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버린 시간에게
1.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나는 어느 순간 멈추어야 했다. 멈추어야 했다기 보단, 더 이상 글을 이어서 쓸 수가 없었다. 예전에도 글을 쓰다가 도무지 그다음 문장이 쓰이지 않던 순간이 종종 있었지만 지금의 증상은 그때와는 확연히 그 결이 달랐다. 내 머릿속에 있던 어떤 미지의 이야기를 아주 잘 설명하는 단어를 찾는 일과,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일은 분명히 그 궤가 달랐다.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단정한 문장이 필요했다. 그런 문장들로 문단의 마지막을 채워야 했고, 그 자리에 무난한 다짐이나 경험의 요약을 넣어야 했다. 예전엔 자주 쓰던 현학적이고 무언가에 흠뻑 젖어 축축한 문장들은 어울리지 않았다.
'삶이란 책갈피는 더 이상 뒷페이지에 걸리지 않습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였고, 문장은 완결된 형태로 화면 위에 놓였다. 내 서사를 표현하기 위해 쓴 말이었으나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문장의 출처를 적으려 하는데 도무지 어디서 읽었던 문장인지, 어느 문인이 만든 문장인지 기억나질 않았다. 이 단어들은 어디서 온 거지? 분명 어디선가 읽은 문장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잠시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검색창을 열었다. 문장을 그대로 입력하기도 하고, 키워드라고 여겨지는 단어들만 조합하여 입력하기도 했다. 어떤 문학작품이나 문인도 나오지 않았다. 영문으로 번역을 해봐도 마찬가지로 뚜렷한 결과를 찾을 수 없었다.
어둑한 의문이 자리 잡았다. 자기소개서가 쓰이질 않아서 오는 두통과는 또 다른 어둑함. 어차피 이 문장 때문이 아니어도 자기소개서 작성은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잠시 책상에서 일어나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안 그래도 온통 안개 같은 두통으로 사로잡혀있는 요즘이었는데, 흐릿한 무언가가 하나 더 생겨버렸다.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어 잠시 잊어보기 위해 눈을 감았다.
2.
가고 싶지 않은 미래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은 동력을 잃은 보트를 타고 망망대해에서 손으로 노를 젓는 것과 같다. 이쪽 방면의 고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날 이후 나는 그 문장에 지독하게 사로잡혔다. 집요하게 그 문장의 뒤를 쫓았다. 대학 시절 읽었던 소설 목록을 다시 펼쳐보았다. 메모장에 저장해 둔 인상 깊은 문장들을 훑었다. 블로그에 남겨둔 독서 기록을 다시 열었다. 이 베일에 둘러싸인 조용한 비밀은 쉽사리 얼굴을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친하지도, 형식적인 안부인사 마저 거의 하지 않았던 옛 친구에게도 연락을 했다. 그저 '오래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 외의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혹시 이런 문장 본 적 있어?'
친구는 잠시간의 침묵을 보내고는, 한참 뒤에 응답했다.
'처음인데? 너랑 나는 좋아하는 작가도, 읽던 책도 달랐잖아'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원하는 정보의 여부만 듣고 나서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이유가 없었다. 나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거부하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다시 검색창을 눌러 이미 검색해 봤던 단어 조합과 문장을 입력했다. 관련성이 더욱 적어지는 검색결과의 뒷페이지로만 하염없이 넘기다가 무의미한 클릭질을 그만두었다.
이 문장을 남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의 것으로 만든다는 말이 참으로 이상한 것이었다. 출처를 밝히지 못하면 도둑질이니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이제는 고작 한 문장 따위로 온 정신이 팔려있는 내 상태에 대해 두려움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노트북을 다시 켜고 자기소개서를 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책임질 수 없었기에 자기소개서에서 지워버렸다. '저는 멈추지 않고 성장해 오는....' 무난한 문장들이 그 빈자리를 대신했다. PC속의 삭제와 대체가 지나간 자리엔 말 그대로 아무 흔적이 남지 않는 법이었지만 그 삭제된 자리가 더 또렷하게 남았다.
3.
밤이 되었고, 노트북을 덮으려다가 다시 열었다. 과거를 덮었던 그 순간에도 다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 문장'에 온 신경을 쓰느라 그 어느 것도 진행되지 않았던 것은 똑같구나 하는 생각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과거엔 한 문장을 완성하려고 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완성된 문장을 졸졸 따라다니는 꼴이 우스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실소 덕분에 다시 타이핑을 시작할 힘이 조금은 생기기도 했다. 다시 조금은 뻔한 말들로 파일에 활자들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파동도 없는 직선의 줄글을.
그렇지만 그 지독한 덫은 아직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제야 다시 집착에서 벗어나 진도를 나갈 수 있나 싶었는데, 한 단어 한 단어 그 문장을 이루던 것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사실은 '진부한 문장'들 내 감정이 담기지 않은 회색의 문장들에 신경이 담기지 않았기에 자꾸 다른 것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내 감정이 담기지 않는 문장을 쓰는 것은 내겐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글들 안에서 그나마 내가 다시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있을까 싶어, 오래된 폴더로 마우스커서가 향했다. 부끄러운 일기장을, 그러나 마치 그 수첩들에 죄라도 담긴 것인 양 참회록을 다시 집어드는 마음으로 예전의 나를 마주하기로 했다.
오래전 거의 열지 않았던 폴더를 다시 열었다. 졸업 이후 의도적으로 외면해 오던 파일들, 그 안에는 과거의 내가 있었다. 마치 오래된 거울을 꺼내는 일과 비슷했다. 날짜 순서로 정렬된 검은 파일들, 다소 긴 문장이나 짧은 하나의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들로 열거된 파일들이 죽 이어졌다. 맨 아래쪽 파일 '정거장'을 열었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손이 멈췄다.
출처가 적혀있지 않은 그 문장이 담겨있었다.
'삶이란 책갈피는 더 이상 뒷페이지에 걸리지 않습니다.
나는 병들었습니다. 황혼의 정거장에서 나는 무엇을 기다리나요
...
...
...'
숨이 잠시 멎었다. 이건 내 문장이었다. 내가 쓴 문장이었다.
4.
삶이란 책갈피는 더 이상 뒷페이지에 걸리지 않습니다
나는 병들었습니다. 죽은 내 할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었는지도 몰라요.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이 마치 마른나무 같습니다. 정거장 벤치에 앉아 나는 무엇을 기다리나요.
시간은 흐르는데, 구름은 이곳에 멈추었습니다. 축축한 가운데 아득한 현기증이 일었어요. 이건 마침 읽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작용을 했지요. 늙어서 난 과거로, 그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후회의 기억은 과거에 집착하여 내 손을 원망합니다. 이제 아끼던 노트는 내 병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것들을 적어왔다만, 그것이 독이었는 줄은 정거장에 이르러서야 알게 된 겁니다!
이젠 글을 쓸 수 없을 듯합니다. 얼마나 많은 거짓과 위선을 적어왔는지. 내 손은 이제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물기 빠진 마른 장작이 되어서 콱 물어도 피가 나지 않습니다. 조금 파여도 아프지가 않습니다. 내 손은 더 이상 울지 않아요.
아프지 않은 병에 걸려서 마음이 아픕니다.
황혼의 정거장에서 나는 무엇을 기다리나요. 물방울이 손등에 떨어집니다. 스며들지 못합니다. 이곳에서 돌아보니 어떤 기억이 눈물이 되는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미 굳어버렸지만 이제 이 이 아픔이 딱딱해지는 것을 막고자 정거장을 맘 속에 담겠습니다. 이 시간, 이 공간이 내게 이제야 알려주니까요. 내가 늙었음을.
딱딱하게 굳은 내 피부와 내 손에 사죄를 고하고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려 합니다. 그동안의 시간이 내게 흘러들어옵니다. 나는 늙고 병들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가만 화면을 응시한 채로 계산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그 이야기를 쓰던 밤이 떠오르는 듯했다. 정거장이라는 비유, 마른 장작 같은 손, 울지 않는 피부.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병들었다고 적었다. 나는 그 글을 오랫동안 과잉이라 여겼다. 젊은 날의 자의식,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숙함.
그런데 지금 다시 읽는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과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확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알고 있었다. 멈춰 있음을 알고 있었고,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기록할 수 있을 만큼 또렷했다.
나는 왜 이 문장을 남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을까. 왜 검색창에 넣고, 왜 친구에게 묻고, 왜 출처를 찾으려 애썼을까. 깨달음은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왔다. 나는 실패가 두려웠던 게 아니었다. 읽히지 않음이 두려웠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두려워한 건 ‘그 문장을 쓸 수 있었던 나’였다. 그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었던 태도,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나를 직면했던 순간을 인정하는 일. 그것이 두려웠다.
5.
오랫동안 ‘보류’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었다. 처음 답신이 오질 않는 메일을 겪고 나서, 내 다른 모든 원고들은 읽히길 거부했다. 멈춰 있던 파일들에게 멈추라고 했다. 나는 보류라는 단어 뒤에 숨었지만 스스로를 보류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이 내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으니까. 사실은 그게 보류도 무엇도 아니라 침묵과 회피라는 것을 덮어둔 채.
화면 속 문장들은 말이 없었다. 그때는 이다지도 뱉어대길 좋아했던 내가 지금은 무엇하나 쉽사리 뱉어내질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이 글을 썼을 당시엔 멈춰있음을 자각하고 그걸 기록했던 사람이었다. 진짜로 '보류'가 침묵과 회피로 전환되기 직전, 그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더 써볼걸 그랬다.
한때는 과신했던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서 어중간한 재능이었다고, 과한 문장들이었다고 생각해 버렸다. 사실은 탁월하다고 말해주는 이도 없었지만 못나다고 말한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6.
나는 자기소개서 파일을 다시 열고 다시 그 문장을 적었다.
삶이란 책갈피는 더 이상 뒷페이지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때 저는 멈춰 있던 사람이 아니라, 멈춰 있음을 인식하고 방향을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뒷페이지에 걸리지 않는 책갈피는 끝이 아니라, 이미 읽은 장을 정확히 덮는 행위입니다. 모든 우리는 방황을 겪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의 방황은 그 책장이 항상 덮여 있습니다. 그 책장의 어딘가에는 책갈피가 항상 꽂혀 있지만 말입니다.
용기는 어디서 필요한 걸까요? 방황을 파헤치는 것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덮어두었던 방황을 다시 들추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프지 않은 병에 걸려서 마음이 아픕니다.
표류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죽어있던 통감을 다시 깨워봅니다.
굳이 고통을 건드려 보겠습니다.
아픈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아프지 않았던 병을 굳이 아프게 해 보겠습니다.
이미 읽은 장을 정확히 덮으려면 말입니다.
다음 장에서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려 합니다.
7.
오래된 파일은 여전히 화면 위에 떠 있었다. 활자들은 거울처럼 과거의 나를 비추고 있었다. 과장되어 있기도 했고 미숙하기도 했다. 때때로 스스로에게 취했고 자기혐오에 빠졌다. 그렇지만 그때도, 지금도 충분히 진지했다.
'삶이란 책갈피는 더 이상 뒷페이지에 걸리지 않습니다.'
나는 노트북을 닫았다. 이번에는 출처를 적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