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뻔뻔함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 일상 리뷰(25.08.02~25.08.03)

by 이고양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는 비정기 일기 형식으로 작성하기로 했어요.

시즌 1처럼 일상 속 이고양의 생각도 담아내지만,

시즌 1과는 다르게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도 함께 적어나갈 예정이에요.

그래서 이름은 '이고양 일상 리뷰'.

이따금씩 찾아올게요~



[25.08.02 토요일]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뻔뻔함


어쩌다 보니 윤동주 시인의 작품인 '별 헤는 밤'을 영시로 번역할 일이 생겼다.

단순히 한글 문장을 영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조금 바꾸더라도 시의 정서를 온전히 살려내야 했기 때문에, '별 헤는 밤' 시를 수도 없이 읽었다. 마치 내가 윤동주 시인이 된 것 처럼. 아니, 마치 '별 헤는 밤'이 내가 쓴 시인 것 처럼.


시의 정서를 알기 위해서 윤동주 시인에게 너무 몰입한 탓인지, 영시로 모두 번역을 마친 후에도 별 헤는 밤의 감정이 마음 속에 깊게 남아있다. 시의 내용을 계속해서 곱씹고 되짚어본다. 그리고 나를 그 시에 투영해본다.


나의 가을 밤 별들은 무엇일까. 나의 겨울과 봄은 무엇일까.

물론 민족의 아픔이 곧 개인의 겨울이였던 윤동주 시인만큼의 극적인 계절까지는 아직 마주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정도로 아픔을 겪어야만 꼭 겨울일까.

모두의 겨울은, 모두의 봄은 각자의 크기로 찾아온다.


나의 계절을 정의 내리기 위해서는 아직은 조금 더 살아봐야 할 것만 같다.

아직 나의 계절은 불분명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윤동주 시인의 마음에 몰입했기에 깨닫게 된 것.

내가 지금 반드시 해야하는 것.

지금 나의 계절이 무엇인지를 찾는다는 이유로 미루어서는 안되는 것.

사실은 하마터면 또 그런 저런 핑계들로 미룰 뻔 한 것.


그것은

시대 앞에 선 자신의 수치스러움 마저 시로 써낸 윤동주 시인처럼

미련을 추억이라는 의미로, 그리고 결국에는 각오로 바꾼 윤동주 시인처럼

나 또한 내가 해야할 바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2년 가까지 비워둔 일기장을 뻔뻔하게 다시 쓰는 것이 그것이고

바쁘다는 핑계속에 감추어둔 나태함과 끈기없음을 용기있는 재도전으로 바꾸는 것이 그것이다.


흐지부지 중도포기가 나의 나쁜 습관이라면

재도전은 나의 정체성이다.




[25.08.03 일요일] 그리고 별 하나의 사랑 (이번주 일요일에 쓰는 지난주 일요일 일기)


일기, 혹은 일상의 리뷰라는 것이, 꼭 그날의 이야기를 써야만 하는걸까?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지만, 우리의 마음과 감정은 때때로 과거의 시간을 들여다 보고 그 곳에 머무르기도 한다. 과거의 기억에 웃기도 하고 과거의 감동에 다시금 눈물 흘리기도 하지 않던가.


별다른 것은 아니고, 어제부터 다시 일상리뷰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러고 보니 지난 주의 묵호 여행이 너무나 마음에 밟혀서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수가 없는것 아닌가? 그러니까. 8월 3일에 쓰는 7월 27일의 일기인 셈이지.


꼭 오늘의 일기를 오늘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지나가버린 날의 일기를 쓰면 안되는 것은 아니니까.




좋은 여행은 무엇일까?

완벽한 일정? 아름다운 풍경? 좋은 동행인? 맛있는 음식? 좋은 숙소?

이 모든 것들도 다 좋은 여행의 조건이 될 수 있지만, 나는 좋은 여행을 감히 이렇게 정의내려보고자 한다.

'기대했던 것 보다 더 행복했던 여행'


여행을 계획하고 나면 사실 이미 그 곳에 절반쯤은 다녀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좋은 숙소를 찾아 이곳 저곳을 비교하다가 예약을 했을 것이고, 그 지역만의 맛집도 이미 검색을 통해 많은 후기들을 살펴봤을 것이다. 수 많은 리뷰들 속 아름다운 풍경들은 이미 사진과 영상으로 잔뜩 본 상태일 것이다. 사실 여행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인터넷 속의 넘쳐나는 간접경험을 한다는 것이고 이미 여행을 어느정도는 다녀온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어느정도 예상된 기대감이라는 것이 생길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러이러한 좋은 일들이 있겠지?'


그 예상된 기대감이 예상대로 충족 되었을 때에 우리는 만족감을 느끼고, 예상대로 충족되지 않을 때 실망감을 느낀다. 그리고, 예상된 기대감을 넘어서는, 예상을 초월해버리는 여행에서 우리는 짜릿한 행복감을 느낀다. 앞으로 평생 이번 여행을 기억할 수 있을것만 같은 행복함 말이다.


나에게는 이번 묵호 여행이 예상된 기대감을 초월하는, 아니 상상도 못했던 즐거움을 만났던 여행이었다. 확신컨데 함께 갔던 홍토끼 역시 그랬던 것 같다. 1주일이 지나서도 묵호에서의 즐거움과 감동을 이야기 하는걸 보면 말이다.


KakaoTalk_20250727_181637083_05.jpg



묵호 여행이 좋은 여행이 될 것이라는 느낌은 처음 직감한 것은, 묵호의 바다와 하늘을 마주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묵호의 하늘과 바다는 사진이 다 담지 못할 만큼 푸르고 시원했다. 사람의 눈이 최고급 카메라보다 높은 화소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확연하게 체감이 되었다. 사진에는 그 푸르름과 청량함이 다 담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매력적인 청량한 바다가 우리를 유혹했다.


분명히 여행 계획 중에는 '혹시 바다에 들어갈 지도 모르지. 아마 안들어 가겠지만' 정도로만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러면서도 홍토끼와 나 둘다 속마음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묵호바다 앞에 우리는 세이렌의 유혹에 빠진 선원들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그 바다 속에 몸을 던지고 싶어졌다. 아니, 들어가는 것은 확정이고,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옷가지나 신발을 사기 위해 가게를 급하게 찾아다닐 정도였다. 그 시간마저도 황당한 즐거움이었다.


우리가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졌던 이유 중 하나는 '생각보다 너무 푸르고 예쁜 바다' 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적은 해변'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마치 해외 휴양지의 현지인만 아는 시크릿플레이스 처럼,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알맞은 정도의 사람들이 있는 해변이 우리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나는 거의 5~6년만에, 그리고 홍토끼는 거의 10년만에 바닷물에 몸을 담구었다.


바다에서 함께 놀던 시간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그 행복한 시간을 묘사할 글 재주가 없다. 아니, 세상 그 누구라도 그 행복감을 글로 표현하기는 힘들것이다.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기억할만한 표현을 찾자면... '신이 허락한 1시간' 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약 1시간이 조금 안되는 그 시간은 나와 홍토끼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1시간이었다. 딱히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해수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이 평생 남을 것이라 확신한다. 다음 여름에 또 다른 해변을 가더라도, 아니 설령 묵호를 또 다시 오더라도, 그 순간의 행복함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단순히 묵호 해변이 아름다워서도 아니고, 우리가 오랜만에 해변에 들어가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그 순간은 기적처럼 행운처럼 찾아왔다. 그건 아마 신이 우리에게 딱 1시간 동안 허락한, 우리의 인생에 빛나는 순간 중 하나인 것이다.


KakaoTalk_20250802_142843427_02.jpg Drawing by Hong u(홍토끼)


그리고 늦은 저녁에는 홍토끼가 이고양에게 허락한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술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홍토끼가 처음으로 나와 함께 맥주전문점에 가준 것이다. 나는 맥주가 함께하는 수다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홍토끼가 술을 즐기지 않기도 하고, 마침 홍토끼와 연애를 시작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차를 끌기 시작했던지라, 운전을 이유로 술을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었다. 그러다 보니 맥주&수다에 갈증을 느끼던 차에 홍토끼가 이번 기회에 함께 먹자고 흔쾌히 동의해준 것이다.


역시나 그렇듯이, 거창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엄청 웃긴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늘 차안에서 하는 수다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역시도 나에게는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 중 하나였다.


이번 묵호 여행이 평생 기억에 남을 좋은 여행이었던 이유는, 이토록 신이 허락하고 홍토끼가 허락한, 예상을 뛰어넘는 특별한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순간들을 몇번이나 더 만나게 될까? 삶의 모든 순간이 그토록 반짝일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꽤 많은 반짝임들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그 모든 순간은 아마 홍토끼와 함께하기 때문에 찾아 올 것 같은 예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결핍은 때때로 축복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