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위에 못 보던 리모컨이 있었다. 시커멓고 긴, 일반적인 티브이 리모컨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우리 집 것과는 분명 다른, 처음 보는 리모컨이었다.
자세히 보니 리모컨에는 맨 위에 전원 버튼이 있었고 그 아래로 상하좌우 화살표 버튼과 빨간, 파랑, 노랑, 초록 버튼이 있었다.
리모컨을 집안 여기저기 갖다 대며 전원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베란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지금은 쓰지 않는 놀이터 모래바닥에서 거대한 로봇이 솟아올랐다. 여기저기 녹이 슬고 칠이 벗겨진 로봇은 움직일 때마다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성큼성큼 걸어와 우리 집 베란다 앞에 멈춰 섰다. 로봇은 정확히 5층 높이였고 난 로봇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지하실 백열전구와 같은 흐릿한 눈빛을 가진 로봇은 그 뒤로 저녁이 될 때까지 우리 집 베란다 앞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그날 밤, 8시 뉴스 중에 긴급속보가 나왔다. 한강에 괴수가 출몰했다는 것이었다. 한여름 열대야를 피해 한강 둔치에 있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고, 경찰과 군부대가 투입 중이지만 역부족이라고 했다. 드론 촬영으로 카메라에 찍힌 괴수는 거대한 파충류처럼 보이는 이족보행 괴생물체였다.
난 티브이를 보다 베란다 쪽을 바라봤다. 로봇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어둠 속에서 본 로봇의 눈빛은 아까와 달리 밝아진 느낌이었다. 낮에 발견했던 리모컨을 찾았다. 다시 보니 전원 버튼 옆에 외부 입력 버튼이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티브이 화면이 어두워졌다 다시 밝아졌다. 화면에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내 모습이 비쳤다. 로봇의 시선이었다.
아래쪽 화살표 버튼을 누르자 꿈쩍도 안 하던 로봇이 끼익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리모컨을 조작하며 로봇을 움직여봤다. 색깔 버튼은 주먹과 발차기였다.
로봇을 멈추고 눈을 바라봤다. 로봇도 나를 바라봤다.
한강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난 다시 리모컨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