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오늘 진짜 재밌었다
- 이 새끼가 진짜 재밌는 놈이라니까.
- 그니깐. 다음에 한 번 더 봐야지.
당연하지! 연락할게.
후. 오랜만에 술을 너무 마셨나..
실수한 거 없겠지.
친구들과 헤어지고
터벅터벅 걸어간다
오늘 말한 것 중에 실수는 없는지
차근차근 곱씹는다
아, 오늘은 진짜 좀 힘드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눕는다
따뜻하지는 않아도 포근한 이불덕에
당장이라도 잠에 들 것 같다
지금 자면 안돼.
안 씻고 자면 내일 피부 망가질 거야.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들 만난다고 신나서 과음한 모양이다.
씻고 나오자마자 날 반겨주는 전신 거울.
매일 씻기 전, 씻고 나서, 나가기 전,
세 번 이 거울을 본다.
내 모습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서,
내가 괜찮아 보이는지 말이다.
오늘은 유독 더 초췌하다.
회사에서 과장한테 혼나고,
술까지 마시고 오니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서려왔다.
한 번 더 가까이 선다.
눈 밑이 유난히 꺼져 보인다.
입술 색도 흐리다.
이 모습 그대로라면 남들이 분명
피곤해 보이네?- 한 마디 할 거다.
그 한 마디가 싫다.
걱정인 척 하는 말도, 진짜 걱정도.
이 모습 그대로라면 남들이 분명
날 이상하게 볼 거다.
거울을 보고 씨익 웃어본다.
이런, 눈은 너무 죽어 있어.
손가락으로 눈웃음을 지어본다.
그래, 이 모습이지.
남들이 좋아해줄 모습.
괜찮아 보이는 사람.
항상 괜찮은.
남들은 부정적인 사람을 싫어한다.
웃어야 한다. 언제나 완벽한 모습이어야 한다.
거울은 나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유일한 물건.
그 녀석은 내 진짜를 너무 정확히 데려온다.
그럼에도 나는 있는 그대로의 거울을 미워한다.
나는 거울의 그 정직함을 싫어한다.
입꼬리만 올린 얼굴로 오늘을 잘 접어 숨긴다.
밖으로 나가는 건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나뿐이고,
진짜 나는 거울 뒤로 한 발 물러난다.
거울이 비추는 내 모습을 감춘 채
난 오늘도 남들의 모습으로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