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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돌이 Sep 03. 2019

너의 흔들림을 응원하며

새로운 출발을 고민하는 졸업생에게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게 벌써 4년이 넘었다니 실감이 잘 나질 않는구나. 조금 더 아름다워진 것 같다는 건 입에 발린 칭찬이었고 사실 네 말투, 네 웃음소리, 네 손짓은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2학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외모의 변화는 잘 와 닿지 않았지만 네가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소식은 새삼 놀라웠지. 너희들의 소식을 들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내 나이를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늘 똑같은 나이의 고등학생들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종종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건 잠시 잊게 되거든.


올해 대학 입학 원서를 써볼까 한다는 너의 연락에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웠고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안타까움과 궁금함이 교차하기 시작했어. 만나서 이야기하기까지 네가 얘기했던 학과의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희망이라면 대학에서의 네 학점이라고 생각했지. 대졸자 전형에도 지원해볼 수 있을 테니까.


약속 장소에 들어서며 환하게 웃는 너를 보며 다행히도 너는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 순진무구한 여유로움이 담임에게는 때때로 답답하기도 했었지만 그게 너의 장점이자 매력이었으니까. 반 아이들 누구와도 잘 어울렸고 짓궂은 녀석들이 쉽게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너는 그 누구도 진심으로 미워하지 않았고 너를 미워하는 사람도 없었다는 걸 나는 여전히 잘 기억하고 있다.


네가 가져온 성적증명서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너는 예전 모습 그대로 학점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더구나. 하긴 너에게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겠냐만 남들 다 힘들다던 고3 때도 여유로웠던 그 모습이 생각나서 네 기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웃음부터 터져버리더라. 다행히 너도 같이 웃어줘서 고마웠고, 그래도 출석은 열심히 했다는 너의 항변이 아직 귓가에 생생할 정도다.


너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지만 나는 냉정하게 이야기해줄 수밖에 없었다. 지나친 기대감이나 섣부른 포기가 입시에서 얼마나 독이 되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지. 네 연락을 받고 직접 만나서 상담하기 전에 내가 찾아본 자료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공개한 입시 결과 자료들이었어. 네 고교 성적보다 커트라인이 보통 한 두 등급은 더 높았지. 마지막 희망이었던 대학에서의 성적도 네가 원하는 학과에 합격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더구나. 그래서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대학을 가려고 하는지 물었다.


성적에 맞춰 엄마가 골라준 대학과 학과에 진학했던 너는 대학 졸업 후 친구들과 여행이나 다니며 살려고 했다며 웃으며 말했다. 너다운 생각이라며 손뼉 치며 웃었던 게 기억나네. 하지만 어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이력서를 여기저기 넣던 중 운 좋게도 지금 그 직장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했지. 비록 계약직이고 상사 한 명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은 직장이라고도 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네가 스스로 결정한 해보고 싶은 일이 그 일인 것 같다고 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면서도 네가 왜 다시 대학 신입생이 되려고 했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같은 일을 하지만 알게 모르게 무시도 당했을 테고 - 네 성격을 고려해보면 아마 더 심한 일도 있었지만 내게 말하지 않은 거겠지 -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직종이지만 의외로 네가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인간관계에 치이기보다 그 일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 보람을 느꼈다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 테니까.


막연한 목표만 세우고 나를 찾은 너에게 나는 몇 가지 큰 선택지만 제시해줄 수밖에 없었다. 현재 너의 성적으로 먼 지방 전문대학까지 포함하여 원서를 넣는 것, 학점 은행제에서 높은 학점을 확보하고 내년에 원서를 접수하는 것,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것. 우선 당장은 더 많은 대학의 더 많은 전형을 찾아보는 게 네가 해야 할 일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떤 마음으로 네 미래를 맞이할지 정해야 한다는 점이겠지. 그래도 네 나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격려하며 우리는 허기진 배를 달래러 갔다.


가까운 식당에서 너의 연애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구나. 심지어 우리 반 그 녀석과도 잠깐 만난 이야기, 지금 만나는 남자와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잠시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물론 그때는 연애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교실에서 식판을 사이에 두고 너희들의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들었던 점심시간이 꽤나 즐거웠거든. 부모님이 너희 커플을 반대하신다고 했는데 그 심정이 나도 이해가 되는 걸 보니 어느새 나도 어른이, 아니 꼰대가 되고 있는 것 같긴 하더구나. 그래도 뭐 아직은 결혼을 염두에 두진 않아도 되지 않겠냐는 내 말이 어찌 작은 위로가 되었을는지는 모르겠네.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문득, 너는 눈물을 흘렸지.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한다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 끝에 울었던 건지, 네 나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는 내 말과 동시에 울었던 건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구나. 하지만 네가 잘 설명하지 못할 어떤 불안함 때문이었다는 것만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설령 어떤 선택이 잘못되어서 일을 망치게 되더라도 되돌릴 수 있는 나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이학년 때부터 내가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교사를 하면서 보니 그렇게 귀여운 녀석들이 없을 정도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과 이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뭔가 미래를 결정할 엄청난 선택을 하는 나이인 것 같지만 사실 충분히 되돌릴 수도 있는 나이라고도 했던 것 같네.


한사코 네가 사겠다는 걸 말리며 나중에 정규직 되면 제대로 사라고 눙치며 술집을 나섰지. 나를 배웅해주며 잠시 걷는 동안, 나는 너에게 오랜만에 담임이었던 때로 돌아가서 이럴 때 애들한테 ‘간지 나게’ 한 마디 하는 게 담임이라고 했다. 술이 깨고 생각해보니 부끄러운 말이었지만 너를 위로하고 싶었고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싶었던 내 진심은 잘 전해졌으리라 믿고 싶다. 네가 우리 반이었을 때 수업 시간에 슬쩍 말했던 적이 있었던 이야기를 했지.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나침반’ 이야기 말이야. 나침반의 자침이 흔들리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방향을 믿을 수 있고, 흔들리지 않고 멈춰있다면 우린 그 나침반이 고장 났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네가 지금 흔들리는 건 잘 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지. 뭐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보다는 그냥 네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너의 선후배들과 네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 많은 아이들이 이제는 다들 청년이 되었을 테고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일들을 온몸으로 부대끼고 있겠더구나. 포기하거나 너무 아픈 일들을 겪게 되진 않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그래도 너희들이라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믿기로 했다. 불안함과 불확실함이 너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보다 너희들의 앞날에 새겨질 빛나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면서.


너희들의 모든 흔들림을 진심으로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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