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과에 진학한 것은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별 다른 꿈이나 직업에 대한 고민 없이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영어 선생님이 되겠거니 하며 지내온 내게,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먼 친척이 ‘간호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환자를 교육하는 일이란다’라고 말했다. 뼛속까지 문과생인 내가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들어본 해부생리학 수업이 생각보다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또다시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내린 선택이었다. 환자를 돌본다는 사명감이나,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크게 생각하지 않고 내디딘 발자국이었다.
남의 말만으로 내린 결정은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기초의학 수업은 당최 알아들을 수 없고 재미도 없어서 수업이 끝나기만 하면 아이쇼핑을 하러 돌아다니기도 하고, 시험 전날에도 친구가 잡아앉혀 놓지 않으면 다른 데로 새기 마련이었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좋아하는 사람이 외국에 살 때에만 플러스가 되는 것 같고 도통 좋은 점을 모르겠는 일이었다. 그래서 병원 말고 다른 데서 일할 수 있을지 호시탐탐 노렸다. 은행원은 숫자에 약해서 안되고, 승무원은 암리치(arm reach, 승무원은 좌석 위 짐을 싣는 칸에 팔이 닿아야 하므로 최소한의 키가 되어야 한다)가 모자라서 안되고, 안 되는 것 투성이었지만 그제야 직업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 졸업을 앞두고 신약 개발 임상시험 모니터링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합격했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입사를 결정했다. 이미 빅파이브라고 부르는 두 곳의 병원에 합격해 둔 상태라, 적성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그만두고 병원으로 갈 수도 있다는 보험을 들어둔 채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어마어마한 업무량이 쏟아졌다. 삼 교대를 하기 싫어 회사를 갔는데 데이와 이브닝 근무를 합친 것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했고, 제 때 밥 먹고 화장실도 편히 가고 싶어 병원을 가지 않았는데 환자에게 일이 생기면 밥을 거르고 화장실도 참아야 하는 것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내 손에 환자의 목숨이 걸려있지 않다는 압박감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4년 만에 아이와 워터파크에 놀러 갔다는 건선환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울컥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고, 미미한 역할이나마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던 임상시험이 FDA 승인을 득했을 때는 뿌듯함도 느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때때로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하는 것이라, 그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병들었다. 당장 내가 아파지자 남은 돌볼 새가 없었다. 일도 사람도 다 싫었다. 그런 내게 찾아온 것이 훌라였다. 즐기는 동안에만 일을 회피할 수 있었던 다른 취미와는 달리 훌라는 꺼져버린 줄 알았던 마음속 한 구석의 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도, 남도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며 주말에는 수업까지 하면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와이키키 훌라클럽이 남을 위해, 또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면 그랬을 거다. 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사람이고 와훌러들이 배우는 사람인 시간을 거쳐 함께 춤을 추는 순간은 내게도 위로가 된다. 부드럽게 몸을 움직이는 90분 동안 마음이 잠시 와이키키를 다녀오면, 발갛게 물든 뺨으로 미소 짓는 이들이 더없이 예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번아웃과 우울을 겪던 시기를 건너 웃음을 되찾았다는 사람들에게서 내 모습을 본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지역사회 간호학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어떤 때보다도 간호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고 느낀다.
간호사,라고 검색창에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가장 먼저 뜨는 것이 탈임상이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임상의 자리에서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뜻일 테다. 면대면으로 환자를 간호해 본 경험이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무게감을 어깨에 지고, 오늘도 간호사들은 일선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꼭 필요한 그들이 좀 더 전문성을 인정받아 마음이 병드는 일이 없기를, 그들에 대한 처우가 나아져서 자신의 건강을 챙겨가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누구보다도 알로하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니까. 매번 병원을 나설 때마다 건강하세요,라고 인사하던 한 간호사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썼다. 언젠가 그분께도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하와이안 훌라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