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평함에 대하여.
-불공평함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내가 서울에 와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외제차였다. 시골은 부자집 친구와 가난한집 친구의 구분짓기가 그렇게 크게 되어 있지 않아서 빈부의 차이를 느끼기가 어려웠다. 다 비슷한 학원을 다녔고, 학군 같은거 없이 집 가까운 학교를 다녔다.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도 약했다. 그냥 아파트 사는 친구, 주택사는 친구 정도.
제주도에서 외제차를 보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여서 어쩌다 눈 앞에 현대,기아 마크가 아닌 낯선 로고를 달고 있는 외제차가 지나가면 다 함께 놀랐다.
20살, 개강하고 학기 초. 내 기억을 사로잡고 있는 강렬한 기억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대학교 정문을 올라가고 있는 노란색 포르쉐였다. 갓 상경한 나에게 그 모습은 정말 생경했다.
확실히 주목받을만한 그림이었다. 신입생들의 설램이 넘실거리는 대학교에 멋들어진 스포츠카에 올라탄 또래 친구의 모습.
참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대학교 언덕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고 있는데 친구들이 말했다.
"이야. 우린 평생 저런 차 못타겠지. 부럽다. 부모 잘 만나서 좋겠다"
나는 그 말에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스무살, 이제부터 인생시작인데 왜 벌써 "우리는 평생 못한다"라는 전제가 깔리기 시작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한가지 목표를 정했다.
20대가 넘어가기 전에 내 능력으로 사람들이 우와하는 외제차를 타고 대학교 정문을 넘어가 보겠다. 라는 유치한 목표
지금 생각하면 참 일차원적인 생각이었지만
여전히 그 목표는 다른 형태로 나에게 유효하다.
그렇게 6년이 지난 뒤,
열정에 기름붓기를 하게되면서 많은 강연요청이 들어왔다.
대외활동은 돈은 되었지만, 정작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갖추지 못한 내가 누구한테 꿈과 목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최대한 자제하고 있던 시기.
제주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요청이 왔다.
"xx고등학교" 제주도에서도 시골에 있는 그 학교는 내가 제주도에 살때는 흔히 말하는 문제아 학교로 유명했다. 온갖 소문이 난무하는, 크로우즈 제로에 등장할 법한 학교였다.
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또 그 학교 학생들에게 내가 제주도에 살았으면 볼 수 없었을 더 커다란 '육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학교에 가자마자 그 학교의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이고, 오셨다고 고생이 많습니다. 여기 애들은 세상에서 제일 못나고 불쌍한 애들이에요. 태도가 좋지 않더라도 신경쓰지 마세요."
확실히 애들이 거칠고 화끈했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니
아이들은 여느 청소년들과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생 특유의 새파란 건강함이 나에게 기분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참 안타까웠던게 있다면 그 녀석들의 자기객관화였다.
'여기 나와서 뭘 하겠어요, 우리 이미 망햇어요'
고작 17,18 살 애들이 너무 잔혹하게 이미 스스로에게 붙어있는 딱지들을 인정하고 있었다.
대학 못간다고 인생 망한거 아니라고, 나도 지금은 제적당한 고졸신분이라고, 홍대 놀러오면 클럽 양주테이블 내가 다 쏴줄테니 꼭 잊지말고 성인이 되어서 보자고 얘기하며 아이들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난 서울로 올라왔다.
비행기타고 가는 길.
학교에 들어섰을 때, 선생님의 얘기가 찜찜하게 남았다.
"아이고, 오셨다고 고생이 많습니다. 여기 애들은 세상에서 제일 못나고 불쌍한 애들이에요. 태도가 좋지 않더라도 신경쓰지 마세요."
그래서 나는 앞으로 시골의 고등학교 강연요청은 되도록이면 하자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두달 정도 뒤였나? 마찬가지로 어떤 고등학교에서 강연요청이 들어왔고 외진 곳에 있는 학교길래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지금 처한 상황이 절대 너의 미래를 한계짓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로 강의를 준비해갔다.
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가 완전히 잘못 생각했음을 알았다.
그 학교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보다 건물이 좋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건강했고 예의발랐으며, 무엇보다
커다란 꿈을 꾸고 있었다. 매우 구체적으로.
"선생님 저는 영국으로 유학가서 국제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인턴십은 UN에서 하고.."
그날 밤 나는 '불공평'이라는 단어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것.
부모님의 도움으로 새파랗게 젊은나이에 외제차를 탈 수 있는 것.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되는 것
비싼 과외를 받는 것.
명확히 얘기하자면 이런건 불공평함의 본질이 아니었다.
불공평함은 환경에서 온다.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개인 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그 사람들이 어떤 얘기를 들려주는가.
결과적으로 주변인들에게 듣는 말과 조언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이 개인의 가치관과 자기인지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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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나는.
내가 얼마나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를 스스로 상기시키고 억지로라도 커다란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불공평한 환경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환경이 내 생각에 어떤 부정적인 제한을 두는지 의식적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못해'라는 생각을 가지면 거기까지 밖에 못큰다.
열정에 기름붓기가 사회에 기여하며 매력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자본주의 세상의 커다란 나무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내가 그리는 멋진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무조건 될 수 있다.
되든 안되든.
될 수 있다 확신해야한다. 강박적으로라도.
20살, 포르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저 차를 살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 나는 포르쉐가 없다.
운전면허가 없고 그렇게 중요한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포르쉐는 이제 나에게 상징적인 의미다.
'우린 평생 못탈거야" 그때 그 순간이 상기된다.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기억이다.
그 때 그 포르쉐를 보며 했던 누군가의 말에 반응한 내 마음속 저항감이 도전을 하게 만들었고, 작은 성취들을 지속적으로 쌓아나가는 즐거움에 대해서 깨닫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어쩌면 나에게도 있었을 너무 이르게 스스로에 대한 한계를 정의해버리는 큰 실수를 안할 수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인생의 실패를 모두 내가 처했던 환경탓으로 돌리는
중년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다음과 같이 행동해야 할 것이다.
1. 물질적 불공평함을 받아들인다. (이건 중요한 것도, 불공평한 것도 아니다)
2. 반항심을 잃지 않는다.
3. 내가 깨달은 것을 아이들에게 나눌 수 있다면 최대한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