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소설] 횡단보도

by 홍윤표

아침 8시. A는 오늘도 출근을 위해 그 횡단보도 앞에 섰다.
거기에는 이미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 3명과 20대로 보이는 여성, 30대와 50대로 보이는 남성 둘이 일열로 나란히 서있었다.
A는 오른쪽 맨 끝에 서있는 30대 남성 옆에 합류했다.
남성이 A를 보고 목례를 하자 A도 짧은 목례로 답했다.
학생들은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20대 여성은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매며 각자 준비를 했다.
다들 준비를 마치고 심호흡을 하고 있자, 신호등 잔여시간표시장치에 숫자가 표시됐다.
3, 2, 1
초록불로 바뀌고,
일곱 명은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A와 30대 남성은 횡단보도의 흰 줄만 밟으며 탁탁 앞으로 나아갔고, 50대 남성과 여학생들도 그 뒤를 따랐다.
20대 여성은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흰 줄을 밟으며 나아갔다.
A가 횡단보도의 삼분의 일쯤 왔을 때, 검은 아스팔트 바닥에서 흰 줄 사이로 거대한 촉수들이 튀어나와 일행을 덮쳤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피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여학생 둘은 그만 촉수에 잡혀 아스팔트 바닥 아래로 끌려갔다.
사람들의 얼굴은 더욱 굳었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중간을 막 지났을 때, 이번엔 머리 위에 있던 차량 신호등이 일행의 머리 위로 길게 뻗어왔다.
신호등의 빨간 불에선 화염이. 노란 불에선 산성 진흙이, 초록불에선 가시넝쿨이 쏟아졌다.
분주해진 사람들은 또다시 이리저리 피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공격이 끝났을 땐 이미 A와 20대 여성밖에 남지 않았다.
둘은 마른침을 삼키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몇 걸음만 가면 횡단보도가 끝난다.
그리고 마지막 공격이 시작됐다.
보행자 신호등 초록불의 사람 모양이 뛰쳐나와 두 사람의 앞을 막았고,
A와 여성은 2인 1조가 되어 사람 모양과 결투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사람 모양의 거센 공격을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신호등의 잔여시간표시장치가 10초를 세기 시작했다. A는 초조해졌다.
A와 여성이 눈빛을 교환한 후, 사람 모양의 발차기를 피하면서 등 뒤로 돌아 각자 양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당황하는 사람 모양을 번쩍 들어 횡단보도 밖으로 던졌다.
사람 모양은 아스팔트 속으로 떨어졌고, 두 사람은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그들 뒤로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었다.
잠시 후 버스가 왔고 A와 여성은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는 이미 피투성이의 승객들이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자 버스가 출발했다.
긴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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