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하찮게 여겨야 한다면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 일상 리뷰(25.08.04~25.08.10)

by 이고양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는 비정기 일기 형식으로 작성하기로 했어요.

시즌 1처럼 일상 속 이고양의 생각도 담아내지만,

시즌 1과는 다르게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도 함께 적어나갈 예정이에요.

그래서 이름은 '이고양 일상 리뷰'.

이따금씩 찾아올게요~



[25.08.05 화요일] 감정을 하찮게 여겨야 한다면?


'감정을 하찮게 여겨야 한다' 라는 말을 했더니, 이 말이 주변 몇 몇 사람들을 자극해버렸다.


우선, '감정을 하찮게 여겨야 한다'는 말은, 그만큼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이성으로 감정을 컨트롤 하는 삶이 훨씬 더 유익한 삶이다. 라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지만,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해서 딱히 더 귀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긍정적인 감정은 마음껏 활용하며, 부정적인 감정은 억누르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감정을 다소 하찮게 여길 필요가 있다.


이것이 최근 내가 주변인들에게 이야기하는 화두였고, 이 말이 몇 몇 사람의 신경을 건드려 버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반응한 것은 나의 애제자인 'JH군'이었다. 그의 주장으로는 감정이라는 것은 인간과 AI를 구분짓는, 즉 인간성의 징표와 같은 것이며, 그것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남아있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 조차도 스스로를 위한 작용이며 그렇기 때문에 감정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라는 것이 그의 주장.


거의 2시간이 넘는 토론에도 서로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으며, 결국 서로에게 과제와도 같은 질문을 남긴채 토론이 끝났다.


내가 그에게 남긴 과제는 이것이다. '분노와 걱정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불필요한 감정이다. 분노와 걱정이 있어야만 나 자신에게 이익이 생기는 것이 있는가? 분노와 걱정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경우가 존재하는가?' 물론 나는 절대로 없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분노나 걱정보다 더 좋은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대체수단이 존재한다.


한편, 그가 나에게 남긴 과제는 이것이다. '감정이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왜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가?'


어라.. 이건 좀.. 쉽지 않은데?




[25.08.08 금요일] 사실은 나 또한 그렇게 쓰지 않았던가


'새벽 세 시, 공시생 일기'라는 책을 읽었다.

평소라면 아마 읽지 않았을 이야기. 부정적인 감정과 투정과 푸념, 그리고 자기합리화가 가득한 책.

원래는 책으로서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던 그런 책.

이 책을 최근에 집어든 이유는, 그저 최근 연이어 발생했던 감정에 대한 토론의 여파였다.

내가 평생을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을, 그럼에도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인생의 모든 것들은, 때때로 우연처럼 보이는 것 조차도,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하필 지금 이 순간 이 책이어야만 했던 이유.

내가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이 책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감정도, 투정도, 푸념도, 그리고 자기합리화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작가에게 공감할 수 있었고 응원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아니 이 글에는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써냄으로써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면, 푸념이나 투정정도는, 아니 조금은 심한 자기합리화 마저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은

나 또한

그런 글을 꽤 써보지 않았던가

나의 힘듬에 해나 푸념을

그리고 나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합리화의 글들을.

그 글들은 나에게 부정적이였던가?

아니 후련헀지.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이 떠올랐다.


때때로 그런 글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쁘지 않게, 아니 오히려 좋게 작용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거부해왔던 모든 글들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여전히. 자기비하와 우울의 합리화는 인정하기가 어렵다.







[25.08.10 일요일] 같은 하루에 대한 두 가지 방식의 일기



우리가 자주 오는 '봉이 호떡 옆 카페'. 정확한 이름은 뭔지 잘 모른다.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홍토끼와, 있을거라고 장담하는 이고양

다행이다 자리가 있어서. 사실은 많이 쫄았었다. 없으면 엄청 잔소리 했었을텐데.

자리에 앉아 각자 할일을 하려는데 음악이 지나치게 신난다.

홍토끼가 춤을 추고 싶다고 하길래 나는 대뜸 주변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어깨춤을 추어버렸다.

홍토끼가 빵 터졌다.


-------------------------------------------------------------------------------


이름이라고 칭해지는 것들은 사실 낱말의 나열일 뿐이다.

기억의 구성은 낱말이 아니라 의미로 이루어져 있기에, 이 곳 역시 이름이라는 낱말 보다는 우리가 기억을 구성하는 방식을 따라 칭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일것이다.


한 사람은 공간을 채우는 사람의 밀도를, 그리고 그 높은 밀도에 밀려나 가지지 못할 우리의 영역을 걱정한다.

다른 한 사람은 앞선이의 걱정을 단호한 확신으로 채우려 한다. 근거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근거의 부재보다 더 강한 것은 걱정의 비구현성이다.

걱정하던 일은 실현되지 않으며 근거를 갖지 못한 확신은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한 숨의 안도가 되었다.

자신갑은 떄때로 불안감으로 찾아온다. 만약 지금 이루어진 현실이 반대로 이루어 졌었다면.

그 현실에는 타박하는 이와 타박받는 이가 존재했을 것이다.


책상위에 흐드러지는 노트, 그리고 그 위에 덧씌워지는 비트.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우리의 책상 위에 어우러질 때 그녀는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린다.

작은 흥얼거림. 들썩거리는 몸짓.

그것으로는 충족되지 않은 자아의 실현은 어쩌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구속된 영혼의 반증.

족쇄를 깨부수기 위해서 나는 더욱 빠르고 강렬한 몸짓을 시작한다.

비트를 쪼개고 들어가는 관절 연골이 터져나가는 소리.

그녀의 웃음도 함께 터져나오는 순간.

매거진의 이전글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뻔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