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정보처리장치가 입력하는 향상의 프롬프트
베르됭 조약을 기점으로 프랑크 왕국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의 모체가 되는 동프랑크, 중프랑크, 서프랑크의 세 국가로 분열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제국이 동원하던 국가 에너지도 분산되기 시작합니다. 프랑크 왕국의 분열은 외부 세력에게 침략 신호로 인식됩니다. 노르만족은 이를 기회로 삼아 남하를 시작했고, 이슬람 세력 역시 프랑크 지역을 새로운 침입 대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열된 프랑크 국가들은 더 이상 외부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국가 차원의 통합된 군사 대응은 어려워졌고, 방어는 지방 단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방 성주들은 스스로 성을 쌓고 전투 체계를 강화하며 생존을 도모하게 되었고, 생존의 기본 단위는 성을 중심으로 좁혀지게 됩니다. 이미 화폐 사용의 부재로 범위와 빈도가 크게 축소되어 있던 상업 활동은 이 시기를 거치며 더욱 위축됩니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획득하려는 시도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영지 내부에서 농업과 축산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구조는 고착되기 시작합니다. 외부와의 교류가 감소한 것이죠. 이로 인해 에너지의 이동뿐 아니라 정보의 이동 역시 크게 줄어듭니다. 이러한 구조는 중세 사회가 비교적 적은 변화 속에서 오랜 기간 유지될 수 있었던 핵심적인 배경으로 생각됩니다.
잦은 침략 속에서 생활 단위가 성 중심으로 고착되자, 성주들은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축적하게 되고 권한도 확대됩니다. 성주는 지역 주민을 보호하는 대가로 이들을 예속시키고, 영역 내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독점하기 시작합니다. 결혼, 시설 이용과 같은 생활 전반의 권한 역시 성주에게 집중되며, 성 안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주체로 자리 잡게 됩니다. 성이라는 범주에서 CPU는 더 이상 왕이 아닌 성주가 되는 것이죠.
이 시기 내내 프랑크의 왕은 기독교 기반의 인증서를 발급하는 역할에만 더욱 가까워집니다. 국가는 병력이나 교역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확장하기보다는, 성주와 계약 관계를 맺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유지하게 된 것입니다. 성주의 충성과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고, 그 대가로 성주가 점유한 장원과 지배권을 사후적으로 승인하는 형태로 말이죠.
이로 인해 성주의 힘은 계속 강화되는 반면, 왕권은 정체되거나 약화되면서, 카롤링거 시기까지 국가가 임명하던 성주 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세습되는 방향으로 굳어집니다. 11세기 무렵에는 이미 제후급 권력이 현실화되었고, 이후 12~13세기에 이르러 제후라는 계급이 제도적으로 공고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앙 국가의 힘을 능가하는 제후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1066년, 서프랑크의 노르망디 공작이었던 윌리엄 1세는 잉글랜드를 침공해 새로운 국가를 세우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서프랑크 왕은 제대로 된 개입도 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잉글랜드라는 국가는 다른 국가에 패배한 것이 아닌, 성주에게 패배한 것입니다. 중세 전반에 걸쳐 제후가 왕의 힘을 능가하는 사례는 꽤나 자주 등장합니다.
이 현상은 특정 인물의 역량 문제라기보다는 중세 사회가 지닌 알고리즘 구조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중세 프랑크 왕국의 알고리즘은 교회 알고리즘의 도입으로 굳어졌는데요. 초기에는 강력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병력, 세금, 교역과 같은 실질적인 에너지를 관리하기 위한 알고리즘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교회 자체도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집단이 아닌, 대중의 도파민과 스트레스 경로를 배선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었죠. 프랑크 왕국 역시 기독교 알고리즘에 편입되면서 대중의 인식과 정서 회로를 배선할 수는 있었지만,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구조는 취약했다고 판단됩니다. 오히려 이러한 에너지 관리 알고리즘은 성 단위에서 훨씬 명확하고 현실적으로 구조화되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주라는 개별 정보 처리 장치는 이미 달성한 기존의 가치만으로는 더 이상 도파민을 충분히 발화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들은 더 큰 가치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함으로써 추가적인 도파민을 획득이 가능해집니다. 로마가 그랬고, 중국이 그랬고, 일본이 그랬듯, 문명 전반에 걸쳐 인간이 주요 구성원인 국가는 이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중앙 처리 장치가 존재하더라도, 개별 정보 처리 장치가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한 이 문제는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됩니다. 인간은 더 상향된 프롬프트를 계속 입력하기 때문입니다. 도파민을 발화시키기 위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