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FFLE Jan 18. 2024

스페인은 메시도, 피카소도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

신혼여행이었고, 바르셀로나였다. 예전이었다면 FC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보러 갔겠지만 메시는 이제 스페인에 없다. 바르셀로나! 하면 바로 메시! 가 떠올랐던 옛날이 그립다. FC바르셀로나 역사도 보고, 유니폼도 걸쳐 봤지만 설렘과 흥미는 오래가지 않았다.


미술작품에 관심이 생긴 이후여서 그랬는지 거장이라고 일컫는 피카소를 만나기 위해 미술관을 찾았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조예는커녕 감상 방법도 몰라 쭈뼛쭈뼛하다 나왔다. 그리고 예약해 둔 근처 식당을 방문했다.     

메뉴 주문 뒤 화장실에 갔다. 그러다 그림 하나를 마주했다.



그림 안에는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셜록 홈즈를 패러디한 것처럼 점잖게 양복도 빼입고, 외알 안경까지 선보이고 있었다. 덥수룩한 하관은 근엄함을 더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압도한 건 다름 아닌 눈빛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꿰뚫으려 하는 진지한 눈빛,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 반쯤 체념한 눈빛, 그리고 조금 화가 난 듯하지만 침착한 눈빛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집 화장실 아니라고 막 사용하려고 그랬어?
어디 한번 해봐. 그럼 넌 나만도 못한 인간이야.
나를 봐. 나는 격식을 갖추고, 신사처럼 행동하지. 너희와는 다르다고.


바르셀로나에서 본 그림 중 단연 최고였다. 장소에 맞게 메시지를 전달하니 그 힘이 셌다. 인간의 초상화보다도,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죠’의 스페인 버전 보다도 그 힘이 셌으리라.


그림을 걸어 둔 사람은 분명히 사장님이었겠지만, 궁금한 게 생겼다.

      

1. 작가가 애초에 화장실에 걸기 위한 그림으로 그렸을까?


2. 사장이 완성된 그림을 사서 화장실에 걸어 두었을까?


정답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작가든 사장이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재주(nudge?)가 있다고 본다. 나부터도 그림을 마주한 순간 움찔했다. 잘못하게 되면 더 수치스러울 것 같다는 기분마저 들었으니까.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 그림은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어서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적은 나이가 아니건만 아직도 사람은 어렵다. 또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렵고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더 어렵다.





사족


일본 전국시대의 걸출한 인물들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울지 않는 새가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새를 죽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를 울게 하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답변한다.

      

새를 울게 하고 싶은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유명한 그림을 볼 수 있는 눈은 도대체 언제쯤 길러지는 걸까.

▲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재해석한 피카소의 시녀들


매거진의 이전글 술 마시기 전 현금을 뽑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