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ssembly] 유괴

by Ubermensch








알록달록한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무리 지어 장난치며 나오는 남자아이들, 손을 꼭 잡거나 서로서로 팔짱을 낀 여자 아이들. 아이들은 마치 참새처럼 재잘거렸다. 와글거리기도 했다.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의 차가 학교 앞에 줄지어 있었다. 학원 차들도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요리조리 움직이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다 마침내 그 애를 발견했다. 사진으로만 본 적 있던 아이였지만 학교 앞 쏟아지는 아이들 틈에서 그 애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추운 겨울인데, 외투를 안 입고 있었다. 어딘가 생각에 푹 잠겨 투명한 나비라도 따라가는 듯 비뚤비뚤 걷고 있었다. 나는 그 애에게 곧장 걸어가서 하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칭칭 둘러주며 말을 걸었다.



- 안녕? 너 웅이 맞지? 교실에 외투 놓고 왔구나. 춥겠다. 이모는 아빠랑 같은 회사에서 일해. 웅이 엄마 아빠가 급한 일이 생겨서, 웅이 좀 데리고 놀아달라고 부탁해서 온 거야. 같이 가자.


-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어. 나쁜 사람들이 많대. 이모 처음 보는데.


- 웅이 동생 이름 철이지? 이모 철이랑도 만난 적 있어. 볼 이렇게 통통하고 계단 세는 습관 있잖아. 웅이는 철이 별로 안 좋아하지? 웅이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은 달이고.


- 어, 맞아. 그거 어떻게 알았어?


- 달이 데려다준 것도 이모야. 회색 쥐처럼 생긴 아기고양이. 지금은 다 컸겠네. 처음에 분홍색 이동장에 데려갔잖아. 그 이동장도 이모가 빌려준 거야. 그 안에 남색 담요도 있었고. 그것도 이모 거.


- 진짜? 어쩐지 아빠가 다시 가져가고 새로 샀어. 남자 고양인데 분홍색은 좀 그렇다면서.


- 여기 사진 봐봐. 달이 데려간 날. 너희가 좋아한다고 아빠가 이모한테 보내주신 거야. 이제 이모 이상한 사람 아닌 거 알겠지?


- 응 그렇네. 이제 알겠어. 그럼 우리 어디 가?


- 웅이 뭐 좋아해? 일단 이모 차 타. 안전벨트 잘 매고. 이모가 운전을 잘하는데 가끔 다른 차들이 시끄럽게 빵빵거릴 때도 있어. 근데 너무 신경 쓰지는 마.


- 응.


- 그리고 웅이 핸드폰 있어? 한번 보자.

- 왜?


- 그냥 좋은 거 쓰나 보게.


- 여기 이건데 엄마가…. 아악! 그걸 왜 던져! 내 폰!!! 으아아앙!


- 소리 지르지 마. 귀 아파. 울어봤자 소용없어. 웅이 폰 방금 지나가는 차에 밟혀서 깨졌어. 이모가 더 좋은 거 새로 사줄게. 그만 울어.


- 엄마 아빠가 나 데리러 가라고 한 거 거짓말이지!!!!


- 아니야. 진짜야.


- 어디 가는 거야!!! 나 내릴래!!


-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면 죽어. 웅이 죽고 싶은 거 아니지? 그리고 차 문 잠겨있잖아. 가만히 좀 있어봐.


- 으아아아앙ㅇ 엄마…. 어헝엉ㅇ엉ㅇ


- 웅아. 이모가 약속할게. 웅이 집에 무사히 돌아갈 거야. 이모랑 조금만 같이 놀자. 어차피 학원 가기도 싫잖아. 웅이 친구도 별로 없지? 이모가 재밌게 해 줄게. 웅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울음 그쳐봐. 응?


- … 하고 싶은 거? 다?


- 응. 하고 싶은 거. 다. 웅이 뭐 좋아해?


- 응, 닌텐도 스위치랑,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 포켓몬…. 엄마가 매일 못하게 해.

- 그거 하러 가자. 웅이 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해도 돼.


- 진짜?


- 응.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준다고 했잖아.


- 학원 안 가고?


- 응. 학원도 학교도 안 가도 돼.


- 그래도 돼? 엄마 아빠가 걱정할 텐데.


- 엄마 아빠가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며칠 동안 어디 멀리 다녀오셔야 된다고 했어. 그동안 이모랑 놀고 있으면 돼.


- 철이는?


- 철이는 아직 어리니까 데려갔지. 웅이는 다 컸잖아. 그리고 웅이 철이랑 같이 노는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


- 응….


- 철이 엄청 귀엽고 착하던데 웅이는 왜 동생 별로 안 좋아해?


- 그냥 귀찮아.


- 이모도 동생하고 별로 안 친해. 꼭 동생하고 친하게 지내야 하는 건 아니야. 그럴 수 있어.


- 그래? 엄마는 동생이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던데.


- 굳이 안 그래도 돼.


- 이상하다. 이모는.


- 웅이도.


- 그건 그래.


- 이모 게임 할 줄 모르는데 웅이가 알려줄래?


- 응 별로 안 어려워. 어떻게 하냐면….



나는 해안가 근처로 운전을 해서, 닌텐도가 있고 게임시설이 잘 갖춰진 방을 잡아 아이와 밤늦게까지 게임을 했다.



- 이모 진짜 바보다. 왜 이렇게 못해? 계속 져.

- 으 열받아! 웅아. 이모랑 자리 바꿔. 그 자리가 잘 되는 것 같아. 이쪽 자리가 이상해!


- 그거 아닐 것 같은데. 바꿔줄게. 여기서 해봐. 그냥 이모가 못하는 것 같은데.


- 다시 해. 이기는 사람이 소원 들어주기 하자.


- 푸하하하. 이모 또 졌다. 이모 진짜 바본가 봐.


- 너 말 조심해. 혼나!


- 왜 거기서 거기로 가. 진짜 못한다.


- 이제 하기 싫어졌어. 너 혼자 해.


- 휴. 이모 삐졌구나. 그래도 소원 생각해 둘 거야. 꼭 들어줘야 해.


- 그래 알겠어. 웅이 배고프지 않아? 맛있는 거나 시켜 먹자. 뭐 먹고 싶어?


- 음. 햄버거!

- 치킨도 시킬까?


- 응 좋아!


- 잘 먹네. 그렇게 잔뜩 묻히고 먹으면 어떡해 아기처럼. 이리 와봐. 이모가 닦아줄게.



우리는 배가 터지도록 먹고, 웅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질릴 때까지 봤다. 아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 이제 씻고 치카포카하고 와. 이모가 팔베개해줄게.



달그락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물소리가 한동안 나더니, 아이가 물기를 뚝뚝 떨어트리며 말끔해진 얼굴로 나왔다.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주고 미리 챙겨 온 잠옷을 입혀주었다.



- 잘 씻었어? 양치도 잘 하구? 아 해봐.


- 아.


- 잘했어. 이리 와.


- 언제까지 여기 있어?


- 음 두 밤이나 세 밤? 네 밤?


- 내 핸드폰은 왜 던진 거야?


- 귀찮잖아. 엄마가 웅이한테 공부 잘하고 있는지 물어보거나 학원 가라고 할 수도 있고.


- 그건 그래.


- 대신 이모가 재밌게 해 줄게. 웅이 엄청 똑똑하다며. 공부도 잘하고.


- 맞아.


- 그렇게 막 열심히 할 필요는 없어. 웅이같은 애들은 원래 머리가 똑똑해서 공부를 잘하는 거거든.

- 어떻게 알아?


- 이모도 그런 사람이야. 웅아. 우리 내일은 동물원에 가보자.


- 거기 공룡도 있어? 나 공룡 좋아하는데.


- 아니 공룡은 없어. 엄청 오래전에 멸종됐거든.


- 멸종이 무슨 뜻이야?


-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


- 그렇구나.


- 다른 동물들 보러 가자. 안 사라진 동물들.


- 그래.


- 웅이 화가 날 때 있지. 아빠한테 들었어.


- 응….


- 화가 많이 나?


- 많이 나.


- 이모도 웅이만 할 때 그랬어.


- 왜?


- 웅이랑 비슷한 이유로.


- 사실 어른이 되고도 그럴 때가 있어.


- 나도 그렇겠네.


- 그럴 거야.


- 이제 코 자자 웅아. 내일 동물들 보러 가려면.


- 응 잘 자 이모.


- 웅이도.


나는 아이의 마른 몸을 꼭 껴안고, 아직 물기가 남아 촉촉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는 이내 새근새근 고른 숨을 쉬며 잠이 들었다.



- 이모 아직도 자? 일어나.



웅이가 먼저 일어나서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웅이를 와락 껴안고 아이의 보드라운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 이모는 잠만보였네.


- 응, 이모는 잠만보야. 조금만 더 자도 될까? 이모 너무 졸려서.



우리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동물원으로 갔다. 열 살 남자아이의 옷은 미리 준비해서 트렁크에 잔뜩 실어놨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외투를 단단히 여며주었다. 아이의 부모는 내가 이 아이를 데려가리라는 생각을 꿈에도 해본 적 없을 것이다. 그 가족과 나는 개연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아이는 동물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풀을 씹어먹는 코끼리를 보다가 나는 아이에게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이야기를 읽어본 적 있는지 물었다. 아이는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동물들을 한참 구경하다 카페에 갔다. 딸기 요거트 스무디와 라떼를 시켰다. 노트에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모자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려서 아이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게.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그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 나 뭔지 알겠다.


- 뭔데?

- 이건 코끼리야.


- 다리가 안 보이는데 왜 코끼리라고 생각해?


- 코끼리가 어디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 우와 웅이 대단하다! 천재야. 이따 밤에 이모가 어린 왕자 책 읽어줄게.


- 응. 좋아. 난 천재야.


- 맞아. 웅이는 천재야.



그날 밤에도 우리는 게임에 몰입했다. 아이는 게임 속 캐릭터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화면 속 생명체가 된 듯 현실에서 이탈해 있었다. 아이는 학교도, 학원도, 가족도 떠올리지 않는 것 같았다.



- 웅이 맨날 안고 자는 인형 있다며.


- 이모가 그걸 어떻게 알아?


- 이모는 웅이 아빠랑 잘 아는 사이라니까. 웅이 이야기 많이 들었지.


- 우리 엄마 아빠는 맨날 뭐라고 해. 다 큰 남자애가 왜 인형을 가지고 노냐고. 갖다 버리래.


- 이모는 다 큰 어른인데도 인형을 안고 자는데? 여기는 인형이 없으니까 대신 웅이 껴안고 잤잖아.

- 그렇네.

- 웅이 집에 있는 인형 생각 안 났어?


- 응 안 났어. 왜 안 났지? 이모하고 같이 자서 그런가 봐.


- 이모도 인형 생각 안 났어.


- 웅이는 언제 화를 내고 울어?


- 화가 날 때.


- 누구한테?


- 친구들이나, 엄마 아빠나, 동생. 그때그때 달라.


- 막 소리도 질러?


- 막 소리도 질러.


- 그럼 사람들이 뭐라고 해?


- 나한테 뭐라 하거나, 나랑 말 안 해.


- 그럼 웅이는?


- 더 화가 나.


- 무슨 마음인 줄 알겠다.


- 이모가 어떻게 알아?


- 이모도 그랬거든.


-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


- 마음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이야. 특히 웅이처럼 생각이 커다랗고 미로 같은 아이는.


- 이모는 알아?


- 알지.


- 어떻게?


- 이모도 어릴 때 웅이처럼 화를 많이 내고 엉엉 우는 아이였거든.


- 이모도 혼 많이 났겠다.


- 혼 많이 났지.


- 우리는 특별하고 복잡해서 그런 거야. 그러면 보통 사람들한테는 이상해 보이거든.


- 그런 거야?


- 응. 그런 거야. 사실은 그 사람들이 바보야.


- 나도 그런 것 같아.


- 이모가 어린 왕자 읽어줄게. 재미있을 거야.


- 좋아.


- 웅아, 길들인다는 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야.


- 책임이 뭔데?


- 자기가 한 선택을 인정하고 감수하는 거.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 웅이가 뭘 했는데, 잘못한 것 같아서 불편하고 무섭고 도망치고 싶을 때 있잖아?


- 응.


- 그럴 때 그 자리에 있는 거야. 도망치지 않고. 누가 뭐라 하더라도 거기 그대로 서 있는 거.


- 그건 어려울 것 같아.


- 힘들지. 어른들도 힘들어해.


- 갑자기 그 얘기는 왜?


- 장미가 불쌍하잖아.


- 웅이는 이다음에 책임지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어. 그럴 수 있겠어?


- 모르겠어.


- 그럴 수 있을 거야. 이모는 웅이 편이야.



누군가 내게 그렇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편이 되어주겠다고, 잘 하고 있다고. 나는 아직 덜 자라 자그마한 열 살 아이를 품에 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도 웅이는 나보다 먼저 깨어나 자고 있는 내 볼을 콕콕 찔렀다.



- 웅이 엄마 아빠 안 보고 싶어?


- 그냥 그래.


- 웅이 집에 가야지 이제.


- 별로 가기 싫어.


- 왜?


- 집 가면 학교도 다시 가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 웅이 공부 잘하잖아.


- 잘해도 싫은 건 싫은 거야.


- 그렇지.


- 웅이 동생이나 친구는 안 보고 싶어?


- 응.


- 웅이 속상할 때가 많지.


- 응….


-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웅이한테 왜 그러냐고 하잖아. 화도 내고.


- 어떻게 알아?


- 이모는 다 알지.


- 정말 잘 아네.


- 웅이가 잘못한 거 아니야.


- 내가 잘못했대.


- 그건, 잘못한 게 아니라. 웅이가 조금 다른 거야. 다른 사람들하고.


- 뭐가 다른데?


- 웅이는 얼굴도 잘생기고 똑똑하잖아. 마음도 깊고.


- 난 친구도 별로 없어. 애들이 나를 안 좋아하는 것 같아.


-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사람들이 웅이 마음을 잘 몰라줄 수 있어. 웅이는 수학 문제 같아서 그래. 문제 풀기 어렵잖아. 근데 그게 사실 더 좋은 거야. 멋지고.


- 내가 멋지다고?


- 그럼.


- 이다음에 웅이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도 엄청 많을 거야. 예쁜 여자애들.


- 진짜?


- 응.


- 사실 나 반에 좋아하는 여자애 있거든. 걘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 그건 웅이가 어떻게 해야 여자애들이 좋아하는지 아직 잘 몰라서 그래.


- 어떻게 해야 하는데?


- 그건 조금 더 커서 배워.


- 이모가 알려줄 거야?


- 아니.


- 그럼 어떡해.


- 웅이가 크면 스스로 알게 될 거야. 아님 아빠한테 물어봐.


- 알겠어.


- 웅이 게임 이겨서 소원 있잖아. 말해봐.


- 그거 들어줄 거야?


- 들어보고.


- 음.. 드론 갖고 싶어.


- 드론? 그게 왜 갖고 싶어?


- 막 내 마음대로 조종해서 날리고 그러면 재밌을 것 같아.


- 알겠어. 내일 사러 가자.


- 진짜? 너무 신나! 이모 진짜 최고다!


- 그럼 일로 와봐.


나는 아이의 곱슬머리를 헝크러뜨렸고, 말캉한 양 볼을 손으로 뭉개서 붕어 입술을 만들고 놀리며 웃었다.


다음날도 아이는 나보다 일찍 일어났다. 나를 잠시 흔들어 깨워보는가 하더니, 내가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혼자 로블록스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간단히 해결한 우리는 쇼핑몰에 가서 초보용 드론을 샀다. 아이는 눈을 초승달처럼 구부리고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웃음이 예뻤다.


- 웅이는 뭐가 슬퍼?


- 누가 나한테 화를 내고.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안 될 때.


- 그렇구나. 그럴 때 어떻게 해?


- 그러면 화가 많이 나서. 그냥….


-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계속 있을 거야. 웅이는 계속 화가 날 거고 슬플 거야.


- 그럼 어떻게 해?


- 별다른 방법은 없어. 그냥 그렇게 커다란 웅이가 되는 거지. 어른 웅이.


- 지금처럼 화를 막 내도 돼? 엄마 아빠는 나를 혼내는데.


- 이모가 웅이한테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하면 참을 수 있어?


- 아니….


- 웅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그래도 웅이는 엄청나게 멋진 어른이 될 거야. 키도 쑥쑥 크고.


- 진짜?


- 그럼. 이모는 다 안다고 했잖아. 내일은 뭐 할까? 집에 갈래? 엄마 안 보고 싶어?


- 보고 싶긴 한데…. 엄마 아빠 일 다 끝났대? 나 데리고 오래?


- 응 그렇대. 웅이가 이모랑 더 놀고 싶으면 더 있어도 되고. 집에 가고 싶으면 가도 돼. 이모가 데려다줄게.


- 더 놀아도 되는 거 맞아? 학교에는 뭐라고 말해?


- 웅이 체험학습 간다고 신청서 내놨대.


- 학교 가기 싫어. 집에 가면 학교 가야 하잖아.


- 그래도 평생 학교에 안 다닐 수는 없잖아. 웅이 공부도 잘하면서.


- 하루만 이모랑 더 놀아도 돼? 게임도 하고.


- 그래 그러자.

아이는 과학 공부가 싫다고 했다. 나는 웅이가 조금만 참으면 곧 과학이 재미있어질 거라고 말해주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세상이 네 얘기를 더 잘 들어줄 거야. 네가 조금 더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해도 더 많이 받아줄 거야. 그러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서 조금은 참을 필요가 있어. 사실 참지 말고 재미를 찾으면 돼. 파고들어서 재미있어하는 거 잘하잖아 웅이. 그렇지? 하고.


그렇게 함께 며칠을 보내는 동안 아이는 내게 점점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친구들이 떠나간 이야기, 몹시 분했던 이야기, 엉엉 울게 된 이야기, 동생이 짜증나고 귀찮은 이야기. 이제는 잘 때 인형이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 이모가 좋다는 이야기. 밤이면 아이는 스스로 내 품에 들어와 잠들기 전까지 조잘대기 시작했고, 집에 가자는 날을 하루하루 미뤘다. 아이는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집으로 돌려보낼 시간이 됐다.


- 웅아. 이모가 말해준 어린 왕자 이야기, 마지막 장면 기억나?

- 응. 어린 왕자가 돌아간다고 했잖아. 장미가 있는 별로.


- 응. 역시 똑똑하네 우리 웅이. 이제 이모도 돌아가야 해. 웅이도 집에 가야지.

- 왜? 이모랑 더 놀면 안 돼?


- 이모랑 오래 있었잖아. 엄마 아빠도 웅이가 빨리 돌아왔으면 하실 거야.


- 그럼 이모 언제 또 웅이 보러 올 거야?


- 나중에 웅이가 이모 보러 와.


- 이모가 어디 있는데?


- 그건 아빠한테 물어봐.


- 웅아, 이모 잠만보잖아.


- 응. 잠 엄청 많이 자 이모.


- 웅이한테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이모가 소원도 들어줬지? 드론 사줬잖아.


- 알겠어. 뭔데?


- 이모가 내일은 오래 자고 싶어서, 웅이가 깨우지 말아 줄 수 있어?


- 언제까지?


- 계속.


- 그러면 나는 이모 자는 동안 뭐 하고 있어? 게임?


- 내일 웅이 아빠가 데리러 오실 거야. 아빠랑 집에 가. 이모 깨워서 인사하지 말고.

- 왜?


- 이모는 잠만보잖아. 웅이 집에 간다고 인사하는 게 슬프기도 하고. 그래줄 수 있어?


- 이모랑 더 같이 있으면 안 돼?


- 내일은 집에 가야지. 착한 웅이 이모 부탁 들어줄 수 있지?


- 응…. 이모 잘자.

- 응. 웅이도 잘자. 이다음에 또 보자.


나는 아이의 새근새근 잠든 숨소리를 확인하고,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가방 속에 숨겨둔 내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보낼 메시지를 적었다.





ㅡ 당신이 제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돌려드립니다.





발송 시간을 다음 날 정오로 설정한 문자메시지를 예약했다. 앙상한 내 팔뚝에 주사기 속 액체를 천천히 밀어 넣고, 단정하게 누워 눈을 꼭 감았다. 아이가 잠결에 품속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