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방학이 끝나고

by 여구르르

언제 잠이 들든 매일 비슷한 시간에 깼다. 새벽 한 시, 세시, 그리고 다섯 시. 오줌이 마렵지도 않은데 괜히 화장실을 갔다가, 침대로 돌아가기 싫어서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졌다. 메시지 하나 와있지 않은 카카오톡을 습관처럼 켜보고, 인스타그램을 켜서 릴스를 위로 넘겼다. 그러다 더 이상 릴스가 위로 넘어가지 않으면 유튜브 숏츠로 넘어갔다. 다른 듯 비슷한 콘텐츠들이 이어져서 금세 흥미를 잃고, 잠깐 핸드폰을 배 위에 올려두고 눈을 쉬었다. 그러면 방금까지 보았던 영상들의 파편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해리포터 덕후인 부모들이 아이의 첫 번째 생일에 마법모자를 씌우고 기숙사를 배정하는 모습, 가장 최근의 스파이더 맨인 톰 홀랜드가 그의 피앙세인 젠데이아를 쳐다보는 눈빛, 경매로 다 쓰러져가는 모텔을 낙찰받아 월 1,000만 원짜리 수익을 내는 에어비앤비로 개조한 30살 청년.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바라고 있지만 그것에 가까워지기 위해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들.


가끔 통잠을 잤다. 낮동안 햇볕을 아주 많이 쬔 날들이 그랬다. 그런 날은 핸드폰을 보지 않아도 재밌는 것들이 차고 넘쳤다. 잃어버리지만 않게, 가방 한 귀퉁이에 처박아두고 시간도 확인하지 않았다. 몸에 짠기가 빠질 새 없이 바다에 수없이 들어갔다 나온 날. 티피 텐트에서 사롱 한 장 깔고 잔 날. 텐트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던 날. 레이(하와이안 꽃 목걸이)를 목에 건 엄마와 아빠와 차이나 타운의 아트 갤러리들을 구경하던 날. 그런 날들이 그랬다.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아도 이틀이 너끈했다. 그러나 해를 위에 두고 걸을 수 있는 날들은 드물었다. 아주 가끔 몸을 움직여 창 너머로 가로수를 쳐다보고는, 다시 자리로 와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적어도 내 인생의 5/7 은 그랬고, 그런 날은 하루 걸음 수가 16보 정도 되었다.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는 작게 빛나는 화면을 보며 밤을 새운 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도 가끔은 글을 썼다. 영감이 와앙, 하고 나를 통째로 집어삼킬 것처럼 몰려오는 순간이 그랬다. 짧은 단어와 이어지지 않는 문장들이 공책에 쓰였다. 노트북을 꺼내서 전원을 켜는 시간이 아까워서 되는대로 옆에 있는 펜을 쥐고 휘갈겨 썼다. 어떤 소리는 소음이다. 바람과 새와 매미와 햇빛이 들리는 곳. 여름의 맛. 몸의 무게중심을 옮기려면? 훌라를 추지 않고 훌라 추기. 땅의 힘. 물의 힘. 이완을 통한 감정 풀어내기. 씻김굿. 머슬 메모리. 통증에 담겨있는 감정. 제한. 잘 보이고 싶은 마음. Wai. Wailele. Aina. Anuenue.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침범해도 돼?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침범해도 돼? 동그라미. 동그라미. 섞이는 몸. 하나 같지 않은데 둘 같지도 않은. 둥둥 탁. 아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어. 머리가슴 골반 바닥치고 손뼉 치고 snap snap! 샤워.


시간은 금방 흘렀다. 방학 동안 통잠을 자는 날들이 많았다. 맞닿은 몸들에 미끌미끌 땀이 흐르고, 에어컨을 트는 것이 쓸모가 없어져서 창문을 연 홀에서 40시간씩 춤추고, 발가벗은 몸으로 바다 안에서 유영하고, 갈비뼈를 열어 숨 쉬면서 이제야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다들 하는 그런 수업 말고, 나만의 색깔을 가진 수업. 다른 데서는 배울 수 없는, 여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시간. 그런데 개학식엔 세 명이 얼굴을 비췄다. 그 중에 한 명은 엄마를 따라온 초등학교 2학년 짜리였다. 11월과 12월, 6주 과정의 수업에는 한 명이 등록했다. 40평짜리 연습실 대관료를 내고 나면 남는게 없었다. 3년 간 운영해 온 수업이 세 달 만에 없어지겠구나 싶었다. 훌라를 추지 않는 시간 동안 나에게 어떤 깨달음이 왔는지 아무도 관심 없었다. 마치 나의 밤을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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