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발이 닿은 그 땅도 그곳 하늘만큼 포근하길.
눈부신 하늘, 애처로운 영혼 Dar es Salaam, Tanzania
드넓게 펼쳐진 초원. 그 위를 달리는 얼룩말. 유유히 걷는 기린들. 그 뒤로 무섭게 노려보는 사자의 매서운 눈빛.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쓰며 사냥을 하는 원주민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위로 사냥감이 익어가는 동안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
'아프리카' 하면 동물의 왕국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피의 영상 혹은 원주민의 삶을 떠올렸다.
승무원이 되기 전까진 말이다.
중동항공사에 입사하고 새롭게 알게 된 건 아프리카의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프리카 대륙의 크기만 해도 어마무시하고 그 넓은 지역이 동서남북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니 아프리카 안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겠는가.
첫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비행. 나의 첫 아프리카로의 비행지는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이었다. 비행 중 손님들도 조용하시고 날씨도 평온해서 평소보다 평화롭다고 느끼며 그곳에 도착했다.
기내 정리를 마치고 비행기 문 밖으로 나서자 푸르른 하늘이 나를 반겨주었다. 하늘이 다 똑같을 것 같지만 나라마다 하늘색도 하늘의 높이도 다 다르다.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해서 본 하늘은 다른 곳의 하늘보다 드넓었다. 뻥 뚫린 푸른 하늘에 크림색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짐을 찾아 버스를 타고 비행의 피로감에 눈이 스르르 감기려고 할 때쯤 '똑똑' 버스 창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려다보니 까무잡잡한 피부의 소년, 소녀들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크루버스를 따라와 동냥을 하는 어린아이들의 크고 맑은 눈 아래로 그들의 맨발이 눈에 들어왔다. 활활 타는 아스팔트 위에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낯선이에게 손을 내미는 아이들. 그 아이들 뒤로 보이는 푸르른 하늘이 야속해지는 순간이었다.
가방을 보니 가진 것이라곤 한국 돈과 카타르 돈뿐이었다. 다른 크루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현지 화폐가 없었던 크루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보다 끝내 고개를 숙였다. 나 또한 별 수없이 다시 출발하는 버스와 함께 그들을 향한 시선을 거둬야 했지만 이미 공허해진 마음은 쉽사리 거둬지지 않았다.
티브이에서 아프리카의 어려운 아이들이 나오는 장면을 본 적은 많지만 실제로 그 아름다운 눈을 가진 아이들이 도로 위에 서서 구걸을 하는 건 처음 봤다. 그것도 맨발로, 그 뜨거운 길 위에서 동냥이라니.
비행을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번쩍번쩍 화려한 곳들에 가보며 감탄만 하다 그 아이들을 보니 지구에 존재하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이렇게도 다른 모습일 수 있구나 실감했다. 어느 나라에 태어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차이를 직접 눈으로 보니 알 수 없는 착잡함에 가슴이 답답했다. 물론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내면의 행복이 꼭 비례한다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것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을 거란 생각을 하니 알 수 없는 세상의 이치가 야속했다.
그런 내 맘도 모른 채 바닷가 옆 호텔에서 바라본 해 질 녘 풍경은 장관이었다. 아름다운 하늘이 이리도 찬란히 반짝이는데 그 하늘 밑 아이들의 모습은 눈물 나게 짠하다니. 여전히 그곳에 도착해서 마주한 첫 풍경이 잔상으로 남아 도통 서글픔이 가시지 않았다. 불그스름한 노을이 마음껏 자태를 뽐내는 풍요로운 하늘을 보며 그 하늘 밑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들에게도 찬란한 희망의 빛이 닿기를 조용히 기도했다. 그것 말고는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그것 조차 미안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끊임없이 기도한다. 타는 듯한 아스팔트 위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길. 그곳의 그 광활한 하늘처럼 그들의 앞날도 풍요로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