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국가였지만,
프랑크는 신앙이었다.

카롤링거 르네상스가 끝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이유

by 미친생각

프랑크 왕국과 가톨릭 알고리즘의 결합을 통해 중세는 하나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이 구조는 피핀의 아들 카룰루스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국력은 강화되었고 영토 역시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 제국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체제였습니다. 로마가 국가의 알고리즘이었다면, 프랑크 왕국은 종교의 알고리즘 위에 세워진 정치체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법은 세금을 안정적으로 걷어들이거나 도시를 체계적으로 행정 관리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교회법은 국가 운영을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신앙심 유지와 도덕성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알고리즘이었기 때문입니다.


카룰루스 대제는 이러한 한계를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로마 시대의 법률과 문화, 그리고 문자 체계를 부활시키려는 시도를 이어갑니다. 라틴 문법을 정비하고 소문자를 확립하는 등 문자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 상당수의 고대 문헌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왕령을 증가시키고 문서 행정을 시도하는 등, 국가 운영을 위한 행정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노력도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제한적이지만 분명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이 시기를 카롤링거 르네상스라 부릅니다. 하지만 카룰루스의 사망과 거의 동시에 이 르네상스 역시 막을 내립니다.


카룰루스의 죽음 이후, 프랑크 왕국은 계승자들 간의 영토 분쟁으로 세 개의 국가로 분열되기 때문이죠. 이 원인을 단순히 왕권 약화로만 치부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합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구조적인 문제로 보아야 할 사안입니다. 저는 이 붕괴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종교 알고리즘을 대체할 국가적 행정 명령 체계가 지나치게 부실했다는 점입니다. 보편적이고 명문화된 법체계가 아닌, 왕령에 의존한 유동적인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국가 알고리즘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기 어려웠습니다. 반대로 이런 구조는 지역 성주들이 임의적으로 지역을 운영하기에는 매우 유리했습니다. 소수 인간의 감각과 직관에 의존한 통치 방식은, 넓고 복잡한 영역보다는 간결한 행정 단위에서 훨씬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명확한 알고리즘 구조 없이 한 명의 인간에게 의존하는 국가 CPU의 근본적인 한계로 판단합니다.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가 그러했듯, 프랑크 왕국의 유력가들 역시 카룰루스라는 인간적 구심점이 사라지자 중앙 명령에 종속될 이유가 빠르게 흐려진 것입니다.


두 번째는 화폐 활용의 미약함입니다. 당시 프랑크 왕국에서 화폐 사용은 제한적이었으며, 그로 인해 내외부 에너지의 흐름은 더디고 범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치가 커질수록 이를 물질의 형태로 운반하고 보관하거나 교환하는 비용은 비선형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는 도시가 외부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에너지의 양과 거리를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도시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 규모 역시 제한하는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영토가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알고리즘의 기본 에너지라 할 수 있는 인간의 개체수 증가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프랑크 왕국의 번영 직후에 찾아온 분열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예정된 결과에 가까웠다고 판단합니다. 국가라는 정보처리장치는 그 규모와 환경에 맞는 알고리즘 구조를 갖추었을 때에만
비로소 상태를 유지하거나 확장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