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즐거운 사무실
지하주차장에 총무과 직원이 지키고 서 있었다. 오늘은 불시 출근점검과 보안점검을 하는 날인가 보군, 지각을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어제 퇴근하면서 사무실 책상 발치에 둔 반입 불가 전열기가 떠올라 겁에 질려 사무실로 올라왔다. 나는 재작년에도 반입 불가 전열기를 켜놓고 퇴근을 했다가 회사에 불을 지를 뻔해서 입건될 수도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옆자리에서 야근을 하며 연기를 발견한 직원이 없었더라면 나는 뉴스에 나왔을 지도 모르겠다. 그 일로 우리 회사에서는 한동안 전열기 사용 금지 쪽지와 안내 방송이 여러 차례 전파됐다. 당시 우리 과장님은 안내방송이 나올 때마다 나에게 찔리지? 하며 나의 죄를 상기시켜 주셨다. 그 이후 퇴직 때까지 절대 전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이곳 생활이 익숙해지자 마음이 포곤하게 느슨해져버린 나는 몰래 꺼내버린 것이었다. 퇴근할 때 그걸 숨겼어야 했지만 미처 생각을 못했다. 이젠 영영 봉인할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실무관님과 앞자리 계장님이 나를 딱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내 캐비닛을 가리켰다. 그곳엔 마치 주차위반 스티커처럼 커다란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캐비닛 미시정(기록방치)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이내 총무과로부터 확인서(경위서)를 제출하라는 연락이 왔다. 사건기록이 들어있는 캐비닛은 꼭 잠그고 퇴근해야 한다. 꼭 잠그는데 어제는 발레학원에 급하게 가느라 잊어버린 것이다. 그 와중에 전열기는 끄고 가서 회사에 불을 지르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고, 2년 전 실화죄로 썼던 경위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또 한 번 전열기 사용이 걸리면 나는 굉장히 곤란한 처지가 됐을 터였다. 보안점검을 돌았던 직원이 책상밑의 전열기는 못 본 것인지, 한 번에 두 가지나 지적하면 너무 가혹해서 봐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전열기 지적이 없는 것이 몹시 다행이라 나는 기쁜 마음으로 확인서(를 가장한 경위서)를 작성했다.
상기 본인은 평소 사무실 직원 중 가장 마지막에 퇴근하는 직원으로서, 사무실 복사기 등 모든 전원 차단 및 출입문 시정 조치 등 점검을 하였으나, 2025. 12. 15. 18:00경 예약해 둔 일정이 있어 급하게 퇴근을 하며 평소 성실히 하였던 캐비닛 시정 조치를 망각하고 퇴근하였습니다. 사건기록이 보관된 캐비닛 시정 및 보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추후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유의하겠습니다. 말이 확인서지 사실상 반성문이다. 이름을 적고 서명을 해서 총무과에 보냈다.
큰 일을 치르고 나자 앞자리 계장님이 해맑게 말씀하셨다. 내가 까뭉이랑 산책을 하다가 천 원을 주웠는데 소고기를 사 먹을 거야. 천 원으로 소고기를 어떻게 사 먹나요. 내가 복권으로 바꿨지. 짜잔. 길가에 떨어진 돈을 주워 가지셨다고요? 점유이탈물횡령을 하셨군요. 저는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2백 원짜리 과자를 사 먹으려고 5백 원짜리 동전을 냈어요. 그러면 3백 원을 거슬러 받아야 하는데 문방구 아저씨가 거스름돈 백 원짜리 3개 중 실수로 5백 원짜리 하나를 섞어주는 바람에, 저는 5백 원을 냈는데 과자도 사고 오히려 7백 원을 돌려받은 거죠. 저는 문방구 아저씨께 정직하게 5백 원을 잘못 주셨다고 돌려드렸고, 아저씨는 착한 아이라며 저에게 과자 하나를 더 주셨어요. 그 이후 저는 커서도 길에 떨어진 돈을 줍지 않고 착하게 살고 있답니다.
이때 실무관님이 귀여운 양 인형 얼굴의 담요 선물 박스를 들고 나타났다. 옆방 부장님께서 2025 범죄예방 한마음대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으신 거라고. 예쁘고 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쓰는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달려갔다. 너무 귀여웠다. 이건 검사님들께만 지급되는 거라고 했다. 옆방 부장님은 실무관님께 그걸 주셨다. 나는 당장 우리 부장님 집무실에 박차고 들어갔다. 책상 언저리에 그 예쁜 양 담요 크리스마스 선물 박스가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부장님은 무슨 일인지 한숨을 쉬고 계셔서 선뜻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일단 후퇴했다. 부장님이 물을 뜨러 우리 사무실에 오신 순간 나는 작업을 시작했다. 부장님 옆방 김 부장님은 귀여운 양 인형 담요를 실무관님 주셨대요. 그래서? 너무 부럽다고요. 본인은 분홍색 담요 큰 거 있잖아. 있는 사람이 더하네. 나도 무릎이 시리다고. 부장님은 옆방 부장님처럼 귀한 직원에게 귀여운 양 인형 담요를 줄 생각이 없어 보이셨다. 아니면 집에 있는 딸들에게 줄 생각이시거나.
나는 잔뜩 토라져서 저는 형사 6부로 돌아가고 싶어졌어요. 형사 6부로 돌려보내주세요. 하고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나가는 내 등 뒤로 앞자리 계장님은 우리 부장님께 그냥 6부로 보내버리세요 하셨다. 잠시 후 복귀한 나는 계장님께 부장님이 뭐라셨냐니까 나를 보낼 수는 없다고 하셨다고 했다. 이후 나는 평소에 잘 가지도 않던 부장님 집무실을 자꾸 찾아가 귀여운 양 인형 크리스마스 선물 박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록을 퍽 소리 나게 두었고 부장님이 왜? 하고 물으면 아니에요. 하고 나가버렸다. 내 집요한 압박에 굴복하신 부장님은 마침내 그 귀여운 양 인형 크리스마스 선물 박스를 들고 와 내 책상 위에 놓아주셨다. 나는 귀여운 양 인형 크리스마스 선물 박스를 손에 들고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수사관이에요. 부장님은 우주 최고세요. 점유이탈물횡령범 앞자리 계장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마침내 강취에 성공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