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장품
“엄마, 연말 파티 메인 메뉴는 뭐야? 올해도 집에서 할 거지?”
“당연하지, 올해 메뉴는 샤브샤브”
“와우, 맛있겠다. 준비 같이 해요”
“고마워, 딸”
우리 집은 해마다 마지막 날 가족이 모두 모여 긴 파티를 한다. 한해 수고한 우리를 칭찬하고 내년에 올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딸들이 바쁘고 일을 하니 네 식구 모두 모이기가 연예인 4명 모이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식사도 마치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언제나처럼 나는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가족 앨범. 식구들이 겉표지를 보고 탄성을 내뱉는다. “우와!” “올해 표지는 이 사진이네” 나는 대단한 쇼라도 준비한 배우처럼 마음이 설렌다.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까 기대도 되고 살짝 떨리기도 한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족들은 “와, 이런 사진도 있었네” “언제 이런 걸 찍었어?” “맞아, 우리 저기 갔었지” 하며 한마디씩 한다. “저기 갔을 때 재미있었는데 또 가고 싶네”
올해 있었던 일인데 먼 옛날일인 것만 같고, 아쉬움에 눈빛이 아련해지기도 한다. 서로 예쁘고 멋있다며 립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아쉬워하고 나중에 시집갈 때 자기가 가져가겠다며 미리 입도장을 찍는다. 우리의 일 년은 사진과 함께 정리되고 간직된다. 가끔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앨범을 꺼내보면 불과 몇 년전인데 다른 사람을 보는 듯 내 모습이 낯설다. 사진은 머릿속에서 잊혀진 나의 모습을 일깨워준다.
이렇게 일 년의 사진을 모아 종이앨범으로 만든 지 올해로 10년째다.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어주는 사이트에 들어간다. 배경화면도 선택하고 문구도 삽입하고 사진도 마음대로 배치한다. 보는 눈맛이 시원하도록 페이지 하나에 한 장을 넣기도 하고 어떤 페이지에는 여러 장을 오밀조밀 배열하기도 한다. 며칠 후면 멋진 앨범이 만들어져 집에 배달된다. 각 장마다 우리 식구들의 소소한 생활, 이벤트, 얘기들이 가득하다. 일년살이 축약본. 혹시나 날아갈까 나비 붙잡듯 소중히 한 장씩 담아둔 사진들이다.
글쓰기 동아리에서 ‘하루 10분 글쓰기’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어느 날의 글감은 ‘죽을 때 딱 1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이었다. 이것저것 생각해보아도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음악을 좋아하니 생각나는 것은 ‘피아노? 스피커?’였다. 무겁다. 가져가고 싶은 것이 없는 걸 보니 ‘필요한 것이 이렇게 없었나?’하며 집안을 둘러보게 된다. 한참을 고민하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사진 한 장이다. 아니 두 장이다. 5살 때 엄마와 찍은 사진, 그리고 지금의 가족 사진. 그 외에는 탐나는 것이 없다. 부랴사랴 서둘러 살고 있지만 남는 것 없이 허탈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많은 걸 지니고 있어도 우리 몸 뉠 곳은 겨우 2미터 남짓의 공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무엇을 위해 바쁘고 탐욕스럽게 살았을까? 하나의 질문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대수롭지 않은 물음 하나가 돌진하는 기차를 급정거시키듯 생각을 일시에 정지시켜버렸다.
‘알고 보니 소중한 것이 별로 없구나. 남는 것은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네.’ 내 나이 20대에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을 때 꺼내 보는 어릴 적 사진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귀애를 받고 자란 나는 일찍 돌아가신 엄마가 항상 보고 싶다. 척척한 세상살이에서 엄마만큼 나를 가여워할 사람이 있을까? 그립고 그리워 엄마를 주제로 노랫말을 쓰고 디지털 싱글앨범을 발매했다. 커버 디자인으로 그 사진을 사용했다. 엄마는 그 사진이 후일 딸이 부르는 노래의 커버사진으로 쓰이게 될 줄 아셨을까?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어땠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옛날에는 사진기가 귀했고 기록을 남길만한 도구가 없어 초상화를 그렸단다. 그나마 논 몇마지기라도 갖고 있어야 초상화를 부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눈부신 기술의 발달로 지금의 우리는 핸드폰으로도 사진을 찍어서 남길 수 있지만 천변만화한 세상, 후대 자식들은 우리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시간은 잡을 수 없지만 남길 수는 있다.
아무리 넓은 공간을 가져도 만족하지 않고 많은 것들로 그 공간을 채우며 사는 인간들. 결국 남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우리의 욕망뿐이다. 그 많은 것들은 꼭 필요한 것들일까? 죽음앞에서 가져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결국 남는 것은 사진 두 장이다. 더 가져갈 수 있다면 해마다 만들어놓은 10권의 앨범이다. 나만의 타임캡슐이 되어 먼 훗날 살아온 과거를 알게 해 주리라. 돈으로 살 수 없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물건, 이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연말이 다가오면 ‘올해는 어떤 이야기들로 가족 앨범이 채워질까?’ 마음이 기쁜 분주함으로 설렌다. 앞으로 우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