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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돌이 Jun 23. 2015

나는 담임이다

그 힘들다는 고3

일주일에 6번씩 수업하는 과목을 맡은 나는 고3 담임이기도 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때때로 아침 조회, 수업 시간 두 번, 점심 시간, 청소 시간, 오후 자습시간, 저녁 시간, 야자 시간까지 나를 만난다. 하루 24시간 중에 거의 10시간을 봐야 하는 셈이다. 가끔 나도 지칠 때가 있는데 그 오만가지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얘네들은 오죽할까 싶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교사도 감정 노동자일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수업이 교사의 최고이자 유일한 가치로 여겨질 것이라는 건 나의 순진한 소망이었다.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부터 각종 공문서 처리와 행정업무까지 교사가 해결해야 할 일들은 의외로 다채로웠다. 무엇보다 담임 교사가 되기 전까지 나는 교사의 ㄱ조차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숱한 업무처리 사이로 끊임없이 파고드는 학생들과의 감정 소모는 쉬이 나를 지치게 했다.


아직도 젊지만, 처음엔 더욱 젊었으니 그런 감정적인 마찰이 더욱 심했던 것 같다. 담임을 맡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진짜 교사가 된 것 같았다. 때때로 아이들과 호감 어린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 뿌듯했고 '이 맛에 담임을 한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기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예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가 많았다. 나는 지쳐갔고, 아이들은 담임의 눈치를 봐야 했다.


어느새 십여 년 가까이 교사를 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로 인생의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지금껏 후회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때라도 교사라는 직업 자체를 후회하진 않았다. 깊이 다가갈수록 깊이 상처받는 느낌이 끔찍하게 내 몸을 감쌀 때 즈음, 선배 교사가 내게 슬쩍 말해주었다. '다들 그렇게 교사가 되는 거지. 익숙해질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 덜 재밌어지고 조금 덜 상처받는 담임이 되어가고 있었다.


매년 새로운 학년이 시작될 때, 교실문을 열기 직전의 설렘과 긴장은 변함이 없다. 특히 올해는 더더욱 그랬다. 얘네들이 1학년일 때도, 2학년일 때도 내가 가르쳐본 적이 없는, 간만에 그야말로 '신선한 관계'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담임을 오래 맡으면서, 고3 담임을 연거푸 치러내면서(!) 너무나 익숙한 틀로 아이들을 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터였다.


하지만 올해도 역시, 나는 몇 번의 실수를 저질렀다. 늘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내 섣부른 판단과 못 돼먹은 성질머리 때문에 아이와 나는 함께 상처를 입는다. 다행히도 그 녀석도, 나도 이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지만 늘 반복되는 내 실수가 이젠 더 이상 실수가 아닌 것 같아서 조금씩 걱정이 될 지경이다.


조만간 기말고사가 끝나면 '우리 반 라디오'를 꼭 해야겠다. 지나가는 말로 슬쩍 농을 던졌던 것뿐인데 의외로 기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나 보다. 그간의 미안함을 담아, 지쳐가는 고3의 여름을 큰 심호흡 한 번 하고 지나가봐야겠다.


그래, 내가 힘들어봐야 얼마나 힘들겠나.

이 녀석들은 고3인데.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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