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둘러앉아 춤을 추지

휠체어 댄스, 휠체어 훌라

by 여구르르

발목을 접질렀다. 기우뚱, 시선이 사선으로 떨어지고 아! 하는 외침이 있었다. 반사적으로 옆에 있는 난간을 잡고 한쪽 발로 섰다. 통증에 눈이 절로 질끈 감아지고 입으로 내쉬는 숨마저 떨렸다. 눈앞이 깜깜했던 건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시간 후에는 공연이 예정되어있었다. 혼자 추는 춤이라면 모르겠지만 다같이 대형과 합을 맞춰야하는 군무였다. 급한대로 파스를 사서 발목에 빙 둘러 붙였는데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발이 질질 끌렸다. 결국 마지막 리허설에는 함께하지 못했고, 무대를 즐기려던 마음은 완전히 달라졌다. 발목에 힘이 빠져 넘어지는 것만은 피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다리님께 빌었다.


진단명은 왼쪽 발목의 부분인대 파열이었다. 인대는 다시 붙는 근육이 아니라서 염증반응이 가라앉고나면 주변 근육이 보상작용으로 강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걷지 않는게 제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때에는 뒤꿈치, 아치, 발가락 순서로 발을 딛는게 아니라 발바닥이 통째로 바닥에 닿게 깡통 로봇처럼 걸으라고 했다. 환자분께서 축구선수도 아니고, 아껴가며 쓰세요. 라고 말하는 의사가 원망스러웠다. 춤을 추는 사람에게 움직이지 말라니요. 인대파열을 겪어본 지인들도 거들어서 한달이고 반년이고 나을 때까지 몸을 사리라고 했다. 한 번 약해진 인대는 쉽게 튼튼해지지 않는다고. 만성화되면 그게 더 고생이라고. 그래도 춤을 멈출 수는 없었다. 수업엔 가야지, 내가 선생인데.


몸이 쉰다고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머슬 메모리 때문이었다. 훌라 역시 근육이 기억하는 만큼 출 수 있기에 소파에 앉아있는 날이 쌓일수록 불안한 마음이 잔뜩 엉켰다. 평소엔 하기 싫어 몸이 배배 꼬이던 스텝 연습도 괜히 하고 싶고, 허벅지의 근육이 빠질 것 같아 괜히 다리를 주물러도 보았다. 의자에 앉아 코칭을 하다가도 수강생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면 엉덩이가 들썩였다. 골반 더 움직이세요, 라고 말할 때면 이만큼 움직여야 한다고 보여줘야하는데 싶었다. <와이키키 훌라클럽>에서 매달 마지막 수업은 야외에서 진행했는데, 훌라가 원래 땅을 밟고 맨발로 추는 춤이기도 하고 햇살 아래 춤추는 이들의 미소가 더욱 빛이 나기 때문이었다. 뺨에 닿는 봄바람을 느끼며 개나리처럼 피어나는 얼굴들을 보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는 가운데 수강생들이 입을 모아 다음 달에 배울 곡이 궁금하다고 했다. 아휴.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만‘ 다리를 움직여 ’맛뵈기로’ 다음 달 곡을 보여주는 와중에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춤을 추지?


몸의 일부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었다. 스트레스 없이는 살 수 없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알로하 스피릿을 느껴봐야하는데. 장애를 핑계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휠체어 댄스라는 장르를 찾고나서 곧바로 휠체어 훌라를 기획했다. 훌라는 문자가 없던 하와이에서 일종의 동작언어로 기능했던 바, 스텝은 안무의 일부일 뿐 주요한 표현은 손짓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다른 춤보다 오히려 휠체어 댄싱에 적합할 것 같기도 했다. 하루 빨리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에게 훌라를 전파하자!는 마음으로 복지센터에 전화를 돌렸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다소 소극적이었다. 연간계획이 짜여져 있어 어렵다는 답변은 점잖은 편이었고, ‘그런거 안합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통화음이 끊길 때면 내가 흑염소 즙 파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휠체어 타는 사람 마음은 휠체어 타는 사람이 아는 법. 휠체어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을 만났다. 나는 훌라 수업을 기획하고, 구르님은 휠체어 타는 여성들을 모집했다. 아이디어 회의는 수업장소인 공원을 굴러다니며 대중교통에서 얼마나 가까운지,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지, 경사로는 전동 휠체어로 넘을 수 있는지에 대해 살폈다. 훌라 치마인 파우를 입는데에도 시간이 더 소요될거라는 점, 장애의 정도에 따라 움직임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수업은 모두가 앉아서 진행하고, 보조인원도 함께 춤출 수 있도록 간이의자를 준비했다. 지하철 출구에서 직접 맞이하고 수업장소로 이동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단 한 명도 이전에 춤을 춰본 적이 없다는 답변에 발목이 삐끗하던 날과 같은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들에게 오늘의 움직임은 평소 타던 휠체어에 춤을 얹은 것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 추는 춤의 기쁨을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남들이 왼쪽으로 갈 때 나는 오른쪽으로 가도 괜찮아요. 각자의 목소리가 다르듯 각자의 움직임이 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팔이 높게 올라가지 않아도, 손으로 만드는 파도가 부드럽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른 수업에서도 하던 멘트에도 힘이 실렸다. 정말로 우리는 같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신만의 꽃을 피우고, 바람을 날리고, 해를 띄우고 있었으니까. 칼각이 맞는 군무여서가 아니라 흔들리는 꽃밭처럼 우리는 혼자이면서 그 자체로 하나였다. 헤어짐을 앞두고 우리는 약속했다. 어디서든 춤추기를 멈추지 않기로. 봄에 만났던 그들은 가을에 열린 <와이키키 훌라 페스티벌>에 오기도 했다. 페스티벌 장소로 배리어 프리 공간을 선택한 것도 더 많은 그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한 번 더 춤 추었다. 한 번 춤 춘 몸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머슬 메모리. 몸은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는 꽃 피는 봄에 다시 둘러앉아 춤 출 것이다. 휠체어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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