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면
법인카드로 택시도 타고 팔자 좋다는 말을 들을 때 하고 싶은 말
학생이던 시절 택시를 타면 요금기에서 달리는 말발굽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짧은 거리여도 용돈에 비하면 턱없이 큰 지출이었기 때문이다. 택시란 급할 때, 부모님과 이동하지 않을 때 이용하는 것이었고 혼자보단 여럿이서 탈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외근이 많은 직업을 선택한 이후 인생에서 탈 택시란 모두 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택시를 타고 서울과 경기를 넘나들기도 하고, 눈이 오는 날이면 두 시간 가까이 그 안에 갇혀있기도 했다. 이후 축적되는 야근과 과로로 에너지와 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개인적인 일을 볼 때도 택시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얼마나 택시를 많이 탔던지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서 내리기 전 자동적으로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 카드를 준비했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택시를 많이 탄만큼 좋은 기사님들도 만났지만 반대의 경우가 훨씬 잦았기에 내게는 일종의 원칙이 생겼다. 자리는 조수석을 선호하게 되었다. 앞 좌석에 앉아 의자를 뒤로 쭉 밀어 다리를 뻗을 공간을 확보하고 등받이를 확 젖힌다. 그래야 멀미도 덜하고, 험한 운전에도 덜 피곤하게 느껴졌다. 초반엔 기어코 뒤에 앉히려는 기사님들에 기세에 눌려 앞문을 열었다 닫는 일도 잦았는데 몇 년 지난 후부터는 제가 허리가 안 좋아서요,라고 칼같이 말하며 안전운전을 당부했다. 내비게이션대로 가 달라는 요청만 확인하고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눈을 감는다. 가능한 다른 말에는 시들하게 대답하거나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다른 어떤 대답도(피곤하다거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직접적인 답변을 포함한다) 놀라우리만큼 큰 동력을 삼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기사님들에게 이미 여러 번 호되게 당한 후였다.
위에 적어둔 태도를 정리하면 그다지 호의적인 손님이 되기 어려운데 안타깝지만 모두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원칙이다. 내 돈을 주고 이용하는 서비스에서 더 이상 불쾌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서비스를 구매하는 입장이어도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데, 밀폐된 공간에서 때때로 나는 너무 쉽게 약자가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인 <타다> 도 한참 애용했다. 택시를 타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덜 소모된다는 이유만으로도 좀 더 시간이 걸리고 금액이 비싸더라도 자연스레 손이 갔다. 출범 후 금세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타다>가 잡히지 않아 택시를 타면, 밑도 끝도 없이 택시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몹쓸 사업이라는 기사님들의 역정을 받아내야 할 때도 있었다. 이 사태를 계기로 사납금을 떼 가는 택시회사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일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말을 아꼈다.
코로나 시대가 도래한 지금은 창문을 여는 것을 제지당하거나 내가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한참 들어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운전자의 사선 뒤쪽에 가능한 멀리 앉고, 공간은 필요한 최소한의 대화만으로 채워진다. 여전히 급정거와 급발진을 하는 택시기사를 만난다. 그럴 때면 전과 같이 창문을 조금 열고 멀리 내다보며 어서 택시에서 내리기만을 바란다. 부디 남은 시간 동안 손님으로써 최소한의 대접을 받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