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주말을 거북이만 모른다

국립현대미술관 2024 올해의 작가상 전시 후기

by 위다혜

대학생 때부터 매년 꼭 챙겨보려고 하는 국현의 <올해의 작가상> 전시. 10월부터 2월까지 너무 바쁘게 산 탓에 하마터면 못 볼 뻔했는데, 다행히 전시가 끝나갈 무렵 미술관에 들를 수 있었다. 여태 본 <올해의 작가상> 중 가장 좋았고, 가장 따뜻했고, 가장 오래 머물렀던 전시여서 꼭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전시를 보고 고양되는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너무너무 지쳐서 급하게 SOS 치듯 냈던 월요일의 휴가였는데, 전시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동안 너무 인풋 없이 아웃풋을 내는 데 치우친 생활을 했다 싶었다. 인풋을 채우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지!

이번 전시에서는 권하윤, 양정욱, 윤지영, 제인 진 카이젠 네 명의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2023년부터는 신작뿐만 아니라 구작도 함께 전시한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아티스트의 생각이 어떻게 점점 변화하였는지 볼 수 있어서 함께 보는 게 더 좋다. 이 날 우연히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도슨트의 해설이 시작되어서 들었는데, 역시 혼자 보는 것보다 도슨트의 이야기들을 먼저 듣고 감상하는 게 훨씬 좋다.(시니어 여성분들이 도슨트로 활약하시는 게 너무 좋다. 나도 언젠가 해보고 싶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아티스트는 2024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양정욱 작가의 작품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들을 움직이는 조각으로 표현한다.

<우리들의 주말을 거북이만 모른다>

주말도 잊은 채 일하는 주인 때문에 수조 속의 거북이는 오늘이 평일인지 주말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주말에도 일하는 주인은 점점 어깨와 등이 굳어 이러다 거북이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그런 느릿느릿 움직이는 거북이의 모양을 움직이는 조각으로 만들었다.

"이러다가 혹시 내가 거북이가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어깨와 등이 점점 굳어 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등딱지가 되고
주말을 잊은 채로 더 크고 넓은 것을 갈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차가운 주말과 높은 주말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주말들을 기억하자.
우리의 주말은 거북이만 모른다."

주말을 잊고 일한 대가로 낸 휴가날 보기에 너무 좋았던 전시 그리고 글. 더 크고 넓은 것을 갈망하는 건 좋은데, 주말을 잊지는 말자고 다시금 다짐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멀리서 보면 날벌레가 가만히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보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는 균형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 이후 '균형'은 그가 제작하는 모든 작품의 모티프가 된다. 양정욱은 균형이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한쪽으로 치우쳤다가 다시 고르게 복구되는 반복의 과정 자체라고 정의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싶을 정도로 내가 요즘 자주 생각하는 주제들이 튀어나와서 놀랐다. 매년 한 해를 관리하는 노션 페이지를 만드는데, 2024년의 페이지 제목은 'JUMP'였고, 올해 2025년의 페이지 제목은 'BALANCE'다. 작년은 업그레이드, 점프, 능력의 향상에 포커스를 맞춘 해였고 올해는 일과 삶, 욕심과 내려놓음 사이 균형을 재조정하는 데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균형을 잡으려면 늘 비틀거려야 한다. 균형이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는 말은 꽤나 위안이 된다. 이렇게 비틀거리는 게 정상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일시적인 약도>

뭔가 설명할 때 '이 컵이 너고, 이 돌멩이가 나야.'라는 식의 비유를 하면서 설명을 이어갈 때가 있다. 그 점에서 착안해 작업실에서 나온 각종 부스러기들로 국현 주변의 약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부스러기들이 꽤나 알록달록해서 모아둔 걸 보니 꽤 귀여웠다.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너무 좋았다.

종이가 없어도 연필이 없어도 나무가 없어도 모터가 없어도 기억이 안 나도 용기가 안 나도 우리는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마음이면 충분하다.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자주 전하려고 노력한다. 좋은 건 좋다고 적극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한다.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쓰인다고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고 어떤 형태로든 전하려고 한다. 말하기 전엔 괜한 오지랖 같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말하고 나면 마음이 좋다.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특히 부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이라면) 그냥 표현하는 게 서로를 위해 더 좋은 것 같다. 다음에 또 주저될 땐 이 작품을 생각해야지. 진심을 전하고 싶은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작은 부스러기로라도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서로 아껴주는 마음>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밥을 먹다 할 말이 없을 때 서로 열심히 밥 먹는 소리만 울리던 순간을 조각으로 재현했다고 한다. 서로 너무 아끼지만 할 말이 없어 침묵이 흐르는 그 순간. 조각이 움직이면서 둥그런 볼을 치며 숟가락과 그릇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그게 마치 요가원에서 들리는 싱잉볼 소리 같아서 평화로움을 준다. 양정욱 작가의 작품에는 그 작품의 상황을 설명하는 글이 같이 놓여있었는데, 이 글이 가장 좋았다.

우리의 마음들은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사라진다.
좋은 마음도 나쁜 마음도 그렇게 자주 사라진다.
사랑할 때는 모든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고
슬퍼할 때는 모든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 차며
두려워할 때는 모든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 찬다.
우리의 마음은 뜻하지 않게 변화하지만
칸막이가 없는 한 개의 그릇으로 된 탓에
골고루 마음을 나누어 담지 못한다.
그 마음들을 우연히 구분 지어 담는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많이 담긴 마음으로 물든다.

휴가를 쓴 4일 동안 정말 다양한 마음으로 물들었었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땐 당황하는 마음, 무서운 마음, 그 이후에는 점점 억울한 마음, 조급한 마음, 불안한 마음으로 물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하다가 그렇게 아프게 된 거면서 영화 gv 제안을 받고는 또 행복한 마음, 뿌듯한 마음으로 물들었다. 변화하는 마음을 그냥 받아들여야겠다.

다음으로 좋았던 윤지영 작가의 작품. 꽤나 난해하고 볼드한 느낌의 작품들이 많았지만 작품 설명 글이 너무너무 좋았다. 작품 사진은 안 찍고 글만 찍어온 것도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

작가는 우리 마음과 몸이 이루는 역동, 마음과 행동 사이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드러내는 조각을 만들어 왔다. 마음의 문제가 몸의 고통으로 연결될 수 있는 한편,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고통은 간절한 바람으로 인한 행동을 낳기도 한다.

마음속 스트레스가 몸으로 진짜 번져올 수 있다는 걸 확인했기에 더 마음에 와닿았던 글

<간신히 너, 하나, 얼굴>

윤지영 작가의 친구들이 각자 다른 언어로 작가에 대한 마음을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밀랍을 녹여 윤지영 작가의 얼굴을 본뜬 '밀랍 봉헌물'을 만든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어떤 언어로든 가능하다. 노래, 편지, 외침 혹은 침묵하는 시간과 같이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마음은 소리가 되고, 그 소리가 새겨진 밀랍으로 소원을 담은 사물이 만들어진다. 작품에 귀를 기울이면 친구를 위하는 네 사람의 마음이 들려온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정말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천재 같다.

<미, 노>

아무래도 몸에 맞지 않아 어딘가 우스꽝스럽게 축 늘어지거나, 당겨지다 못해 찢어지기도 한다.... 도형과 싸개 사이의 갈등은 몸과 피부의 관계를 넘어 욕망 또는 규범과 실제 사이의 불일치가 야기하는 등을 시사한다. 되고 싶은 모습, 될 수 없는 모습, 되어야 하는 모습 사이에 겪는 괴리감이 다양한 조각적 형태로 드러난다.

되고 싶은 모습, 될 수 없는 모습, 되어야 하는 모습... 요 몇 년 사이 정말 많이 고민했던 문제다. 되고 싶은 모습이 되기 위해 자신을 해쳐가며 노력해야 하는가? 나는 자연스러운 게 좋은데, 정말 원래 내 모습 그대로 살면 되고 싶은 모습에 도달하지 못한다. 되어야 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문제가 될까? 될 수 없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세 가지 모습과 현재 내 모습과의 괴리는 어떻게 극복할까. 보이는 모습과 실제 모습과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요즘은 누구나 보이는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에 어느 정도 간극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편이다. 우리 모두 조금씩의 모순은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실망할 거리가 너무 많아진다. 나 자신에게 조차도.

그 외에도 넘 좋았던 문장들..!

턱 끝까지 차오른 압박감이 한계를 넘어 터져 나오듯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 구는 바닥을 벗어나 천장에 매달려 있다. 높이의 변화로 인해 구 속의 모래는 모두 비워졌다. 삼켰던 것을 모두 뱉어 낸 마음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졌을까?

미술관의 영상 작업물은 끝까지 보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이건 너무너무 재밌었다! 앞으로 영상물도 영화를 보는 마음으로 눈여겨봐야지 생각한다. 마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보는 해외의 독립 영화 같았다. 아마 이 영상을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 쭉 둘러본 윤지영 작가의 작품을 만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영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는지 더 자세히 이야기한다.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는 문장들도 너무 훌륭하다. 역시 나는 누군가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게 좋다.


제인 진 카이젠 작가의 작품은 내 고향인 제주를 담고 있어 당연히 좋았다. 전시장의 구조도 제주의 자연물을 따와 구성했다는 점이 너무 좋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소창, 바다, 해녀의 작업, 장례식 등의 신선한 소재로 풀어와서 좋았다.


권하윤 작가의 작품은 미리 예매해야 했어서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그래도 그림자를 활용하는 방식, 특히 관람하는 관람객의 그림자가 작품의 일부가 되게 한 것, 가상현실 체험을 통해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이 관람객이자 퍼포머가 되게 한 점이 인상 깊었다.

내가 좋아하는 국현의 테라로사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으며 마무리! 이 날 본 모든 것이 좋았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그해 봄의 불확실성>, 아침에 본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올해의 작가상> 전시까지!

주변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따뜻한 메시지, 진솔한 방식으로 나를 아끼자는 메시지는 언제 들어도 좋다. 좋은 메시지니까 매체와 형식과 재료를 바꿔가면서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겠지. 이제 큰 프로젝트가 끝이 났고 봄이 시작된다. 나에게 한 해는 봄부터 시작된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차갑고 높게 발산할 생각하지 말고 다정하게 수렴하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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