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때문에 공공도서관. 학교도서관, 작은 도서관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하는 사서들을 만날 일이 잦다. 사서는 책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오히려 일에 치여 책을 볼 새도 없이 지내는 듯 보여 직업으로는 눈이 가지 않았다. 얼마 전 수업 때문에 방문한 학교에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담당교사의 소개를 받고 인사하려 보니 지난 시절 이웃이 서 있었다.
늘어진 바지에 질끈 묶은 머리, 긴장감 없는 허연 얼굴, 지난 시절 우리가 떠올랐다. 서로 육아를 버거워하던 모습으로 놀이터에서 간간이 보곤 했던 그녀였다. 풋내기 엄마들이 육아로 버거워하던 시기에 잠시 한 아파트에 살다 이사로 그냥 그렇게 잊혔다. 한참이 지나 직업전선에서 만나니 정장 입은 낯선 모습이 어색했다. 그도 잠시, 육아로 지치던 시절을 뚫고 살아남은 대견함에 너무 반가웠다.
교실에서 수업을 끝내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침 학생들이 없어 커피믹스 한 잔씩을 앞에 두고 도서관 너른 책상에 마주 앉았다.
“일은 할 만해요?”
둘 다 고3 입시생을 둔 워킹맘이라 애틋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저는 만족해요. 샘도 전문성도 살리고 사서 하시면 정말 잘할 것 같아요” 툭 내놓은 말이었지만 육아 동지였던 그녀의 진심이 담긴 표정이 나를 붙잡았다.
‘사서라….’
요즘 내 일에 대한 생각이 많던 터라 그간 거리를 두었던 ‘사서’를 직업으로 염두에 두고 생각하게 됐다.
학부에서 다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교육대학원에서 교직을 이수한 다음 교사 임용시험까지 진행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휴대전화를 집어 문헌정보학을 검색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10년에 한 번씩 막이 바뀌는 나의 인생 3막이 꿈틀댄 것이다.
대장정의 첫걸음을 내딛으려 조건에 맞는 학부부터 찾아보니 주말 과정으로는 안양 대림대학교와 서울 숭의여대에 문헌정보학과가 개설되어 있었다.
40대 후반, 너무 늦은 나이에 새로운 자격을 갖추기 위한 학문의 길에 들어서기를 주저했던 마음도 있었다. 며칠을 숙고하며 정리한 생각의 언저리는 이러했다.
‘아이들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며 석사까지 진행해야 한다. 세 아이의 교육비가 적지 않은 만큼 내 학비는 자력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결혼 20년 차의 위력을 가진 이때가 나의 부재로 인한 가족의 불만도 잠재울 수 있다. 그러니 어쩌면 지금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적기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문헌정보학과로 진학을 결정했다. 설렘인지 희망인지 내가 원하는 길로 들어선 앞으로가 기대된다. 올해 도서관에서 줄어든 강의 시간이 마치 새길을 준비하라는 예정된 공강처럼 생각됐다.
중년이란 시기는 감정만 생각하면 더없이 좋은 나이다. 갈등 상황에 유연해지고 이쯤 살고 보니 결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는 담대함도 생겼다. 삶이란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게 된다. 작은 계기로 인생의 항로가 달라지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바로 지금 존재할 뿐인데, 나중으로 가본 적이 없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지금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거 아닐까. 삶이 예상 못 하는 결과들로 채워지는 과정의 연속이라면 더 이상의 걱정보다는 ‘현재를 즐기자’라는 다짐이 생긴다.
일과 병행하며 공부할 수 있는 과정을 알아내고 얼마 안 돼 입학 접수 날이 다가왔다. 일주일간의 접수 기간 마지막 날인 토요일 아침, 접수처로 출발했다. 1월의 쌀쌀한 날씨에 지하철을 타고 3번이나 갈아타느라 2시간도 더 걸려 명동역 출구로 올라섰다. 휴대전화에서 길 찾기를 누르고 찾아가야 하는 방향을 찾아 쪽 고개를 들고 보니 헉, 바로 앞 언덕에 저것은 남산타워! 앞으로 내가 3학기(1년 반) 이상 다닐지도 모르는 숭의여대는 남산타워와 붙은 듯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명동역에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자 얼마 전 TV에서 개그맨이 ASMR을 녹음한다며 소개했던 왕돈가스 가게들이 쭉 펼쳐져 있었다. 인도를 넘어 도로까지 가게의 TV 출연을 홍보하는 사진들이 가득한 입간판이 즐비했다. 점심인데도 호객행위가 한창이었다. 앞으로 나에게 펼쳐질 미정의 시간 때문일까. 나를 향해 외쳐대는 그 소리가 아직은 내 허기를 채울 소리가 아닌 듯 멀게만 느껴졌다.
12시 10분이었다. 5층에 올라 과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일손을 놓고 직원 두 명이 총총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저, 접수하러 왔는데, 책상 위에 두고만 가면 안 될까요. 멀리서 오느라 헤매서 그러는데….”
“안됩니다. 1시부터 오후 접수예요. 그때 오세요”
빠르게 답하고는 후르르 내 앞을 지나쳐 가버렸다.
‘융통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네...’
조금 늦은 건데 야박하게 구는 것 같아 감정이 욱했다.
공부를 시작하는 부담이 남아서였는지 직원의 처사가 치사하단 생각에 순간, 입학이고 뭐고 그냥 가자 싶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버렸다. 로비를 가로질러 현관 밖으로 나오려는데 한 무리의 여성들이 회전문 안으로 우르르 뭉쳐 들어왔다. 상기된 얼굴, 두리번거리는 몸짓으로 보아 초행길임이 분명해 보였다. 대학교에 다닐 나이의 학생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욕심 없는 눈빛이지만 설렘이 찬 표정들이다. 아마도 나와 같은 공부를 하러 온 사람들인가 보다.
‘접수하고 갈까…….’
그녀들을 보고 나니 당차게 밖으로 내딛지 못하고 회전문 앞에서 머뭇거리며 심호흡을 했다. 순간 열을 좀 받고 내려왔을 때는 못 느꼈던 한기가 코로 스며들며 정신이 들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80%는 두려움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하던데. 아……, 접수하고 가자’
3시간이나 걸려 여기까지 와서도 감정에 휘둘려 터무니없게 돌아서려던 객기를 버텨내는데 걸린 시간은 채 10분이 안 되었다. 당장 위로받고 안주하기를 원하는 나를 경계하며 사무실 문밖에 서 있다가 빨리 접수를 끝냈다. 변화의 고단함을 피하려 걷던 길로 되돌아가는 변덕을 부릴까 봐 말이다.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이유를 굳이 들자면, 접수처의 점심시간에 걸려서라고 말해야 할까? 내 선택의 결과가 시간 낭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힘든 과정을 하면서까지 3막을 준비할 필요가 있나 하는 안일함이었다고 고백한다.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
성공도, 실패도, 후회도, 감격도
그 뭐라도
시작이 없이는 어째 볼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