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프리랜서처럼 살기

와인을 먹다.

by 표시형

-우리는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 존재인지, 또 얼마나 초라하고 약한 존재인지.

새벽 5시다. 나는 잠들었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몰랐어서 화들짝 놀랐고 다행히 늦지 않았다.
카톡방에는 내 친구들이 하루를 정리한 글들로 꽉 차있고, 난 이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도 빠짐 없이 글을 적어야 한다. 그게 날 일어나게 만들었다.


거래처와 미팅을 끝내고 재선이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정말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완전 금주에서 아주 가끔 술을 마시기로 정정했던 터라 편하게 마셨다. 우리는 더 이상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
소주는 쓰고 독해서, 자꾸 씁쓸하지 않은 인생임에도 씁쓸하게 느껴져 푸념을 하게 만든다.
대신 와인을 먹었다. 달콤하고 맛있었다. 어렸을 때 와인을 먹었을 때는, 달콤한 술인줄 알고 마셨는데 씁쓸해서 싫었다. 지금 와인을 먹으면, 술임에도 달아서 좋다. 내 혀는 같은데, 이제는 와인이 달다.


달콤한 술을 마시면서, 우리는 앞날을 고민했다. 사소하게는 사무실을 어디로 옮길지 길게는 회사의 비젼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우리가 얼마나 초라하고 약한 존재인지, 우리가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 존재인지에 대해 두세 시간 가량을 얘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행복한 술자리었다. 이렇게 좋은 술과 괜찮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건, 분명 일을 하고나서부터 얻게된 행운 중 하나다. 젊은 날 즐길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싶다.


우리의 술자리는 특징이 있다. 그건 굉장히 솔직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술자리를 통해서 우리 관계는 단순히 비지니스 파트너 그 이상의 관계로 돌아간다. 나랑 재선이형은 정말 친한 형동생 사이이고, 술자리를 통해서 이 관계를 잊지 않는다. 서로의 고민이나 일을 하며 느낀 점, 감정적인 경험들을 교환하고 자연스레 그 대화 속에서 회사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비젼들이 정리된다. 오늘 나온 이야기들은 참 유익하고 개인적으로 좋았다. 그것들을 정리하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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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오만해 질뻔했다. 사람들이 굉장히 우리를 치켜세워줬기 때문이다. 강연도 들어왔고, 몇번 했다.
사람들이 박수쳐주고 조언을 구했는데, 그게 좋았다. 한시간만 이야기해도 수십만원의 돈을 받으니 금상첨화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그 불안감의 이유는 심플했다. 우리가 뭐라고. 그리고 이런 얘기가 정말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었다. 우리는 강연을 다니는 것을 멈췄고 본업에 집중했다. 남에게 함부로 조언하지 않는 것. 우리의 미숙함을 진짜로 인정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정말 '늙기 전'까지 지켜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신념 강한 꼰대가 되기보단,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멍청이고 싶다. 난 진심으로 강요가 싫다. 내가 싫은건 남이 좋게 느끼든 나쁘게 느끼든 하기 싫다. 그 결과가 어떻든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의미 없다. 우리는 과정을 통해 경험하고 결과를 통해 기뻐한다. 두 가지 다 충족되었을 때, 삶에 후회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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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은 화려해 보이거나 엄청나 보이는게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실망하곤 한다. 전형적으로 평범한 대학생들이니까. 세련되 보인다던지, 똑똑해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디에 가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오히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사람들은 우리에게 조언해주고 편하게 대해주었다. 나쁘게 말하면 좁밥으로 보고 무시하기도 했다. 이건 결과적으로 봤을 때 정말 좋은 점인데 이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우리와 맞는지, 계속할 수 있는지, 뭘 배울 수 있는지를 보고 매일 저녁 공유했다. 각자 따로 일을 할 때에도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 사람의 태도가 어땠는지를 공유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모두 빛과 암흑이 존재 했고, 닮고 싶은 사람과 닮기 싫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판단에 있어서 돈과 성공은 커다란 척도가 아니었다. 이건 정말 중요한 점인데, 내가 기억해야할 점이기도 하다. 돈과 성공이 크다해서 그 사람에게 좋은 냄새가 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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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걸 좋아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미팅을 할 때 느껴지는 '기분'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별다른 얘기를 안하더라도 굉장히 에너지 강하고 우리와 잘 맞는다는 기분이 든다. 또 누군가는 굉장히 큰 기회와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맘에 안들고 불편한 느낌이 든다. 이때 중요한건 그러한 기분들을 공유하는 것이다.
공유하고 파다보면 틀림없이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우리가 계속 일을 진행할지 말지를 결정할 중요한 단서가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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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가 굳이 필요할까? ' 요새 든 생각은 내가 대표가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아니 팀에 대표가 필요할까라는 생각이다. 우리 회사는 대표들이 모여 일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직함 보다는 '역할'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크리에이터 디자이너 에디터, 직함 보다는 오히려 역할에 자부심을 느끼고 확실한 색깔을 드러내려 최선을 다했을 때 슈퍼 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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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의 쾌락을 놓쳐서는 안된다. 돈을 벌면 비싼 밥을 먹어도 되고, 가끔은 좋은 술을 마시면서 분위기 좋은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참 좋다. 우리가 비싼 밥을 먹어봤자, 좋은 술을 먹어봤자. 사치에 'ㅅ'자도 아닌 수준이니까. 이 순간을 위해 돈을 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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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봤을 때, 올해 돈을 벌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모두 도움이 되었다. 작년에는 내년에 뭘 해야될지 상상이 안됬다. 어떤 시장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일해야 할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정해야 했고, 정한곳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래서 일단 '돈을 벌자'라고 러프한 목표를 잡았고 우리는 올해 총 매출을 기대 이상으로 올렸다.

크진 않지만, 그 매출이 완전히 자체적으로 창출되었다는 점을 높게 산다. 누구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 아래에서 만들어낸 돈이 아닌, 완전히 우리가 창출해낸 가치로 돈을 벌었다.
이건 굉장히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년에 우리는 어느 시장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내야할지 알고 있다.
분명 작년과는 다른 시각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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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미국에는 기획자라는 직함이 없다한다. 왜냐면 생각은 누구나 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기획자가 될 수도 있고 개발자가 기획자가 될 수도 있다. '기획자'만큼 말뿐인 직함도 없다. 내 생각이다. 결국 '어떤 베이스'의 기획자가 되느냐가 정말 중요하고 내가 기획한 것을 어디까지 스스로 구체화 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올해를 지나면서 느낀점은 나는 '크리에이터' 혹은 '카피라이터' 베이스의 기획자라는 점이다. 광고적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깔려있고 '네이티브 애드' 개념으로 모든 기획에 들어가고 메시징을 구성하고 만드는 편이다. 올해 초 중순 까지는 항상 내 특장점이 뭘까 고민하고 그게 없는것 같아서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대표 명함을 떼더라도, 기획자라는 말이 없어지더라도 날 표현 할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에는 이 색을 더 짙게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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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명의 직원을 거느린 외로운 대표가 되고 싶지 않다. 작은 회사더라도 커다란 가치를 가지고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싶고, 조그마한 테이블 주변에 둘러 앉아 편하게 농담을 던지면서 웃는 표시형이 되고 싶다.
진심으로 행복하고 싶다. 행복은 별다른게 아니다. 사소한거에 웃고 사는 그게 행복이다.
돈은 많이 벌고 싶다. 난 맛있는 식사를 정말 좋아하니까 매일 맛있는 것을 먹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돈을 못버니까 그 사람들 밥을 사주고 싶다. 좋은 차, 비싼옷, 큰 집은 내 관심사는 아니다.
한옥에 살고 싶은 욕심은 있다. 한옥에 작은 마당에서 가끔은 친구들을 초대해 고기를 구워먹고 싶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한기를 느끼면서 마당에 쌓인 눈을 보고 싶다. 이때 커피를 타줄 여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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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작 26이란걸 명심하자. 조급할 때가 많다. 나는 빠르게 가고 싶다. 한입에 먹을 수 있는건 한입에 먹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보면 자책하는 삶을 살게 될 때가 많다. 내 게으름을, 내 나태함을 너무 나무라지 말자. 난 26이다. 자책하는 시간에 그냥 다시 시작하는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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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사람들에게 잘하자. 세상을 변화시킬 놈이라면 주변주터 둘러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감사한 생각이들면 정말 제대로 감사표현을 하고, 좋은 사람이 생기면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내 곁에 남아줘있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감사함을 표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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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꼭 챙기자. 이게 제일 중요하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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