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회 후기-그 후
미국으로 출국하기 몇 달 전, K상과 독일 유학에 대해서 다시 한번 얘기한 적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교수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갈 수 있는지 묻기 위함이었다. K상이 추천한 방법은 일단 미국 학회 발표를 잘 준비하여 무사히 발표를 마친 후 교수님께 '역시 저는 해외가 잘 맞는 것 같아요!'라고 어필하고 유학을 가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역시 일단 미국에서의 발표를 잘 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나는 K상이 가있었던 미국의 P대학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다. 아이비리그 대학이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부럽다고 말이다. 그러자 K상은 나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교수님께 독일이 아니라 P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면 된다고 말이다. 당연히 못 간다고 생각했던 선택지라 매우 놀랐다. 아이비리그 대학을 다녀올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말이다. 엄청난 욕심이 생겼고 그 시점부터 미국 학회 발표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닌 내년에 미국으로 교환 연구를 가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되었다. 꼭 잘 해내야만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교수님의 만족스러운 호평을 받으며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 교수님께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할 자신감이 생겼다. 금요일 밤에 일본에 도착하여 주말을 지나서 월요일이 되었고 비장한 마음으로 연구실로 향했다. 다행히 교수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웬만하면 동기들이 없는 한산한 시간에 상담을 하고 싶었다. 적당한 때를 엿보다가 교수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교수님께 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운을 띄었고 무엇인지 말해보라는 교수님에게 다짜고짜 내뱉었다.
"유학 가고 싶어요!"
별거 아닌 문장이지만 꽤나 용기가 필요했던 말이었다.
"가면 되지?"
교수님의 대답은 예상과는 다르게 명쾌했다. 내가 살짝 당황한 내색을 내비치자 교수님은 어디를 생각하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K상이 다녀온 P대학으로 내년 6월부터 3개월 동안의 단기 유학을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엥? P대학으로 가고 싶다고?"
교수님의 반응은 또다시 예상밖이었다. P대학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다시 당황한 나는 트라이볼로지 학계에서 가장 저명하고 이번 미국 학회에서 얘기를 나눈 I대학 교수님의 연구실도 관심이 있다고 대답했다(I대학 교수님과 우리 교수님은 사이가 매우 좋다). 내 대답을 들은 교수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I대학이 좋겠다고 6월은 너무 빠르고 1학기를 마치고 9월에 가서 3개월 동안 있다 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연구에 관심이 있고 좀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그곳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I대학과 박사과정 얘기를 들은 나는 머리가 포화상태가 되었다. 머릿속이 정리가 안된 나는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고 교수님은 상대 연구실에 어필할 '성과'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성과'란 논문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발표 내용에 좀 더 살을 붙여서 논문을 쓰고 얘기를 진행시켜 보자는 것이었다.
상담을 끝내고 교수실을 나왔다. 머릿속이 교수실을 들어갈 때랑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유학까지 한 가지 미션이 더 생겼다. 논문을 써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내년 교환연구가 아니었다. 또 한 가지 새로운 갈림길이 생긴 것이었다. 영국으로의 박사과정이다. 솔직히 I대학은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유학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은 학교였다. 수많은 트라이볼로지 논문이 I대학에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있는 실험기계 또한 I대학 연구진들이 만든 기업의 제품이다. 그리고 정말 우연찮게도 미국 학회에서 한국인 박사님이 나에게 박사과정으로 추천했던 학교이기도 했다. I대학을 나와서 미국 회사로 취직하면 된다고 말이다.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것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학교이고 미국취업까지 문제없는 학교이니 고민할게 무엇이냐고 할 수 있다만 박사과정은 정말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가장 나를 머뭇거리게 하는 것은 결혼이다. 나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오랜 꿈이다. 커리어는 그것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졸업 후의 나이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시기에 기적처럼 결혼 상대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정답이라고는 없는 고민에 빠진듯하다. 그리고 인생의 커다란 갈림길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일본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이 생각났다. 그때보다 잃을 것도 많아지고 그만큼 겁도 많아진 나였다. 아직 고민할 시간이 남아있다. 일단 열심히 준비해서 내년에 꼭 I대학으로 교환연구를 다녀올 것이다. 올해부터 마음먹었다. 마음먹은 것은 꼭 해내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