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기다림
미국 학회가 끝이 나고 일본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12월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한 해가 짧았던가 하는 생각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올해는 정말이지 미국 학회로 시작해서 미국 학회로 끝난 한 해였다. 한 가지 목표만을 생각하며 달려봤던 게 입시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한 달 한 달 무엇을 했는지 또렷이 기억난다. 1월에 4학년 진급 확정을 받았고 2월에 연구실 배정을 받았다. 3월부터 출근하기 시작하여 연구 테마를 정했고 4월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5월에는 처음으로 학회라는 곳을 가봤고 6월에는 교수님 앞에서의 첫 세미나 발표가 있었고 미국 학회 멤버로 발탁되었다. 7월에는 한 학기의 연구를 보고하는 중간발표가 있었고 교수님의 착각으로 상의도 없이 학회에 포스터발표가 아닌 구두발표를 넣어버린 이상한 애가 되어있었다. 8월에는 퍼질 대로 퍼진 소문에 괴로워하던 중 학회의 승인을 받았고 전투에 임하는 마음으로 일본으로 돌아왔다. 9월에는 외국에서 손님이 많이 방문해서 교수님과 모두에게 내 영어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왔었고 독일로의 인턴십 제안을 받았다. 10월에는 코앞으로 다가온 학회 발표 준비에 가장 정신없는 한 달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11월, 학계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무대인 미국학회에서 성공리에 첫 발표를 마쳤다. 그리고 12월, 영국 교환 연구라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되었다.
한 달 한 달 적고 나니 일 년을 정말 알차게 보낸듯하다. 목표한 바를 이뤘으니 당연히 뿌듯하다. 그러나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을 묻는다면 지쳤다. 번아웃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목표를 이루는 것, 성공하는 것, 이런 것들은 낯설다. 인생에서의 첫 번째 난관에서 나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힘없이 무너졌다(실제로 엄마는 내 수능 전, 6개의 촛불이 우수수 꺼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0부터 다시 하자는 심정으로 무작정 일본으로 넘어왔고 이년의 준비과정으로 지금의 대학에 입학했다. 나름 명문대이니 만족했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고 학과가 지정한 높은 허들을 넘지 못해 또 한 번의 실패가 있었다. 그리고 꿈같던 한국에서의 휴학생활을 마치고 제2막을 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본으로 돌아와 연구실에 돌아왔다. 그게 바로 올해이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리려면 어떻게 서든 잘 풀린다는 듯이 모든 타이밍이 딱딱 맞아떨어지면서 미국 학회도 다녀왔고 교환 연구의 기회도 주어졌다. 지금까지는 경험해 본 적어 없는 타이밍들과 운이었다. 그러면 나는 지금 그 행운들에 행복한가? 의외로 그건 아니었다.
미국 학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바라던 대로 교수님의 인정과 애정을 듬뿍 받게 되었다. 올해 발표 굉장히 잘했으니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는 말씀까지 모두의 앞에서 해주셨으니 지난 '포스터'사건은 용서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주변 반응들, 특히, 선배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잘했다고 잘한다고 칭찬해 주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하고 꺼려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한 것은 K상의 반응이었다. K상은 R군과 함께 연구실 안에서 나를 응원해 주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교수님과 모든 다른 선배들이 다른 동기들을 밀어줄 때 나도 갈 수 있다고 용기를 내 연구지도를 적극적으로 해주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미국 학회에서 단상에서 내려오자마자 K상에게 문자를 보냈다. 무사히 마쳤다고. 이때까지 정말 감사했다고. 일본시간으로 새벽이었을 텐데 기다렸다는 듯이 K상은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 일본으로 돌아와 연구실에 출근하면서 나는 첫 골을 넣고 감독에게 달려가는 축구선수 심정으로 K상을 찾았다. 하지만 K상은 나에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그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R군을 통해 들은 얘기로는 내 발표 이후 K상이 교수님으로부터 매우 혼이 났다고 한다. 내 발표가 끝나고 교수님이 K상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의 발표였다고 했었는데 그런 얘기를 그래도 K상에게 할 줄은 몰랐다. K상에게 정말이지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감사함이 있는데 일이 이런 식으로 돼서 너무 안타까웠다. 나는 K상에게 잘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칭찬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이후로 나는 K상의 응원을 받지 못했다. 내 연구 지도에 흥미를 잃은 것인지 K상은 내 연구 상담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은 나란히 각자 작업하고 있는 나와 동기들에게 와서 옆에 있는 동기에게 나를 이길 수 있다며 격려했다. 그리 무겁게 한 말은 아니었지만 옆에서 듣고 있는 나는 꽤 서운했다. 이제야 나도 잘할 수 있다고 보여준 게 다인데... 아직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 신입인데...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일본어에 대한 지적이었다. 크다고 하면 크고 사소하다고 하면 사소한 지적이었다. 그렇지만 그 지적만큼은 내가 어떻게 고칠 방도가 없는 지적들이었다. 20살에 넘어온 사람이 원어민 수준의 발표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점점 과하다고 느껴지는 일본어 지적에 나는 또다시 고립됐다. 또다시 일대 다수의 싸움에 휘말리게 된 느낌이었다. 조금만 잘해도 칭찬받는 동기들에 비해 조금만 못해도 지적받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R군이 외롭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감당하기엔 아직 조금 빠른 듯하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나는 지금 한국에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복잡한 생각들을 싹둑 잘라 일본에 남겨놓고 한국에서 최대한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다. 이제야 쉬는 느낌이 든다. 그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자면 첫 번째로 어는 집단에서든 눈에 띄기 시작하면 경계를 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고독해진다는 것. 두 번째는 내가 더 이상 일본에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에 있고 싶지 않다. 7년을 살았고 대학원을 마치면 9년을 산 게 된다. 그쯤 하면 할 만큼 한 게 아닐까? 인간관계라는 것이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어딜 가도 비슷하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모국에서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비겁한 핑계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것에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그리고 올해가 내가 대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해였다. 졸업까지 이런저런 우여곡절들을 생각하면 감개가 무량하다. 이미 졸업식 때 울 준비를 하고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멋있는 한 해를 보냈고 예상외로 그다지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결말이다. 그래도 나라도 나에게 올 한 해 정말 수고 많았다고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내년에도 무엇이든 뜻대로 잘 될 것이라고 응원해주고 싶다. 내년에는 나에게 짊어져지는 무게를 좀 더 담담하게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지난주 무단 휴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ㅠㅠ
한국에 들어왔던 날이라 정말이지 까막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독자님들도 의미 있는 한 해 보내셨나요? 이제와서는 의미 있는 한 해라는 것이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어진 일 책임감 있게 해냈고 몸 건강하게 보냈으면 좋은 한 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3년 즐겁게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부턴 더 성실하게 더 발전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2024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유즈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