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ums Aug 13. 2020

숟가락 잃어버린 날

일회용 숟가락으로 떠먹는 궁상

자취방에 단 하나 있던 숟가락이 사라졌습니다. 어제저녁께 단골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켜먹었는데 아무래도 그때 사용하고 빈 그릇과 함께 내놓은 것 같습니다. 딸려 온 플라스틱 숟가락이 싫어 내 숟가락을 사용했거든요. 싱크대 서랍에 플라스틱 숟가락이 포장 그대로 들어있는 것을 보니 틀림없습니다. 혹여나 쓸 일이 있을까 싶어 챙겨두고 도리어 내 숟가락은 내다 버린 셈입니다. 스스로가 한심해서 짜증이 솟았지만 그냥 좋게 생각해버리기로 했습니다. 내 숟가락은 이제 배달 가방에 실려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고요. 이제 숟가락은 중국집 스쿠터가 닿을 수 있는 곳곳에서 사람들의 먹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도 사람들의 밥 먹는 모습을 유심히 본 적이 있습니다. 고시원에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곳은 지금은 찾아보기도 어려울 만큼 낡은 곳이었습니다. 창문이 없었던 나의 방은 불을 끄면 어둠이 넘쳐흐를 만큼 좁았습니다. 얇은 합판으로 된 벽 너머로는 사람들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습니다. 옆방이 텔레비전으로 어떤 채널을 보고 있는지, 전화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속속들이 알 수 있었으니까요. 월 20만 원짜리 고시원이 보장하는 개인의 영역이란 그렇게 보잘것없었습니다. 소음은 쥐가 어둠에 숨어 벽을 갉아먹듯 이쪽으로 침범해왔고 나는 곧 내 방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괜스레 고시원의 공용 부엌에서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밥과 라면이 구비되어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단 한 번도 무엇을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식탁에 멍하니 앉아있거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사람들의 먹는 모습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아가씨도, 새벽녘에 일을 나가는 아저씨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도 모두 다른 모습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대부분은 간단한 식사를 했지만 종종 공용 냉장고에서 끝도 없이 반찬을 꺼내거나 직접 재료를 사다가 찌개를 끓여먹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모두 치열하게 먹고사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각기 다른 표정의 식사를 보면서 감히 그들의 삶의 형태가 어떠할지를 그려보고는 했습니다. 물론 상상의 여백은 어린 나의 편견으로 채워지기도 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만큼 내게는 좋은 자극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했고, 나보다 늦은 식사를 했거든요. 그 시절의 나는 분명 사람과 삶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남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낼 수는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자취라는 이름으로 유폐된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그때의 치열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다못해 직접 밥을 지어먹는 일조차도요.


하는 수 없이 플라스틱 숟가락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넓은 그릇에 오래된 밥과 참기름, 간장을 넣고 밥알을 깨듯 비볐습니다. 밥이 따뜻했거나 계란 프라이라도 하나 올라가 있으면 먹을 만했을 텐데요. 아니면 따뜻한 국물이라도. 사실 자취생이 맛있는 밥을 먹으려면 그만한 수고를 들여야 하는 법입니다. 보통은 그걸 정성이라고 부르더라고요. 하지만 굳이 밥 먹는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스스로에게 정성스러운 편은 아닙니다. 누구나 밥 먹을 때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나던데 어쩌면 궁상은 내 일부인 것도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게으른 나를 타박합니다. 분명 나는 꽤 오래 의욕이 없었고, 오늘도 한없이 기분이 처지는 날입니다. 하지만 공연히 목이 메는 건 밥이 너무 꾸덕꾸덕한 탓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무 살 초입의 내가 나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