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by 홍윤표
카메라: OLYMPUS OM-1 / 필름: Fujicolor C200 / 일자: 26.03.

필름 카메라를 찍다 보면 항상 첫 롤은 반쪽이 됩니다. 필름을 새로 넣고 카운터가 1이 될 때까지 레버를 돌리고 셔터를 누르고를 반복해야 하는데, 이때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필름이 이렇게 반쪽짜리 사진을 만듭니다.

이 반쪽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이런저런 것들을 찍곤 합니다. 이 날은 아이와 공원 가려고 나가는 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찍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아이의 얼굴이 가려졌습니다. 찍히지 않은 아이의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웃고 있었던 거 같은데. 제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반쪽 사진은 찍힌 부분보다 찍히지 않은 부분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삭제된 공간은 상상으로 채워야 합니다. 상상은 필연적으로 기억을 길어 올립니다. 저 때 무슨 얘기를 했지? 아이의 기분은 어땠지? 난 무슨 말을 하며 셔터를 눌렀지?

기억은 분명 왜곡되고 부정확할 겁니다. 그래도 그날의 공기를 기억하려고 애쓰는 동안 눈은 사진에 머무릅니다.

사진은 우리의 기억을 머금고 있습니다. 눈으로 사진을 꾸욱 누르면 기억이 배어 나올 것 같습니다. 추억이 된 기억.

사진의 찍힌 부분이 과거의 우리를 담은 자리라면, 사진의 나머지 반쪽은 과거를 기억하려는 지금의 우리에게 할당된 자리입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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