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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다혜 Mar 28. 2020

라틴어를 통해 배운 단단한 삶

책 <라틴어 수업>

온전히 뿌리내려 꽃 피운 사람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을 들은 제자의 편지들 중 한 구절이다. 그의 수업을 직접 들어보진 않았고 이렇게 책으로나마 접했지만 그 선생에 그 제자답게, 그 훌륭한 수업을 훌륭하게 정의한 말이 아닌가 싶다. 항상 책 제목만 들어보다가 읽어봐야겠다 싶어 내용도 모른 채 책을 펼쳤다. 제목 그대로 라틴어 수업의 내용을 담아낸 책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서 의외였다. 지금은 고전어가 되어버린 라틴어를 가르치는 강의를 담아낸 책이다. 어학원처럼 라틴어를 쓸 수 있도록 가르치는 수업이라기보다 라틴어의 기본적인 문법과 곁들여 교수님이 라틴어를 통해 배운 삶의 철학과 로마 유학 시절의 여러 가지 경험들과 생각들을 전하는 수업이었다.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수업이라고 하는데, 책으로 텍스트만 읽어봐도 교수님이 얼마나 따뜻하신 분인지, 얼마나 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자기 자신만의 신념으로 단단하게 뿌리내린 삶을 살아오셨는지가 느껴져 명강의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접해본 라틴어의 문법은 굉장히 어려웠기에 이걸로 법학을 공부하신 교수님은 천재가 아니신가 생각했다.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교수님은 주로 상대평가로 주위와 경쟁하는 현대사회의 청년들,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앞으로만 달려 나가는 한국 사회, 이로 인해 별다른 철학 없이 자신만을 위하게 된 이기적인 풍토, 더 이상 세상에 깨어있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한다. 이러한 사회에 대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며 사회가 힘들어도 바람직한 태도를 가져보자고 이야기해보는 교수님의 음성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태도를 바꿀 기회를 줬을 것이다. 나도 이런 태도를 지향하지만 현실을 살아내고 버티다 보면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것보다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더 쉽고 편한 길이기에 가끔씩 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놓고 싶은 유혹에 흔들릴 때도 있다. 너무 현실에 찌들게 되면 오히려 이런 이상적인 이야기들을 보며 네가 뭘 알아?라는 비난 섞인 목소리를 내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힘들지만 그래도 흔들리지 말고 너의 초심 그대로 바르게 견뎌내 단단한 뿌리를 내린 삶을 가꾸어나가자고 말하는 책들이 있기에, 편하고 쉬운 길이 있지만 그래도 어렵게 바른 길을 지켜 걸어가는 것이 의미있고 가치있다고 말해주는 책들이 있기에, 나같은 몇몇 사람들은 그래도 또 한 걸음씩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경쟁 상대는 여기에 있지 않고 해외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한국의 학생들은 나와 같이 공부하는 동료라고 여겼고요.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있어 보이려고, 젠체하려고 시작하면 좀 어떻습니까? 수많은 위대한 일의 최초 동기는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철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나 철학이 결국은 인도 사상에 맞닿아 있다니요. 오늘날 현대 세계가 서구 중심으로 지배되고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그 시기는 불과 얼마 되지 않았고, 이 또한 지나가는 역사의 한순간이라는 걸 새삼스레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올바른 방법이 모든 표현의 기초가 되고, 그것이 참다운 지적 체계를 형성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은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타인을 이해라 수 없고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더 힘든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공부를 나눌 줄 모르고 사회를 위해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소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머니를 불리는 일에는 발군의 실련을 발휘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착취당하며 사회구조적으로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신음소리는 모른 척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공부한 사람의 포부는 좀 더 크고 넓은 차원의 것이었으면 좋겠스니다. 나만 생각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 더 넓은 세계의 행복을 위해 자기 능력이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한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은 취업을 위해 졸업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스스로에 대해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진리를 탐구하며, 자기 삶을 사랑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해요. 그 둘 사이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템푸스 푸지트 tempus fuguit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우울을 느끼게 되는 위치까지 올라가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그게 내가 꿈꾸거나 상상했던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만큼 불필요한 집착이나 아집을 버릴 수도 있어요. 그만큼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치열하게 달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부든 사랑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럴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나고 그만큼 노력 한 다음에 찾아오는 이 우울함을 경험해보기 바랍니다.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삶을 흔드는 모멘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힘은 다양한 데서 오는데 그게 한 권의 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한 장의 그림일 수도 있고, 한 곡의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잊지 못할 장소 일수도 있고요. 그 덕분에 새로운 것에 눈뜨게 되고 한 시기를 지나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모멘텀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을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깨어 있고 바깥을 향해서도 열려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책 한 권을 읽어도 가벼이 읽게 되지 않고 음악 한 곡을 들어도 흘려듣지 않게 될 겁니다. 누군가와의 만남도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아니라 의미 있는 만남이 될 겁니다. 한 순간 스치는 바람이나 어제와 오늘의 다른 꽃망울에도 우리는 인생을 뒤흔드는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책꽂이에 꽂힌 책은 그 사람을 말해주는 단서라고들 합니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관심이 가고 읽고 싶어서 고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읽은 책은 그 사람을 말해주는 아주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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