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에서 우리 아이 행복할 수 있을까?

들어가는 글

by 생각한대로

6시 40분.. 침대에서 부스스 눈만 떠 네이버 기사를 쓰윽 훑는다.'생후 2개월 아이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친모...' '15개월 아이 시신 냉장고에 유기.. 연이어 첫 페이지에 뜨는 기사들에 ‘어휴…’ 신음소리가 절로 난다.

'말세다 말세!' 속으로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발을 옮긴다.


인덕션 전원을 켜 국을 데우고, 사과를 깎으면 6시 55분. 고등학생인 아들방으로 조용히 노크를 하고 들어간다. 이마를 살짝 쓰다듬으며 '아들~~~ 일어나자~~'

잠에 취해 무방비 상태인 아들을 조심스레 만질 수 있는 기회다. ^^ 사과를 깎던 손이 차갑지 않을까 살짝 내 목에 만져 녹이고 부드럽게 볼도 부비부비 해주고 이마도 쓰다듬으며 토닥토닥 잠을 깨운다.

최소 7시간은 자 줘야 몸이 개운한데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자꾸 잠자는 시간이 늦어져 안타깝다. 중학생 때와는 달리 학교도 멀어지고 등교 시간도 빨라져 하루 시작이 1시간은 더 빨라졌다. 몸은 겨우 일으켜 앉았는데 눈은 안 떠지나 보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5분이라도 더 자기! 등교 20분 전까지 꽉꽉 채워 자고 일어나 정말 후다닥 준비를 한다. 눈 뜨자마자 샤워하고, 머리 말리면서 사과 먹고, 옷 입으면서 밥을 초고속으로 먹는다. 아이가 양치질을 마치고 양말을 신을 즈음 난 현관을 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놓는다.


휴..... 오늘도 무사히 한 놈 보냈다!

열린 현관문을 닫고 뒤돌아서니 눈앞에 남편이 주섬주섬 셔츠를 입고 있다. 단춧구멍을 맞추고 있는 손은 저 혼자 움직이는 듯 눈은 멍한 게 잠을 깬 건지 만 건지.. 모닝 인사도 나눌 겨를 없이 남은 사과 한쪽을 포크에 찔러 쥐여주곤.. 남편을 쓰윽 지나.. "똥깡~~"이를 외치며 둘째 방으로 간다.


중학생 둘째는 그나마 팔팔하다. 30분은 더 자서 그런지 아직은 학업 긴장도가 덜 해서 그런지.. 알아서 기어 나오는 딸내미를 꼭 안아주고 마구 뽀뽀 세례를 하며 뒤로 쭈욱 넘겨 스트레칭을 시킨다. "오늘 피구대회 결승 날이에요! " "그래? 얼음물 싸줄까? " 이런 날은 물도 큰 통에 차갑게 준비해 줘야 한다. 학교 가는 걸 너무 신나 하는 딸내미가 고맙기만 하다.




첫째 아들은 중1~2 사춘기를 학업은 뒷전인 채 친구들과 신나게 놀며 보냈다. 분위기를 잘 타고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은 성향이라 늘 공부보다 우선인 게 많았다. 이런 아이에게 주변 분위기는 정말 중요했다. 중2 겨울방학. 아무리 놀아도 끝이 나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 우리 가족은 큰 결심을 하고 대치동으로 입성했다.


한창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는 틈을 타 재개발이 아직 안된 오래된 아파트 한편에 자리를 틀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첫 이사에 설레했고, 각자의 방을 새롭게 꾸미는 것에 신나 했다. 나에겐 복작복작한 이 도심 속에 산책할 수 있는 양재천이 바로 옆에 있어 나름 괜찮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대치동 입성기는 시작되었다. 이사 온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문득 가족 구성원 모두 열심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해주고 있는 이 시점에..


엄마인 난..


아이들의 행복을 고민해 보게 된다.


20년 가까이하던 일을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더 집중했던 시간들.. 원래 나라는 사람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가 무슨 신조라도 되는 양 살아온 사람이었다. 최대한 주변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게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적당히 괜찮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볼수록 아이들의 세상은 이상하게 뒤틀려 있었다. 주변에서 하라는 대로 남들 하는 대로 별생각 없이 따라 하다가는 안될 것 같았다. 대치동 엄마들 중 누군가는 '공부시킬 생각이 없으시군요'라고 할지도 모르겠고, 이상한 사고를 가진 나 같은 엄마는 멀리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 동네 아니 대한민국의 교육이 30년 전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대한민국 아이들 중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누구나할 것 없이 의사를 꿈꾸고 수과학을 못하면 인생 망한 것처럼 얘기하는.. 이과 성향이 아닌데도 이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대한민국. 과연 몇 십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주입식 반복, 암기식 교육으로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훌륭하게 자랄 수 있을까?


"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도대체 언제 창의적 사고를 하고 스스로 사유하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


강남 맘 카페에 들어가 보면 '몇 년째 소아 우울증 약을 먹이고 있어요. 축 늘어진 모습이 안쓰러워 보기 힘드네요..' '아이가 밤새 나쁜 맘먹을까 봐 불안해서 잠을 못 자겠어요. ㅠㅠ' '애가 공황장애가 심해져 기말고사를 포기했어요. 이대로 자퇴해야 하는 걸까요? ' 익명으로 올라온 글들을 읽어 내려가자면 마우스를 잡은 손끝이 찌릿하니 저려온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가슴에 돌 덩어리를 얹은 듯.. 정신이 멍~하다. '왜.. 도대체 왜... 아직 어린 이 아이들이 이렇게 아파야만 하는 걸까. 이게 올바른 세상일까? 이게 정상인 세상일까?' 훌쩍 큰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주변 세상이 너무 살벌하다. 얼마 전 대치동 학원가 한복판에서 마약음료사건이 벌어졌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음료를 들고 나눠주는 이를 봤다는 친구들이 솔솔찮다.


"우리 아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한편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학원 숙제를 해야 하기에 잠 안 오는 약을 먹이고 옷을 벗겨 문 밖으로 쫓아내가며 숙제를 시켰다고 한다. 학원 갈 때마다 울고불고하고 하는 아이를 1년 동안 쳐다보지도 않고 강하게 손을 뿌리쳐 놔두고 돌아섰단다. 어릴 때부터 집중력 높이는 약을 먹여가며 공부시킨다는 이 동네.. 초등학생이 미적분을 풀고 고등 수학 정도는 나가야 들어갈 학원이 있는 이 동네. 이 정도 선행과 공부량을 감당하고 자랐어야 대치키즈라고 할 수 있는 이 동네. 좋은 대학, 전문직, 보장된 미래.. 누구나 바라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아이가 감당 가능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할 때 바랄 수 있는 거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행복을 양보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의 세대는 부모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라는 말이 떠돈다. 이 말의 진위여부를 가리고자 함이 아니다. 단지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아이들은 독립을 해 집을 마련하기도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기도 어느 것 하나 수월한 세상은 아닐 거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이의 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 매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엄마들처럼 나 또한 아이들이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인생을 살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방법은 조금 달랐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행복을 나중을 위해 양보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학을 가도 우리 아이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는다. 대학만 가면 고생이 끝날 것처럼 아이들을 꼬시지 말자. 어찌보면 그 피나는 노력은 평생 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스스로 달려갔으면 한다. 고난이 더이상 이유도 모를 고난이 되지 않게...


우리 아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작년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 태양볕에 양재천 메타세쿼이아길의 나뭇잎들이 누렇게 변해버렸다.

'치료 중'이라는 현수막이 붙고 나무들이 지난가을 하나하나 관리가 되었다. 유독 눈이 많이 내리는 추운 겨울도 지나 다시 여름이 되면 초록초록 푸른 잎들을 볼 수 있을까? 메타세쿼이아 나무 한 그루도 이렇게 소중한데, 하물며 우리 아이들 한명 한명의 마음은 얼마나 귀할까.. 눈이 펑펑 온다. 솜털처럼 내리는 흰 눈송이가 참 예쁘다. 공부하느라 바쁜 아이들이 잠시라도 창밖으로 눈을 돌릴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잠깐이라도 친구들과 눈사람을 만들며 깔깔깔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삶의 소소한 행복과 감사를 오늘도 느낄 수 있길 기도한다. 인생 뭐 있나?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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