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침불가

해도 너무 해

by 글로

맞선을 보고 3개월 만에 결혼한 우리 부부는 대단한 서사가 없다. 밀고 당기기를 하지도 않았고 헤어져 본 적도 없다. 결혼적령기에 만난 조건이 적당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라고 하면 서글픈 얘기인가?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까지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아직 우리는 부부로 살고 있다. 주말부부다. 남편은 금요일밤 손님처럼 온다. 짐을 가득 들고서. 옷가지등과 빨랫감, 온갖 자료를 들고 문에 들어선다.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반가운 건 3초다.


“더 예뻐졌네” 남편이 거짓말을 투척한다.

“돈 안 드는 말이라고 막 쓰지 마. 기분 나빠”

남편이 아내에게 예쁘다고 말했다가 퉁박만 맞는다. 늙어가는 아내가 무어 그리 예쁘겠냐만은 남편은 애써 나를 좋게 보려 한다. 그런데 난 심술이 난다. 안 그래도 기미에, 주름에 거울 앞에 서기 싫은 나에게 던지는 남편의 공갈빵같은 한마디에 조금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몇 시간 운전을 해서 피곤에 절여진 몸일 텐데 언제나 잊지 않는 “더 예뻐졌네”라는 말. 이 말에는 묘한 효과가 있다. 이런 게 세뇌인가? 내 얼굴에 자신이 없는데 옆에서 자꾸 그러니까 ‘나한테도 예쁜 구석이 있나?’하고 들여다보게 되고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옆에 있는 사람의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다. 실험을 했다지 않은가? 사랑스러운 음악을 틀어주면서 키운 나무에는 열매가 많이 열리고 욕만 들은 나무는 썩어간다는 믿기 어려운 결과.

이렇게 나를 말로라도 예뻐하는 남편과 사는 것이 수월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무엇이었다가 부부로 만났을까?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느껴볼 수 없었던 수 많은 감정들이 있다. 이 한 사람으로 인해 우주가 꽉 찬 듯 행복했다가 또 어느 순간 지구라는 별에 나 혼자 있는 듯 외롭기도 하다. 사이가 좋을 때는 한 몸처럼 움직이다가 그렇지 않을 때는 남보다 못하다. 여행을 가면 남편은 꽤나 괜찮은 파트너다. 나에게 모든 걸 맡기고 우선권을 준다. 어딜 가든지 뭘 먹든지 상관없이 다 좋다고 한다. 밤에 돌아다녀도 무섭지 않다. 예전에는 비싼 건 싫다더니 이제는 즐길 줄도 안다.


문제는 언제나 내가 모든 걸 준비해야 한다는 거다. 장소를 검색해서 예약은 물론 짐 싸기,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남편의 역할은 딱 하나. 짐 들고 다니기, 택시 트렁크에 짐 넣기 등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내가 하면 되고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항상 밤에 일어난다. 아무리 5성급 호텔을 예약하고 실내 인테리어가 우아하면 무엇하겠는가? 천장을 뚫을 듯 우렁찬 남편의 코 고는 소리. 내 성화에 병원에 가보았지만 시기를 놓쳐 수술도 소용이 없단다. 우리는 함께 잘 수 없는 부부다. 비싼 방을 두 개씩 예약할 수 없으니 한 방에서 자야 할 때가 난감하다.


나는 갱년기에 여러 증상이 겹쳐 약을 먹고 겨우 잠에 들 수 있다. 남편은 누우면 3초 안에 잠든다. 그런 남편이 밤이 되면 호텔 로비로 나간다. 내가 잠들면 조용히 들어온다. 자다가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 깬다.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이 개운치 않다. 하루면 어떻게든 참아보겠는데 이틀이 넘어가면 슬슬 나의 눈꼬리가 올라간다. 잠을 충분히 잘 수 없으니 입안도 까슬까슬, 성격도 거칠어진다. 말투에 가시가 돋친다. 뭘 봐도 안개 필터를 끼운 듯 선명하지 않다. 남편은 푹 자고 개운한 얼굴로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눈길도 안 준다. 나의 독기 어린 한마디. ‘안 맞아, 안 맞아’ 이제 아이들도 크고 경제적으로도 예전보다는 나아져 구경하고 싶은 곳이 있을 때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 남편만큼 든든하고 편한 존재는 없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나 보다. 코 고는 아저씨와 같은 방을 써야 하는 중년의 아줌마는 매우 괴롭다. 그래도 ‘또 어디로 떠나볼까?’를 고민하는 나를 보면 남편과의 여행에 즐거운 구석이 더 많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