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닳음의 씁쓸함

by 낸시코야

매주 목요일, 독서 토론모임을 하고 있다. 토론을 하다 보면 회원 각자의 해석이나 꽂히는 문장이 너무 다르다는데 놀라고 그런 예상치 못한 타인들 시선에 갑자기 나를 마주할 때가 있다.

이천시청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자주 들린다. 장서는 적지만 자주 오가는 길목에 있어 잠깐씩이라도 들러 신간을 훑어보거나 책두레(관내 공공도서관에 소장된 책을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가까운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는 서비스)로 신청한 도서를 찾아간다.

도서관이 있는 시청 1층 중앙홀에는 테이블을 펼쳐두고 봉사단체 기부 후원 서명을 받거나 1일 법률상담을 하곤 했다. 이것저것 기관 소식을 알리려고 세워둔 스탠딩 배너 옆을 지나 펼쳐놓은 테이블을 돌아 걷다가 벽면에 붙은 구인정보 게시판을 무심코 올려 봤다.

00 회사 /사무 행정 학력: 초졸~ 박사

‘이건 무슨 일인데 학력이 이래….’ 하고 아랫단으로 눈길을 옮기는데,

-단 45세 미만

피식 웃음이 났다.

‘뭐야, 45세가 박사보다 중요한 거야.’

처음엔 내 눈을 사로잡은 광고주의 위트가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45세가 구인시장에서 고용 한계선인가 보다. 내가 일하던 분야는 아아니었지만, 노동시장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한 나이가 되어가나 생각하니 운신(運身)의 폭이 좁아진 듯 갑갑한 기분이 들었다. 그 날 이후 며칠 동안 이 공고가 내 일상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젊은 시절은 미숙한 경험치로 앞날이 불안했다. 나이가 들며 점점 사라질 줄 알았는데 잠깐의 평지 끝에 벌써 ‘The End’ 안내판인 건가.

혼자만의 생각으로 품어지지 않아 근처 사는 친구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청에서 본 얘기를 꺼냈다.

“우리 나이가 벌써 이런가?”

“그렇다니까, 요새….” 되레 친구도 한 수 거든다.

“언니네 냉면집 하잖아. 대학에서 강의하던 분이라며 면접을 왔는데 쉰이 넘으니 이력이 소용없다더라”

“뭐…. 그 정도야”. 나이가 정말 비수(悲愁) 구나.

지금껏 사회에서 1등을 놓고 경쟁하며 살아왔다. 어찌 보면 나의 경쟁자지만 다 잘됐으면 좋겠다는 성숙함이 스며드는 중년의 내가 됐는데 정작 내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니 누구의 앞날을 빌어주어야 하나. 그 공고는 일부의 경우였겠지만 내게도 학력이나 능력이 소용없어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약 없는 구직 공간을 지나서 환승하고 싶다’라는 젊은 청춘들의 외침이 실감 났다. 내가 원하는 건 현재를 유지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미래가 있는 삶, 나도 청년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그것을 바라고 있는데 말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지도를 하는 나는 강의 계약 때문에 면접을 자주 본다. 평가받는 자리는 아무리 자주 해도 정도의 차이일 뿐 긴장이 함께한다. 올해 초에도 공공도서관 면접 대기실에 앉았었다. 5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강의 중인 곳이지만 2월이면 1년 수업을 위한 강사면접을 새로 봐야 했다. 작년에 본듯한 강사도 더러 보였다. 같은 곳에서 일하지만, 강사들은 본인 수업 때만 왔다 가기 때문에 실제 서로 얼굴 볼 기회는 면접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셈이다. 강의당 한 강사와 1:1 계약이라 다수가 지원한 이곳에서 누구는 붙고 누군가는 떨어진다. 경험에서 오는 여유 때문인지, 책으로 순화된 받아들임 때문인지, 서로 살려는 공생의 맘인지 여하튼 면접장의 분위기는 긴장보다는 다소 화기애애했다. 서로 주력하고 있는 강좌에 관해 묻고 답하기도 하고, 자신이 활동하는 강의 기관에 초대하기도 했다. 더러는 서로의 독서모임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간 많은 면접을 봐 왔지만, 공공도서관 강사 면접장은 모르는 사이에도 서로를 인정하는 흔치 않은 장소다. 경력과 자신감 없이는 이곳에 지원한다 해도 강의를 감당할 수가 없다. 대상이 정해지고 강사를 초빙하는 특강과는 다르게 공공도서관의 정기강좌는 강의가 개설돼도 신청 인원이 모집인원의 70% 미만이면 폐강이 된다. 무작위로 신청하는 다수의 선택을 받아 강좌가 개강한다 해도 1년간 폐강 없이 유지하는 것은 강사의 몫이다. 해마다 치러야 하는 공개경쟁은 강사들에게 긴장을 주고 분발을 요구했다.


오전에는 주민센터에서 몇 년째 꾸준히 강의하고 있다. 처음 한 개의 강의로 시작해서 네 개의 강좌로 늘어날 때까지 오후에 하나, 둘 늘어가는 강의 수가 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 밥을 못 먹어도 좋았었다.

여러 기관을 상대하는 프리랜서 강사를 하다 보면 시간과의 사투를 벌이게 된다. 강의가 촘촘하면 나도 모르게 운전이 급해지고 강의 시간에 맞추다 보면 여유는 뒷전이 된다. 강의가 너무 적어도 다음 수업과 간격이 벌어지는 만큼 온전히 쉴 수 없는 대기가 길어지니 이런 날 또한 편하기는 틀린 날이다. 매번 계약의 연속이라 연속성에 따른 불안정도 있게 마련이다.

강의와 이동이 반복되는 직업이라 방광염이 걸리기도 하고 목을 많이 쓰면서도 병원 갈 짬이 없어 이상 증상을 미루다 입원하기도 했었지만 10년 가까이 강의가 없는 날 거의 없이 바쁘게 살았다. 들쑥날쑥하긴 해도 수업은 꾸준히 채워져 이런 불규칙한 시간을 제법 오래 보냈다.

프리랜서 강사들은 수업을 제안하고 계약을 반복해야 하는 일상의 연속이지만 퍼즐 맞추듯 채워나가는 내 일들을 좋아했다. 일의 특성상 차로 이동하는 시간도 상당했지만 나는 운전하며 이동하는 그 시간도 좋아했다. 무엇보다 강의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역량을 발휘하는 만큼 전문성을 인정받는 시간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선생님, 면접 발표 났는데, 요번에 선생님 강의가 줄었어요. 저도 너무 속상해요. 섭섭해하지 마시고요….”

얼마 전 면접 본 도서관 담당자의 전화였다.

자신만만했던 면접이 끝난 올해 공공도서관에서 주어진 강의는 결과적으로 한 개였다.

‘좀 적은데, 이렇게 되면 오전 11시 강의하고도 너무 벌어지고….’

몇 년 동안 3개의 강좌를 진행하던 기관이라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3강에서 1강이라….’

프리랜서는 10년이 넘는 강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늘 경쟁하며 내 자리를 계속해서 만들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변수야 늘 함께하지만 하던 강의를 내어주는 이런 결과를 받고 보니 내 일에 대한 생각이 늘어나는 요즘이다.

‘이제 마냥 젊은 나이도 아닌데…, 어쩌면 내 의사보다 더 빨리 좋아하는 일을 못 하는 시간이 올 수도 있겠구나’

두려움, 인생 3막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