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와글 청년평화캠프 '통일되면 뭐하지?' 참가자 후기
민주당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이 적어도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확실한 진전을 이뤄낼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봄 남북정상회담과 이어지는 이산가족 상봉 등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지지하고 응원하는 입장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불안감도 슬며시 들었다. 그 점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6월 어느 날 SNS를 통해 와글의 2018 청년평화캠프 ‘통일되면 뭐하지?’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고3 수능이 끝나고 통일부에서 전국의 많은 청소년들과 다녀온 금강산 여행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북한 사회, 두려움이 컸던 북한 사람에 대한 인상이 많이 바뀌었고, 차단되고 가공된 정보 속에서 제대로 사실을 찾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되었다. 그 뒤로 민간차원에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교류협력 사업에 대한 필요와 자유로운 왕래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정권에 따라 특히 큰 영향을 받는 남북관계의 특이성 때문에 개성공단 등 의미 있는 협력 사업들이 좌초되고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 과정들 속에서 뿌려놓은 씨앗들이 싹을 틔우지 못하고 그 명을 다한 것들, 그런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통일되면 뭐하지?’라는 질문은 앞으로 다가올 한반도 평화 체제와 나아가 동북아,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과 이를 위한 민간의 다양한 실험들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최근의 급변하는 남북관계에 대한 불안감은 사실 남북관계 그 자체에 대한 불안감 보다는 통일이 어쩌면 금방, 또 어느 날 갑자기 펼쳐질 수도 있겠는데, 나를 포함한 우리의 준비는 어떠한지에 대한 불안이었다. 그래서 ‘통일되면 뭐하지?’라는 어쩌면 막연한 질문 앞에 뭐라도 해봐야한다는 절박함 같은 것이 밀려들었다.
이번 캠프는 4박 5일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하산, 크라스키노 일대의 답사와 현지에서의 교육, 워크샵 등을 통해 역사, 국제정세, 평화통일, 혁신아이디어 공유 등을 진행했고, 캠프 이후에도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실제 프로젝트로 실행된다. 이 과정에서 특히 변화를 만들어갈 혁신 주체로서 청년세대에 주목하고 전국적으로 참가자를 모집해 서로간의 열띤 토론과 교류, 우정을 나누는 시간으로 기획되었다. 캠프 시작 전에는 온종일 하루 워크샵을 통해 사전 교육과 조별 토론, 아이디어 회의, 개별 과제 수행 등을 통해 캠프 일정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었다.
드디어 8월 26일 일요일 아침, 일찍 공항에 모인 우리는 대한항공을 타고 1시간 시차가 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출발했다. 날씨는 우리와 비슷했고 끝없이 펼쳐진 대지와 하늘이 세계 최대의 면적을 가진 러시아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으로 도착한 우수리스크에서는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의 흔적들을 찾아보았고, 소련에 의해 강제이주 된 고려인들의 아픔을 엿볼 수 있는 고려인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또 이 곳 연해주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싸워 온 최재형 선생의 생가와 활동지를 둘러보고 전 날 큰비로 인해 도로가 잠겨 예정된 이상설 선생 유허지와 발해유적지는 준비해 온 자료와 설명으로 대체하였다.
다음날은 일찌감치 채비를 했다. 장장 4시간 동안 크라스키노를 향해 달려갔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와 하늘을 배경으로 우리 캠프의 후원사인 유니베라 대농장이 위치한 크라스키노에서 이틀간 묵기로 했다. 이 곳은 650만평 대지의 목장과 농장, 그리고 위즈덤플레이스라는 숙소 겸 워크샵 공간이 위치해 있다. 이 곳에 지금의 모습을 일궈온 유니베라의 장민석 법인장이 우리를 극진하게 환대해 주셨다. 크라스키노 전망대에서는 중국, 북한과 이어지는 담대한 대지를 목격하고, 호연지기를 다져보았다. 이어서 안중근 의사의 단지 동맹비에 가 우리의 역사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봤다.
셋째날은 숙소에서 온종일 워크샵을 통해 통일이냐 평화체제유지냐를 두고 토론을 통해 의견을 교류했다. 생각보다 첨예하고 열띤 토론 과정 속에서 서로 통일과 평화에 대해 인식하는 점,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봤다. 이후에 전문가 기획위원들의 발제를 연달아 들으면서 복잡했던 생각도 정리되고, 몇 가지 의문도 동시에 들었다. 저녁식사 이후에도 조별 활동을 통해 다음날 프로젝트 발표를 준비하며 밤을 보냈다. 조별로 준비된 프로젝트는 어쩌면 무모할 수도 어쩌면 너무 작고 아이디어 일 수도 있었지만, 상호간의 질문과 의견 개진을 통해 내용을 보완하고 또 가상화폐 방식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등 실제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했고, 실제 씨앗 자금이 지급되도록 과정이 설계되어 의미 있었다. 캠프 이후 조별 활동이나 관심 있는 참가자들과의 자유로운 협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나 역시도 다양하게 참여해볼 생각이다.
오늘 저녁은 특히나 더 극진히 대접 받았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기분 좋은 기대와 응원을 보내는 느낌을 받았달까. 사람들에게 받는 환대와 존중은 큰 에너지와 안정감을 선사하는 것 같다. 좋은 장소, 좋은 음식, 그리고 좋은 술과 좋은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고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었어도 충분히 친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넷째날 크라스키노의 광활한 대지를 뒤로 하고 우리의 마지막 일정이 진행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혁명광장을 시작으로 지상요새, 신한촌 기념비, 기차역, 독수리 전망대 등을 둘러봤고, 마지막 밤의 수료식과 정리하는 워크샵을 끝으로 캠프가 막바지에 다 달았다. 4박 5일간의 필드워크와 워크샵, 교육과 토론 등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고민이 깊었다. 생각은 많아지고 해야 할 일도 많이 보였는데, 과연 그것을 누가, 어떻게, 언제 해 나가야 할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우리와 사전 워크샵부터 전체 일정을 함께하며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써주고 용기와 응원을 북돋아 주었던 유니베라의 황규철 상무의 말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러시아엔 길이 없다, 방향만 있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는데, 본인은 “러시아엔 잘 닦인 길은 없지만 인내심과 끈기를 갖고 나아가면 길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연해주의 광활한 가능성을 보고 이곳을 개척해온 유니베라가 북한, 중국과 인접하며 농업기반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이곳에서 청년들과 함께 평화, 통일을 상상하는 캠프를 후원했다. 왠지 황상무의 말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비전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수수께끼 같은 생각만이 가득 찼다.
와글이 이전부터 소개하는 전 세계 다양한 정치 실험과 도전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하며 지켜봐 왔다. 나의 진보정당에서의 정치활동에도 많은 부분 접목하고 도입하고 싶은 부분도 많았고, 앞으로 그럴 것 같다. 그 와중에 작년 청년정치캠프에는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그러지 못한 게 이번 캠프 참여를 결정한 중요한 이유였다. 와글 캠프는 앞으로 우리사회 정치주체로서의 청년, 사회혁신가, 시민사회활동가 등 다양한 청년들과 교류하고 고민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나아가 선배세대들이 해왔던 고민과 한계 위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줄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구나 사전 워크샵과 개인과제 등도 할 때는 툴툴거리고 힘들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훈련과 역량을 쌓아가도록 하는 것에 사실 도움이 되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사전 워크샵과 캠프과정을 함께한 전문가 기획위원분들의 참여도 좋았다.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 기획위원과 네크워크를 형성하고 캠프 이후에도 교류할 수 있음도 좋은 장점이다.
4박5일. 러시아에서 나는 무엇을 남겼을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잘 닦여진 길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 할, 우리가 개척해야 할 넓은 대지와 기회를 엿보고 왔다. 그것을 함께 할 동료와 팀을 꾸려보았다. 그럼 이제는 움직이고 부딪혀 깨지고 단단해 질 일이 남았다. 통일 한반도, 그 길을 우리가 열어보겠다.
2018 와글 청년평화캠프 '통일되면 뭐하지' 참가자 문정은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