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감기니까.
옷을 단단히 입는다. 날씨는 계속 추워지고 봄에 가까워 올수록 바람은 날카로워진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찬 바람이 목과 코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와 나의 온기를 낮추고 몸을 떨게 한다. 춥지 않으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 옷을 단단히 입었지만 바람은 나보다 섬세한 면이 많기에 틈사이로 들어와 나의 곁을 맴돈다. 마치 불행처럼.
누구나 자신의 마음은 소중하다.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고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도 없으며, 그것을 깨끗하게 떨쳐버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맑은 마음은 둥글고 너무나 가벼워서 나를 살짝 기분 좋게 만들고 금방 사라진다. 하지만 여기저기 치이고 울퉁불퉁한 날카로운 마음들은 쉽게 마음속에 박히고, 쉽게 뺄 수가 없다. 급하게 빼내려 할수록 마음을 잡은 손에 더 깊은 상처가 나서 결국 흉이 진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면 둘수록 깊이 박혀서 나를 잡아먹는다. 그렇게 우울이 찾아온다. 마음의 감기가 찾아온다.
우울감은 늘 나에게 달라붙어있었기에 [우울=기분이 좋지 않음]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나도 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기에 나아져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그렇게 나를 방치하다 보니 때때로 들었던 우울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져가며 점점 자주 찾아왔다.
정신적인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잘 느끼지 못하다가 신체적으로 그 문제가 나타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겪었던 우울증의 신체적 증상은 이러했다.
첫 번째는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인데 매일 아침과 밤, 특히 혼자 있을 때 이유 없이 눈물이 나왔다. 어떠한 말을 듣지도, 무엇을 보지도 않았지만 그냥 눈물이 나왔다. 올라온 감정은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았고 그것은 눈물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하루에 1~2시간씩 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었는데 그때는 매일 눈이 부어있었다.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는 상태에서 급속도로 변하는 감정으로 인해 지하철 역에서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고, 친구를 만나러 가다가 눈물이 나와서 최대한 참으며 약속을 취소하고 작업실로 도망친 후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눈을 뜨고 감는, 하루를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두 번째로 섭식장애가 왔다. 이건 공황장애를 겪으며 같이 온 증상인데, 약 반년동안 밖에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저 속이 좋지 않은 줄 알고 위에 관련된 약들을 먹었었는데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내가 겪은 증상들이 섭식장애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시에 외부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작업을 했을 때라서 식사시간이 오면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던가 식사를 하고 왔다던가 하는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다. 유일하게 집에서만 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바쁠 때는 하루 끼니를 건너뛰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불면증이다. 사실 위에 두 증상들은 지금 굉장히 많이 나아졌는데 불면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솔직히 체감상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다. 수면제를 처방받아서 먹어보기도 했고, 멜라토닌도 먹어보고, 하루를 정말 바쁘고 피곤하게 살아보아도 잠에 들기까지는 몇 시간이 걸리며, 잠에 들어도 2~3시간 뒤에 깬다던가 아니면 질이 아주 나쁜 잠을 잔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약을 먹으면 잠을 잘 수는 있지만 잠을 잔다고 해도 개운하지도 않고 잠이 깨지 않아서 오히려 하루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현재는 최대한 수면제를 먹지 않고 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면서 삶의 의욕을 잃었었다. 이유 없는 삶을 살고 이유 없는 시간을 보내며 이유 없는 하루들과 축축 쳐지는 날들을 보냈었다. 그런 날들을 보내면서 정말 원초적인 질문이 들었다.
‘나 왜 살지?’
이 질문의 끝은 ‘굳이 살아야 하나?’로 마무리가 된다. 아무리 꿈이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도 정신과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마음에 닿지 않는다. 노래를 하는 것도 즐겁지 않은 상태가 왔을 때 정말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옵션은 다시 나아가던가, 다 포기하고 주저앉던가 둘 중에 하나였다. 어찌 됐든 살아야만 했다. 버티고 이겨내고 싶었다. 아픈 상태로 삶을 마감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삶에 매달렸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약을 먹으면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시간이 늘어갔고 밖에서 식사도 가능해졌지만 약에 대한 부작용도 있었다. 잠이 오지만 불면증도 함께 온다던가, 섭식장애는 나아지고 있었지만 식욕이 없어진다던가 하는 굉장히 불친절한 부작용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날들보다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안정된 날들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 부작용들은 불편함의 축에도 들지 못했다.
나는 행복보다 평온함을 찾고 싶었다. 웃지 않아도 괜찮으니 울지만 않았으면 했다. 남들에게 일상적인 것들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한번 좌절하고서야 알았다. 과한 꿈을 꾸지 않게 되고 욕심이 줄어들게 된 것도 아프고 난 후 일상을 찾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평온함을 찾으면서 작은 일에도 너무나 감사했다. 나아질 수 있음에 행복했다. 나도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살고 싶어졌다. 정말 열심히 그동안 내가 놓쳤던 것들을 찾으면서 살아가고 싶어졌다.
사실 나는 아직 약을 끊지 못했고, 약 6년째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 약은 바뀌거나 줄지 않았지만 우울증은 우울감이 되어서 가끔씩 찾아오는 친구가 되었고, 이제 더 이상 아침과 밤에 이유 없이 울지 않는다. 밖에서 밥도 잘 먹고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즐거운 시간들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약도 끊고 조금 더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예전의 나를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토닥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더 큰 행복을 바랄 수 있는 용기도 생길 것 같다.
정신적인 아픔은 모든 것들을 무너지게 하지만 무너진 조각들을 다시 쌓으면서 잊고 있던 것들을 찾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좌절과 아픔이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한 번만 일어나 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우울감과 우울증, 그리고 여러 정신적 아픔들을 겪었었고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으며 마무리를 해보려 한다.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어느 순간 우리 앞에 닫혀있는 문이 나타난다. 그 손잡이를 돌리는 것조차 힘이 들고, 돌려서 연다고 하더라도 그 너머가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의 한 발자국의 힘은 강하니 꼭 열어보고 넘어가 보길 바란다. 행복하진 않더라도 나아질 수는 있고, 우리의 목표는 살아가는 것이니까.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