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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희 Jul 07. 2022

3. 소심하게 한계점 올려보기

면을 만드는데에도 결심히 필요해

  내 한계를 느끼기 전까지는 인스타툰을 계속 그려 올려야겠다고 다짐한 것이 어제인데, 인스타툰을 3개 올린 지금, 나는 벌써 한계를 맞닥드린 것 같다. 내가 면을 못 만들기 때문이다. 




  인스타툰은 일단 뛰어들고 실력을 쌓자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었지만, 내 그림만 볼 때 드는 감상과 피드에 뜨는 다른 인스타툰들과 함께 내 그림을 볼 때의 감상이 극과 극으로 달랐다. 내 그림만 볼 땐 처음인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피드에 섞여 있을 때 다시보면 내 그림은 아예 눈에 띄지조차 않는 것이다. 내 그림은 보려고 의식을 해야 보였다. 순식간에 넘어가는 인스타그램의 피드 전쟁통 속 그림을 보기 위해 굳이 의식을 해야 한다는 행위가 웬 말인가. 

  이건 무엇인가 내 그림이 잘못되었다는 소리가 아닐까 고민하며 내 그림과 눈에 확 들어오는 다른 그림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원인은 금방 보였다. 나의 터무니없는 그림실력,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 전개는 일단 차치하고 파악한 원인은 바로 내 그림에는 선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선이 선을 이뤄서 면을 만들어야 하는데 내 그림에는 면 '같은 것'만 있을 뿐, 면이 없었다. 물론 완전한 면을 완성하지 않은 상태로 훌륭한 인스타툰을 그려내시는 작가님들도 너무 많다. 하지만 그 작가님들의 그림들은 위트있었고 오히려 자유로움이 특징이 됐다면, 내 그림은 눈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무던하게 그려온 실력을 바탕으로 그려낸 자유로운 드로잉과 나같은 초보가 얼레벌레 그린 그림은 당연하게도 차이가 컸다. 

선이 이어지지 않고 다 끊겨 있는 첫 인스타툰.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면을 잘 못 만들었다. 초등학생 시절, 이어폰 꽂고 앉아 mp4에 저장해놓은 음악을 들으며 순정만화체 그림만 주구장창 그리는데 내 하루를 다 쓴적도 많았다.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그 그림들은 항상 스케치에서 끝이 났다. 친구들은 펜선도 따고 그 안에 색도 칠하던데 나는 그게 잘 안됐다. 사실 애매한 선으로만 남겨두면 그림을 그리기가 훨씬 편하다. 보는 사람의 뇌가 끊긴 선을 이어 형체를 완성해서 보니 상대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부담이 줄어든다. 내 부담은 줄이고 독자의 부담을 늘리는 만화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거기에 나는 브러쉬도 깔끔한 것을 쓰면 내 미숙한 그림실력이 더 부각되어 보일까봐 연필 질감으로 선이 흐릿하게 보이는 '6B 연필'브러쉬를 사용했다.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림을 정말 못 그리는 나같은 사람도 대충 알아볼 수 있는 형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되는데, 자연스레 보는 사람의 피로도는 올라간다. 새삼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저 첫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준 21명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든다. 

  사실 2개월 하고 접게 될지도 모르는 계정이기에, 저 그림체로 계속 연재를 지속할 수도 있었다. 솔직히 한편으론 이 결정으로 옳은 결정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는 편이 연재주기도 더 빠를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만 23년간 고수해 온 그림체를, 그것도 십 년간 딱히 그림 그릴 일도 없이 살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꾼 다는게 터무니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되면 매 연재분마다 그림체가 들쭉날쭉할텐데, 계정의 정체성이 사라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저 애매한 그림체가 내 후회와 맞닿아 있어 보였다. 내 뼛속깊은 애매함. 애매함은 내 후회의 원천이다.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고민만 하고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결국 시간이 정해주는 대로 휩쓸려갔던 나의 모습이 깊은 후회를 빚어냈다. 애매함이 내 그림체에마저 녹아있었다. 나는 인생의 결정도 애매하게 했으면서 그림도 애매하게 그리는 사람이구나 싶었달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애매했던 태도를 뒤로 치우고 지금 내게 부여한 한정된 시간을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걸 하는 확실한 시간. 그래서 기왕 인스타툰 시작한거 그림체도 확실해 보이게 바꿔보자 마음먹었다.  

엉성하지만 면이 생겼다!

  거창한 마음먹기와는 다르게 손은 내 마음처럼 잘 움직여주지 않았다. 당연히 손은 습관대로 움직였다. 선을 마감하지 못하고 바로 다음 선으로 넘어갔다. 결국 그렸던 것을 지우고 다시 그리고, 또 지우고 다시 그리고.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내 그림 지식이 부족한 것도 한 몫 거들 것이라고 생각해 드로잉 유튜브 영상들을 보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 왔다. 누가보면 뭐 대단한 그림이라도 준비하는 사람 같을텐데 현실은 면 하나 그려보겠다고 끙끙대는 모습이라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도 그리고 그리다 보니 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방법이 있는게 아니었다. 극적으로 "이런 방법을 쓰고 저런 훈련을 하니 드디어 나도 면을 그릴 수 있게 됐다!"라고 글을 쓰고 싶지만 그냥 꾸준히 의식하고 그리다보니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한 약속인 '이번주는 매일 업로드 하자'를 지키자고 생각하니 어떻게든 그려졌다. 물론 보이는 그림처럼 엉성하디 엉성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엉성한 면이라도 생기자 드디어 그림에 색을 넣기도 훨씬 수월했다. 화요일부터 목요일 연재분 그림은 면과 색이 거의 없다시피 그려진 만화들이지만 오늘 올린 <서울대 스티커위조학과>편은 면과 색이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은 내일 올릴 <MBTI 정반대인 연인사이>편 썸네일을 완성했다. MBTI 대표 캐릭터들이 면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림연습이 되겠다 싶어 한 번 그려본다는 것이 결국 썸네일까지 됐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일주일 사이에 내 그림이 참 짧은 시간 휙휙 바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 내 계정에 그림 한 장을 올리면 겨우 25개 정도의 좋아요가 눌리기에 그림체를 바꿔도 신경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앞으로도 그림체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인건 그리면 그릴수록 감이 잡히고 결과물도 점점 더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인스타툰 연재 일주일 째, 내 한계점이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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