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디즈에서 라이브되는 모든 프로젝트를 알고있는 PM들이 말합니다
취업 면접을 준비할 때 언제 등장할지 몰라 항상 주머니 속에 대답을 가지고 다녔던 질문이 있다.
“지원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장점 혹은 단점에 대한 질문도 될 것이다)
물음표까지 끽해야 13글자 밖에 되지 않는 이 질문을 준비하는데, 2주를 훌쩍 넘긴 건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그동안 내세울 만한 특징도 제대로 모르고 살았다니. 무엇보다, 스스로를 가장 치열하게 어필해야할 시기를 목전에 두고 이 사실을 깨달았다는 게 더욱 당혹스러웠다. 꿈 속에서도 ‘너는 어떤 사람이니' 하고 자문할 정도로 몇 날 며칠 골머리를 앓다가, 뭐라도 건져보자는 심정으로 나의 특징들을 적어내려가 보았다.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식도락 여행보다는 보는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잘 먹는다
후각이 둔하다
운동과 청소를 좋아한다
적어놓고 보니 참 별게 없구나 싶으면서도, 이 별 거 없는 것들을 나 아니면 또 누가 봐주겠어ㅡ하는 마음으로 물끄러미 들여다 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한 가지 보이는 게 있었다. 이 모든 특징들이 결국 '나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누군가와의 차이점’이라는 거였다. 초록색이 파란색과 비슷하지만, 노란색이 섞여들어갔다는 차이때문에 파란색이라고 불리지 못하는 것처럼.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식도락 여행보다는 보는 여행을 좋아한다(보통의 여행객들보다)
하지만 잘 먹는다(주변 친구들보다)
후각이 둔하다(함께 사는 가족들보다)
운동과 청소를 좋아한다(고등학교 동창들보다)
그렇다면, PM들의 궁극적인 질문인 '크라우드펀딩스러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도 비교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1편 참고) 그리고 나는 그 대상을, 우리 아빠(크라우드펀딩을 잘 모르시는)가 크라우드펀딩과 헷갈려 하는 ‘커머스’로 잡았다. 헷갈려 한다는 건, 어딘가 많이 비슷하다는 것이므로.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을 손가락으로 더듬어가다보면 크라우드펀딩스러움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떠오르는대로 커머스와 다른 크라우드펀딩만의 특성을 떠올려보았다.
서포터가 믿고 투자한 돈이 어디로 가는 지 알려준다.
듣도보도 못한 제품/서비스다.
제품/서비스를 기획한 이유와 과정을 디테일하게 소개한다.
시장성이 아닌 다른 가치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
적고 나니 궁금해졌다. 동료 PM들이 생각하는 '크라우드펀딩다움'이 내가 생각한 지점들과 비슷할지, 아니면 미처 캐치하지 못한 또 다른 포인트가 있을지. 그래서 코로나 시국, 각자만의 공간에서 고군분투중인 동료PM들에게 어김없이 메신저를 보냈다.
PM업무를 하시면서
'크라우드펀딩답다'고 느꼈던 프로젝트와 그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개인적으로 펀딩금 사용계획이 상세할수록 크라우드펀딩스럽다고 느껴요. 크라우드펀딩은 사전에 제작된 물건을 ‘판매’하는 거랑 다른 거잖아요. 자신의 아이디어만 보고, 그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도록 펀딩해준 서포터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미에서 일종의 선물을 전달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서포터분들이 받는 제품이나 서비스도 '리워드(보상)'라고 부르죠. 그래서 '펀딩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으면, 카드에서 빠져나간 돈이 '지불'이 아니라 메이커님의 아이디어를 위한 ‘자금'이구나 싶어 더 크라우드펀딩스럽다고 느껴지더라구요.
이 프로젝트를 봤을 때 딱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아, 내가 이 프로젝트에 5만원을 펀딩하면 4만원이 나에게 올 곱도리탕 재료비로 쓰이는 거구나. 그리고 나머지 1만원이 미래의 또 다른 리워드로 흘러들어가는구나.' 바로 이렇게 펀딩금이 구체적으로 어디로 가는지를 확인할 때, 메이커님과도 한층 더 가까운 기분이 들어요.
아무래도 참신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봤을 때 크라우드펀딩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반드시 기술적으로 참신할 필요는 없어요. 전 오히려 평소에 느꼈던 불편함을 개선하는 프로젝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팬츠 정기배송 프로젝트를 본 적이 있어요. 계절마다 날씨에 맞는 옷을 매번 구매하기 귀찮은 사람이 있잖아요? 이런 일상적인 불편함을 파고들어 계절별 팬츠를 정기배송해주는 서비스라서 굉장히 인상깊었던 기억이 나요.
사실 아무리 참신해도 시장으로 바로 진출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인프라, 서비스, 인력을 구축해놨는데 예상한 만큼 구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손해를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크라우드펀딩은 펀딩받은 금액 만큼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기 때문에, 부담없이 참신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ㅡ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헤더PM님 질문을 듣자마자 라면 전용 냄비 프로젝트가 떠올랐어요. 평소에 라면 끓일 때 그런 생각 하잖아요. ‘라면 물 맞추기 너무 어렵다’, ‘설거지 하기 귀찮은데 김치는 꺼내 먹고 싶네’ 등 일상 속에서 스쳐가는 고민들이 있는데, 이 메이커님은 그런 고민들에 대한 해결책을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만드셨더라구요.
하지만 이 프로젝가 크라우드펀딩스럽다고 느꼈던 건, 단순히 참신해서가 아니라 '왜 이 제품을 만들었는가' 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적혀있었기 때문이었어요. 판매와 구매가 이루어지는 커머스와 달리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제품 기획 동기를 보고 펀딩을 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메이커님의 비전과 가치에 펀딩하는거죠. 그래서 이 라믈리에 메이커님처럼 제품 기획 의도나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프로젝트일수록 좀 더 크라우드펀딩스럽다고 느끼게 돼요.
※ 빌리의 프로젝트에서 헤더가 찾은 크라우드펀딩스러운 포인트
개인적으로 라믈리에 프로젝트에서 내가 발견한 크라우드펀딩스러움은 '제작 예정'이었다.
'제작 예정'이라는 변화가 허용되고, 완제품이 아니어도 사랑받을 수 있는 것. 그게 크라우드펀딩만의 매력이 아닐까.
PM업무를 하면서 제작과정이 너무 상세해서 놀랐던 적이 있어요. 스트레칭 알람봇 ‘링고’라는 제품이었는데(이름도 귀엽죠), 말 그대로 스트레칭할 타이밍과 자세를 알려주는 로봇이었어요. 저는 이 프로젝트처럼 ‘리워드를 태초부터' 보여주는 프로젝트는 처음이었습니다.
KTX에서 메이커님이 끄적인 메모장에서 태어나
3D프린팅이라는 험난한 과도기를 거쳐
이렇게 귀여운 링고가 완성되었던 거에요
커머스 사이트 상세페이지를 보면 제품 스펙, 구성, 가격 정보가 주를 이루고 있어요. 그런데 크라우드펀딩은 말 그대로 서포터분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필해서 자금을 모아야하기 때문에, 제품에 담긴 메이커님만의 이야기를 전달해야해요. 이런 이야기들은 나중에 메이커님들이 사업을 확장시키게 되면 두고두고 회자되어 브랜드를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 '창업스토리'가 되겠죠. 차고 안에서 주문을 받아 노트북을 팔았다는 스티브잡스의 이야기가 애플의 브랜드 이미지를 뒷받침해주는 보이지 않는 '빽'인것 처럼요. 이런 창업스토리를 누구보다 빨리 접할 수 있다는 게 PM업무의 매력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이런 '창업스토리'가 상세할수록 크라우드펀딩스럽다고 느껴요.
이건 조금 다른 포인트인데, 사회적인 가치가 두드러지는 프로젝트에서 크라우드펀딩스러움을 발견해요. 시장에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살아남으려면 수익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잖아요. 그래서 시장가치가 없으면 기부가 아닌 이상 세상에 빛을 보기 어렵죠.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에게 신뢰도를 바탕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기부를 받는다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크라우드펀딩이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기쁨재가복지센터 공예 프로그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만드신 '할드메이드' 목도리를 리워드로 제공하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만약 이 목도리들이 다른 목도리들과 함께 진열되어 팔리고 있었다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수 만드신 목도리라는 포인트가 눈길을 끌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펀딩이기에, 목도리에 담긴 '어르신들의 치매 예방과 악화 방지'라는 사회적 가치에 투자를 하는 서포터분들이 많더라구요. 결국 이 프로젝트는 85만원 가량의 모금액을 달성하면서 성공했어요. 심지어 어떤 서포터님은 해당 프로젝트 커뮤니티 댓글에 '좀 더 많이 펀딩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남겨주셨더라구요. 크라우드펀딩이 아니라 판매였다면, 아마 이 목도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동료 PM들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선 내가 짚어낸 지점과 같았고, 때로는 생각지 못한 포인트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크라우드펀딩스러움'의 공통점은 명문화된 사전이나 연구자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와디즈 PM들이 매달 1000여 개의 프로젝트들을 보면서 은연 중에 인지하는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1편에서 나왔던 질문, '왜 어떤 프로젝트는 커머스같다고 느끼고 다른 프로젝트는 크라우드펀딩스럽다고 느끼는가?'가 가리키는 지점에, 정확히 커머스와의 차이점에 크라우드펀딩스러움이 있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크라우드펀딩다움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또 새로운 특징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프로젝트들 속에서 크라우드펀딩스러움을 자아내는 ‘느낌’들을 핀셋으로 살짝 집어, 그것들이 잘 보이도록 브런치라는 백색 종이에 살포시 얹어보려 한다. 와디즈 PM들이 고민하는 크라우드펀딩스러움을 보여준 프로젝트들에 고마움을 표하는 의미에서.
처음보는 목도리 컬러설명
PM업무를 하면서 이런 귀여운 문구들을 발견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