 빼앗아 가는 건지. 살 때문에 많은 수모와 에피소드를 겪었지만, 승무원이었던 시절 단 한 번도 다이어트에 성공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매번 실패할 때마다, 그래도 나는 체력이 남들보다 좋잖아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쩔 때는 승무원한테 중요한 건 체력인데 저 마른 애들이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어하며 이유 없이 남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나를 전직 승무원이라고 소개하는 게 아직 부끄러운 걸 보면, 나 스스로도 머리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말도 안 되는 기준에 맞추려 애쓰는 모습이다. 직업에서 외모가 중요한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왜 하필 승무원은 외모에 대한 기준이 생겨난 걸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커가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사회를 보면서 느끼게 된다. 그 변화의 시작에는 항상 문제를 제기하는 누군가가 있다. 당장 사회를 바꾸고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나가면서 내 의식을 변화시킬 작은 불씨를 지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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