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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돌이 Jun 30. 2015

청소는 정말 벌일까

지각한 사람은 오늘 남아서 청소!

자기 주변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일. 청소. 청소를 벌로 하게 하는 것은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일까. 아내는 예전에 내게 아이들에게 벌청소를 시키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청소를 벌로 하게 되면 청소를 좋지 못한 일로 생각하게 될 거라면서. 그 전까진 생각해보지 못했던 측면인지라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단 청소를 벌로 줄 경우, 담임은 확실히 편리하다. 아이들이 교무실로 데려가서 혼내거나 상담실로 가야 할 만큼 심각한 잘못은 아니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는 자잘한 규칙 위반에 적당한 벌이다. 모두가 싫어하는 일이고 특히 방과 후 남아서 하는 청소는 질색하는 만큼 효과도 크다.


그런데 아내의 말이 일리가 있는 듯 싶다. 청소는 벌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라면 제 주변 청소도 잘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좀 심하게 비약하자면, 청소하는 노동 전반에 걸친 인식마저 해칠 우려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작년부터 몇 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고등학생들에게 적용하기에는 '너무 심한 벌'이 되거나 '벌 같지 않은 벌'이 되어버렸다. 청소를 대체할 수 있는 벌을 아직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이다.


결국 올해에도 지각생들에게 청소를 시키게 되었다. 슬슬 지각자가 많아지기 시작할 무렵, 그 날 청소는 그 날의 지각자들만 하기로 했더니 첫 날 이후 지각자가 대폭 줄었다. 4명이면 4명이서, 2명이면 2명이서 온 교실을 청소하려니 힘들기도 하거니와 원래 우리 반은 한 번에 5명 정도의 인원만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기 때문에 당번이 아닌 날에는 꽤 긴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셈이었다. 그걸 포기하고 하기 싫은 청소를 해야 하니 당연히 지각이 줄  수밖에.


며칠 전, 지각생이 단 한 명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조금 들긴 했지만 별 수 있나. 오늘 교실 청소는 XX이가 혼자 하라고 했다. 쓸고, 닦고, 칠판도 지우고, 쓰레기통도 비우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청소시간 전 쉬는 시간에 미리 조금씩 해두는 것까지는 허락한다고 했다.


청소 시간이 되자, 몇몇의 아이들이 빗자루를 들더니 XX이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거 도와주면 XX이가 매점 쏜다고 하디?'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정색하며 '아뇨, 그냥 친구 도와주는 건데요? 샘은 이런 친구 없었죠?'라고 쏘아붙였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뿌듯하고 기뻤는지 아마 녀석들은 잘 모를 거다. 청소가 벌이라도 도와줄 친구가 있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꽤 자주 지각을 하던 그 아이는 친구들 보기 민망했는지 그 날 이후 오늘까지 지각을 하지 않고 있다.


친구의 벌청소를 도와주는 광경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늘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들끼리는 여전히 서로 마음을 나누고 있었나 보다. 이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벌은 없을지 다시 고민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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