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미묘한 온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거울 같은 금속 벽이 나를 비춘다. 아니, 나눠서 돌려준다.
한 사람의 얼굴, 두 개의 표정. 지친 눈과 또렷한 눈. 오늘을 견뎌낸 얼굴과, 아직 포기하지 않은 얼굴.
나는 그중 어느 쪽도 밀어내지 않는다.
거울 앞에서는 늘 시간이 늦어진다. 발걸음이 아니라, 판단이.
층수가 올라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1층에 서 있는 것 같다.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밖으로 나갈 나는 누구인가.
묻지 않는다. 이 질문은 언제나 답보다 먼저 상처를 남기니까.
균열.
어디선가, 아주 작은 소리로 무언가 깨진다. 거울이 아니다. 자아도 아니다.
분열이 시작된다. 어떤 조각은 선명하게 나를 비추고, 어떤 조각은 이미 흐려져 누구의 얼굴인지 알 수 없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로 모으지 않는다.
회의실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나. 불을 끄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던 나.
책임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발음하던 입술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삼켜버린 문장들.
그저 그 속을 걷는다. 천천히.
M.C. Escher, <Day and Night>, 1938, Woodcut(목판화) 중앙의 밭에서 갈라진 풍경. 왼쪽은 낮의 마을, 오른쪽은 밤의 마을. 흰 새와 검은 새가 서로의 윤곽을 만들며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다. 빛과 어둠은 서로를 배반하지 않고, 서로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에셔(M.C. Escher).
<Day and Night> 앞에 섰던 날. 중앙의 밭에서 풍경이 갈라졌다. 왼쪽으로는 낮이, 오른쪽으로는 밤이 흐른다.
흰 새들은 낮을 향해 날아가고, 검은 새들은 밤을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 새들이 중앙 어딘가에서 서로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흰 새의 윤곽이 검은 새의 여백이 되고, 검은 새의 형태가 흰 새의 배경이 된다. 둘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이상하리만큼 고요하다.
낮의 나와 밤의 나. 정직한 나와 타협하는 나. 말하는 나와 침묵하는 나.
에셔의 새들처럼, 나의 두 얼굴은 서로를 배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통해서만 형태를 갖는다.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도 윤곽을 잃는다.
우리는 하나의 인격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각자가 만들어낸 이중의 중력 아래서 서로 다른 기울기로 세상을 버티고 서 있다.
이중성은 배신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몸이 만든 접힘의 기술이다.
나는 에셔의 새를 따라간다. 흰 새. 검은 새.
그림을 벗어난다.
거울이 다시 보인다. 같은 금속 벽. 다른 반사.
나는 언제 이곳을 떠났는가. 언제 돌아왔는가.
알 수 없다.
라캉(Jacques Lacan).
그는 거울단계를 말했다. 유아가 거울을 보며 통합된 자아의 환상을 갖게 된다고.
오해.
거울 속의 나는 언제나 실제보다 조금 더 완전하다.
예고 없이. 필연적으로.
나에게 그 오해는 생존의 언어로 온다.
거울은 나를 정돈해서 보여준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매만져지고, 흔들리는 눈빛은 고정된다. 나는 그 거짓말을 믿고 바깥으로 나간다.
머리는 진실을 알아도, 몸은 오해를 선택한다.
엘리베이터의 차가운 금속 벽. 화장실의 투명한 유리 거울. 건물 유리창에 비친 흐릿한 윤곽.
신도시의 거울들 속에서도 우리가 문득 자신을 발견하는 이유. 몸 안에 축적된 이중의 자아가 거울과 반응하며 오해를 일으키기 때문.
오해는 거짓이 아니다. 그냥, 지속.
라캉의 거울.
분열된 자아가 통합의 환상을 만든다. 완전하지 않지만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진실이 아니지만 진실처럼 작동한다.
나는 그 환상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거울 앞에서 문득, 그것이 내 발밑을 떠받친다.
나는 이제 내 두 얼굴을 하나의 매끄러운 자아로 봉합하지 않기로 했다.
갈라진 조각들을 억지로 이어 붙이는 것. '통합된 인격'이라는 환상.
분열인 채로 두는 편이 솔직하다.
흰 새와 검은 새. 그것들은 이미 내 삶의 궤적을 이루며 나를 통과해 왔다.
에셔의 새들처럼, 나의 두 자아도 때로는 서로를 외면하고 때로는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이끈다. 어떤 얼굴은 나를 미래로 밀어 올리고, 어떤 얼굴은 발목을 잡아 과거의 그늘에 앉혀둔다.
하지만 이 상반된 힘들은 충돌하지 않는다.
이중의 중력. 각자의 궤도. 분열된 자아.
거울 앞에 선다. 금속 벽에 비친 나는 어느 새를 따라가는가.
낮을 향해 가는가. 혹은 밤을 향해 가는가.
선명하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 내 발밑의 이중성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사실.
분열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엘리베이터 문을 뒤로한다.
구두 굽이 대리석에 부딪히는 소리. 규칙적으로. 불규칙적으로.
그 소리는 라캉의 거울처럼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빛나며 내게 묻는다.
나는 답하지 않는다.
다만 걷는다.
발은 안다. 몸은 기억한다.
이중의 자아는 여전히 내 안에서 분열한다.
나는 그것들과 함께 걷는다.
흰 새. 검은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