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척추였던 동로마

국가 알고리즘과 에너지 획득이 들어낸 균형의 사례

by 미친생각

지금까지 중세의 시작을 연 프랑크 왕국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시선을 동로마로 옮겨보려 합니다. 동로마를 다루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중세 시대의 핵심 사건 중 하나인 십자군 전쟁의 중요한 축이었으며,

종교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존속했던 프랑크 왕국과 다르게, 동로마는 로마 제국 시절부터 이어져 온 국가 알고리즘을 사용한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 국가를 비교하는 것은 중세를 이해하는 데 매우 적절한 대조군이 됩니다.


동로마는 중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미 서로마와 분리된 국가였습니다. 서기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사망하며 제국은 상속 문제로 동서로 분리됩니다. 하지만 분리 이전부터 서로마와 동로마는 분리될 조짐이 충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서로마와 동로마 사이의 불균형이 점차 누적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국가 모두 화폐 경제를 기반으로 한 로마 국가였지만, 지리적 조건에 따라 화폐가 작동하는 방식은 크게 달랐습니다. 서쪽 끝에 위치한 서로마는 화폐를 사용하더라도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획득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저 내부 에너지 순환에 사용되는 비중이 높았을 뿐입니다. 마치 혈액이 신체 내부에서 순환하는 하고 있는 수준으로만 말이죠. 반면 동방 국가들과 인접한 동로마는 화폐를 실제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동방 세계와 동로마 사이에는 서로가 필요로 하는 정보와 효율성의 차이가 존재했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도파민의 수요도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화폐는 이런 교환 관계 속에서 비로소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화폐의 장점인 에너지 획득범위를 넓히는 특징이 잘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동로마는 페르시아 왕조에서 시작해 이후 이슬람 세력으로 이어지는 동방 세계와 지속적으로 충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동로마는 결정적으로 무너지지 않았고, 전쟁의 성과 또한 완전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발생한 전리품과 공물은 국가가 외부에서 에너지를 획득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가장 효율적이었던 로마의 국가 알고리즘과, 비교적 원활했던 외부 에너지 획득은 고대와 중세를 통틀어 유례없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바로 초대형 도시의 탄생입니다.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최대 100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당시 기준으로는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로 평가받는 카롤링거 시기에도, 왕국의 수도였던 아헨의 인구는 많아야 1만 명 남짓으로 추정됩니다. 이 수치를 비교해 보면, 말 그대로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규모 차이인 것이죠. 이 정도 인구는 과거 2세기 무렵, 로마 제국 전성기의 로마 정도만이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이는 탄탄한 국가 알고리즘 위에 화폐를 통한 안정적인 에너지 획득이 결합되었을 때만 가능한 결과라고 판단합니다. 국가 알고리즘이 아무리 탄탄하고 화폐를 사용하더라도, 외부 에너지를 획득하지 못한다면 말기의 서로마처럼 붕괴하게 됩니다. 반대로 에너지 획득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더라도, 국가 알고리즘이 부실하고 화폐 사용이 활성화되지 못한다면 프랑크 왕국처럼 정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동로마는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국가 알고리즘 구조가 견고했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에너지의 양도 안정적이었던 것이죠.


국가 알고리즘 구조가 탄탄했기 때문에, 동로마는 프랑크 왕국처럼 종교 알고리즘 위에 국가가 종속되는 구조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동로마 역시 로마 시절부터 받아들인 기독교가 국교로 굳건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로마에서 기독교는 국가 위의 권력이 아니라, 국가 아래에서 관리되는 체계였습니다. 동로마의 종교 질서를 최종적으로 조정하는 존재는 황제였으며, 종교는 국가 시스템의 산하 조직에 포함되는 위치 정도 였던 것이죠. 교황에게 황제의 권위를 승인받아야 했던 프랑크 왕국과 비교해 보면, 이 차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습니다. 이토록 국가 알고리즘의 구조가 탄탄하고, 에너지 획득도 비교적 수월했던 동로마는 왜 중세 유럽 전체를 평정하지 못했을까요. 사실 동로마라는 거대한 메타 정보처리장치의 최대 에너지 수입원은 최대의 골칫거리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동방 세계입니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에너지 획득원으로 바라보는 정보처리장치의 본질적인 특징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도 하지요.


페르시아 왕조에서 이슬람 세력까지 중세 전반에 걸쳐 이들과의 싸움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동방 세계의 규모는 동로마의 규모에 결코 밀리지 않았으며, 그만큼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중세 세계를 넓게 보면, 서쪽 끝에는 프랑크 왕국이 존재하고, 동쪽 끝에는 동방 세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 동로마가 끼어 있는 형태인 것이죠. 이질적인 두 정보처리장치 사이에 위치한 동로마는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확장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동방 세계는 강력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습니다. 반면 프랑크 왕국이 존재하는 서쪽 지역은 인구도 적고, 당시 기준으로는 에너지 가치가 낮았습니다. 동방에 비해 획득 가능한 에너지가 적었기 때문에, 굳이 많은 투자를 감행할 필요성도 크지 않았다고 판단됩니다.


결국 중세의 역사는 프랑크 왕국, 동로마 제국, 그리고 동방 세계라는 세 개의 메타 정보처리장치가 만들어낸 상호작용의 역사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고트 왕국과 같은 다른 국가들도 존재했지만, 이들은 국가 알고리즘의 구조가 비교적 미약했고, 그 정보는 중세 초중반을 거치며 전이와 유지에 실패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중세 역사의 주연은 이 세 국가이며, 중세는 이들의 정보가 충돌하고, 유지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기록한 시대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