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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Jun 16. 2022

잃어버린 시간

펜데믹 pandemic

    

   한 달이 지났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해제되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한 강제 의무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쓰든지 벗든지 자율에 맡겨진 것이다. 2년이 넘는 기간에 우리는 얼굴을 가리고 경직된 상태로 살아왔다. 세계를 뒤덮은 팬데믹 때문에 하루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영화나 책으로 접했던 페스트(흑사병) 같은 역병이 문명이 발달한 21세기 현실 세계에 나타난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세상의 중심이 인간이라는 착각 속에서 우쭐대다 된통 혼이 났다. 그것도 하찮은 바이러스로 인류는 무참히 짓밟혔다. 그 속에서 생명을 갖고 노는 거대한 제약회사들의 농간을 알면서도 국가의 권력 시스템은 속수무책이었다. 질병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는 집단들이 생겨났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던 2년 전, 무슨 말인가 하고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들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라고 국가가 강제로 명령을 내렸다. 우리 인성에 반하는 이런 어불성설 語不成說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social animal라고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그 뜻인즉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홀로 살 수 없으며, 사회를 형성하여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함께 어울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동물이라는 의미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얼굴을 닫고 소통을 포기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남에 서로 닫고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므로 진정한 의사소통은 포기해야만 했다. 나는 본래 적응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지금도 코로나가 시작하며 국가가 강제로 명령하던 그날 무슨 말인지 몰라하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인간의 정체성에 반하는 중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이해 못 할 행정명령들이 생성되기 무섭게 하나둘 정착하며 권장되었다. 그럴수록 삶은 건조해져만 갔고, 바이러스 공포가 아닌 불평불만으로 여기저기 삐쳐서 나오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고 지내는 동안 얼굴도, 시간도 잊어버렸다.

  
   그렇게 마스크를 쓰고 사는 삶이 일상화가 되기까지 우리는 자연스레 얼굴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연스럽게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습관처럼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영상으로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직장인들은 각자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음식점에서는 몇 명까지 손님을 받을지를 국가가 정해줬고, 심하게는 명절날도 각 가정에 8명 이상 모이지 말라는 강제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고, 소상공인들에게는 문을 닫는 시간을 강제했기에 여기저기서 도산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민들의 삶은 뒤죽박죽 되어 버렸다.  

  나 아닌 타인은 모두 바이러스 보균자로 설정하고 살면서 혹여나 우리의 영혼은 너덜너덜한 넝마가 되지는 않았을까. 타인들이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불통의 대상이 되어야만 안심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일부러 다가오는 사람들을 피했다. 그러다 보니 눈이라도 마주치면 큰일 나는 사람들처럼 고개를 외면하고 걷게 되었다.     

 

 그 시간을 보내고 살아남은 우리는 후유증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무엇인가가 자라고 있지는 않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는 모른다. 그렇다고 마스크를 해제했으니 다시 이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어쨌거나 마스크도 풀고 거리두기도 인원 제한도 없어지니 사람들의 표정도 한층 밝아졌고 거리에도 마트에도 시장에도 유원지에도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탄압과 억눌림 속에서 활기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런 활기가 바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아직 완전히 종식되진 않았지만, 틀림없이 사라지는 그날이 올 것이다.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이번 일로 절실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길 바란다. 경제활동에 제지를 안 받고,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도 추고, 연인끼리 안아 도보고 뽀뽀도 하고, 골목이 떠나가라  떠들던 술꾼들이 있던 예전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고 살았던 잃어버린 지난 2년의 고통스러웠던 세월을 왜 보내야만 했던가를 그토록 많은 죽음과 고통을 치르면서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던가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 이전의 자연 약탈적인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라고 역병의 형태로 나타낸 신호가 아닐까. 누가 보낸 신호일까? 이번 역병을 제대로 해석해야 하는 몫은 역병을 만들어낸 인간들의 몫일 것이다.

  이번 기회로 우리는 잊고 살았던 그 무엇인가를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절대 세상의 중심이라는 착각 속에서 깨어나 만물과 함께 살아가며 겸손해 지 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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