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중앙집권 붕괴 시나리오
음식은 썩기 직전이 가장 달콤하다고 했던가요.
로마 역시 유스티아누스 1세 치세의 번영을 정점으로, 변화에 따른 비효율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유스티아누스 1세는 과거 로마의 영토를 수복하고, 유스티아누스 법전을 편찬하는 등 분명 성공적인 업적을 남긴 황제였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반달 왕국으로부터 수복한 북아프리카 지역은 인구 밀도가 높고 식량 생산력이 풍부했습니다. 더군다나 로마식 행정과 조세 알고리즘이 상당 부분 잔존한 상태였기에, 정복 이후 회수 가능한 이익의 마진이 비교적 높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이탈리아 반도의 동고트 왕국 지역은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인구는 급감했고, 도시는 파괴되었으며, 기존의 로마적 알고리즘은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습니다. 이탈리아는 수복했지만, 이미 인프라가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였고 세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던 것이죠. 점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미미했던 반면, 치안 유지와 행정 복구를 위해 국가의 에너지는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했습니다. 이 추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제국은 세금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걷히던 북아프리카와 기존의 핵심 지역에서 증세를 선택하게 됩니다.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면 회복하기 위해 신체의 에너지가 긴급 투입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와 신체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세포는 신경회로의 명령을 그대로 따를 뿐이지만,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이 침해된다고 인식되는 순간, 불만과 반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세포가 중앙 정보처리장치에 완전히 종속된 존재라면, 인간은 각자 판단하고 반응하는 개별 정보처리장치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증세가 집중된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적 반발이 발생했고, 국가와 국민 사이의 알고리즘은 점차 오류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프로코피우스의 사료가 나일강 인근에서 시작된 전염병의 확산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듯, 정보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전염병이라는 생명 단위의 정보도 제국 전반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여기에 동방 국가들과의 충돌이 과거부터 지속되면서, 동로마의 중앙 정보처리장치가 감당해야 할 정보의 양은 급격히 증가하게 됩니다.
헤라클레이오스는 이 폭증하는 정보량을 분산시키기 위해 테마제라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도입합니다. 이는 지역 단위의 정보를 처리할 구역 CPU를 배치한 것과 같은 선택이었습니다. 실제로 정보 처리를 분산한 동로마의 알고리즘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고, 이슬람 세력에게 빼앗긴 영토의 일부를 회복하며 국가 역시 일시적인 부흥의 조짐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구조 역시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테마제에는 둔전병제라는 제도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병역의 대가로 토지를 지급하는 이 구조는 시간이 흐르며 귀족들의 사유화를 촉진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약탈의 리스크가 적은 농민을 대상으로 한 수탈이었지만, 점차 귀족 세력은 지역의 군사력과 행정력, 경제력을 동시에 장악하며 왕권과 맞먹는 존재로 성장하게 됩니다. 천 년 가까이 중앙집권을 유지해온 동로마 역시, 이 지점에서부터 본격적인 붕괴의 경로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하나의 정보처리장치 내부에서 중앙 CPU 외의 다른 정보처리장치가 과도한 에너지를 축적하도록 허용하는 구조는,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유사한 결과를 반복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이는 끊임없이 향상을 갈망하는 인간이라는 정보처리장치의 본질적 특성 때문이라고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