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처리장치가 전쟁을 하는 이유
11세기에 접어들며 프랑크 왕국은 사실상 독일과 프랑스, 잉글랜드 등으로 분화가 고착된 상태였습니다. 왕권은 약화되었고 봉건제는 굳어진 상태였지요. 성주들은 강해졌지만, 그 힘은 각자의 영역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에너지는 축적되고 있었지만 확장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현상에는 두 가지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먼저 삼포제가 확산되면서 농업 생산량이 증가했고, 인구는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추가적인 에너지가 필요해진 상황이었고, 부족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외부와의 교역이나 확장 전쟁같은 것을 해야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죠.
하지만 봉건 체제하에서 교역은 기존 알고리즘과 충돌하는 행위였습니다. 장원에 속박된 농노는 사실상 이동과 외부 정보 접근이 차단된 상태였는데요. 외부와 차단되있기 때문에 교역이 시작될 수 없는 것이었죠. 이 구조는 체제 유지에는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교역이 발생하기에는 극도로 불리했던 것입니다. 개인은 외부 세계를 알 수 없었고, 다른 삶의 가능성 역시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정보 통제의 결과만 놓고 보면 중세 봉건 사회는 현대의 공산국가와 유사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인근 도시를 약탈하거나 병합하는 것도 쉬운 선택지는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와 국가라는 알고리즘이 이미 깊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기독교 세계 간의 무력 확장은 정통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되어버린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동로마는 전혀 다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잘못된 확장의 후유증에 더해, 동방 세력의 끊임없는 침입이 이어지며 제국은 점점 소진되고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프랑크계 세계에 하나의 기회가 등장합니다. 동방세력 침입에 고전하던 동로마가 서구 세계에 구원요청을 한 것입니다. 동로마는 특정 국가나 특정 군주가 아닌, 기독교 전체를 향해 구원 요청을 보냅니다.
이 선택은 당시 서구 사회의 구조를 정확히 읽은 결과였습니다. 11세기 서유럽에서 왕은 이미 절대 권력이 아니었습니다. 왕권은 약했고, 성주는 강했으며, 국왕은 기독교적 승인을 발급하거나, 성주 간 중재자 수준의 존재로 전락한 상황이었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인증기관의 대리점같은 위치였습니다. 그렇기에 대리점 수준의 국가가 아닌 본사 역할을 하는 기독교에 구원을 요청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동방 세력을 그리스도교 세계를 위협하는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기독교권 국가는 동로마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로 진입합니다. 확장의 필요성과 거절할 수 없는 요청이 결합하면서, 답은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1차 십자군 전쟁은 성주들에게 기대 이상의 이득을 안겨줍니다. 예루살렘으로 봉권을 확장한 군주가 등장했고, 독자적인 국가를 세운 봉건 제후도 나타났습니다. 봉토를 확대하거나 신분을 끌어올린 사례는 부수기지로 발생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노다지였던 것이죠. 전쟁으로 이득을 본 것은 성주만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이단을 격파했고, 그 결과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교회의 지시와 명분 아래 얻은 전쟁의 성과는 기독교 자체를 도파민 폭탄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인간이라는 정보처리장치는 기대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할 때 보상으로 도파민을 얻기 때문입니다. 기대보다 결과가 클수록 도파민 발화는 커지고, 그 기억은 깊게 각인됩니다. 이 메커니즘 속에서 전쟁 이후 교황의 권위는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덕분에 이후에도 교황과 성주들의 십자군 참여는 적극적으로 이어졌지만, 결과는 더 이상 기대만큼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이어진 전쟁은 원정을 위한 비용조차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결국 제4차 십자군에 이르러서는, 본전이라도 건지기 위해 콘스탄티노플과 같은 아군의 중요 도시를 약탈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후부터 십자군에서는 아군 약탈이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강한 적과 싸우는 것보다, 내부를 약탈하는 쪽이 훨씬 위험이 적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 방법은 십자군의 뉴런에 각인되었습니다. 교황은 기독교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이러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제재하지 못했습니다. 이 장면은 이들이 이 전쟁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전쟁에 명분과 정의가 있다고 믿습니까?
그런 전쟁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는 암시합니다.
전쟁이란 결국, 국가의 CPU가 에너지를 획득하기 위해 연산하고 출력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