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jour, Hi로 시작하는 대화

불어와 영어 두 언어가 공존하는 도시

by waicee

문득 'Bilingual' 이란 단어를 처음 배울 때가 생각난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새로 들어간 영어학원은 훨씬 어려운 수업을 가르쳤고, 받아쓰기와 단어 암기를 하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들에 좌절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암기 숙제 중에 나왔던 bilingual의 스펠링을 자꾸만 'linguel'로써서 틀렸는데(저건 링구알이어야지! 라는 나름의 논리와 함께) 그 뜻은 더욱 이해가 안 갔다. 두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이라니, 배울 때만 해도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싶었다.


비행기를 타고 몬트리올 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기장은 항상 불어로 "Bievenue a Montreal"로 멘트를 시작한다. 몽헤알이라니, 뭔가 버터를 잔뜩 바른 것만 같은 단어에 왠지 표정이 찌푸려진다. 몬트리올의 모든 표지판은 불어가 먼저, 영어가 그 밑에 좀 더 작은 폰트로 적혀있다.

퀘벡주 법 상 영어를 더 작은 폰트로 표기해야 한다.


몬트리올은 그야말로 "Bilingual"이라는 단어가 가장 알맞은 도시다. 불어'만'을 쓰는 퀘벡주에서 유일하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유창한 영어를 하고, 또 반대로 영어로 열심히 떠들다가도 불어 단어가 좀 더 자기 뜻을 잘 표현한다고 순식간에 대화가 불어로 바뀌어 버리는 곳이다. 내가 다녔던 대학교는 영어 학교라 불어 한마디 못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불어가 더 편한 학생들을 위해 불어로 에세이나 시험을 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슬슬 불어가 들리기 시작하고, 몬트리올 섬 동부 쪽이나 섬 바깥부터는 완전히 불어권이 된다.


지금은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 불어를 주로 쓰는 편이지만, 예전 몬트리올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주로 썼다고 한다. 20여 년 전 퀘벡 분리운동 투표 (Referendum)가 한창일 때, 수많은 영어권 사람들과 기업들이 몬트리올을 떠나 토론토로 이주했고, 이제는 섬 서쪽의 West Island라는 지역과 다운타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불어가 장악했다. 다만 이 여파로 대기업 본사들이 여럿 떠나면서 그때부터 몬트리올은 하향세를 면치 못하고 결국 토론토에게 캐나다 제1도시를 내어주고 말았다.

왼쪽 큰 빨강부분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하고, 몬트리올섬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에서 독립 찬성표를 던짐. 고작 1퍼센트 차이로 간신히 독립이 부결되었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두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inefficiency 가 꽤 있지만, 몬트리올의 특색은 바로 이 두 언어 시스템에서 생긴다. 북미의 가장 큰 도시중 하나지만 옛 프랑스의 영향으로 유럽식 건축양식을 볼 수 있고, 프랑스 말고도 레바논, 모로코, 아이티 등 불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나라에서 이민을 와서 독특한 문화를 구축한다. 고품격의 프랑스 음식들과 다양한 민족음식들 덕분에 몬트리올은 외식의 도시라 불리게 된다.

맛있지만 비쌌던 프랑스 정찬

레스토랑이나 편의점을 들리면 종업원은

"Bongjour, hi"라고 인사한다. 여기서 "Bonjour"하고 답하면 그 후 대화가 불어로 이어지고, "hi" 나 "Good morning"으로 답하면 영어로 이어지는 식이다. 불어를 잠깐 배울 때 써보겠다고 카페에서 Bonjour로 답했다가 속사포 같이 빠른 불어에 주눅 들어 sorry I actually cant speak French... 하고 영어로 주문한 후 자리로 황급히 돌아와 쪽팔려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미국계여서 모든 직원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불어가 더 편한 사람들 (Francophone)끼리는 수다를 떨 때나 일할 때도 불어를 쓰는 편이라, 내가 낄 때만 영어를 써서 조금 어색하기도 하다. 다행히 지금 팀의 사람들은 영어를 더 편히 써서 점심시간이 많이 편해졌다.


이쯤 되면 불어를 배울 때도 됐는데... 대부분의 불어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처럼, 나 또한 졸업 후 토론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할 계획이었다. 우연히 지금 회사에서 계속 일하게 되어 몬트리올에 지내게 되었는데, 아직도 언젠간 몬트리올을 탈출(?)할 거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 불어 배우는 걸 미루는 걸까. 예전에는 바빠서 라는 핑계를 댔지만, 요즘에는 그냥 게을러서 그런 거란 걸 인정하며 살고 있다. 오래 살다 보니 기본적인 생필품이 불어로 적혀있는 건 대충 이해하고, 다들 영어도 쓸 줄 알다 보니 굳이 필요성을 못 느끼는 듯. 그래도 도시를 완전히 즐기려면 배우면 더 좋을 텐데.. 하며 불어책을 사놨지만 오늘도 퇴근 후 공부보단 넷플릭스를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