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이의 마음단련서] 우울증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구성된 매거진북
우울증에 대한 다면적인 궁금증을 더듬더듬 짚어 취재한 입문서이자
우울증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구성된 매거진, <아임 낫 파인>
저자가 우울증에 대해 열정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대로 담긴 책이었다. 책보다 '매거진'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던 건 우울증이라는 하나의 화두에서 시작된 다양한 질문과 답이 매우 다면적이라 순차적으로 이어진다기 보다 점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스스로 우울증을 알아가며 그 길을 독자와 함께 걷는, 결국에는 우울증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고 올바른 정보를 짚어주는 입문서이기도 했다.
책이 우울증과 관련한 다양한 질문에 답을 하는 만큼, 왈이도 저자가 던진 질문과 그 답에 대한 코멘트를 나란히 정리했다.
정신과와 심리상담의 차이
병원은 의료기관으로서 의사가 약물 처방을 통해 물리적인 치료를 중심으로 진료하는 곳이고 상담센터는 자격증이 있는 심리상담사가 상담을 통해 인지행동치료를 진행하는 곳이다. 어디가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고, 철저하게 개인의 상황과 성향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98p)
정신과와 심리상담의 차이에 대해 물어보는 분들이 워낙 많았고 나 스스로도 마음의 외상을 스스로 인지하고 나서 두 개를 구분하지 못해 어딜 가야할지 주춤했던 기억이 있다. 현재 상황에 따라서 상담을 받는 것, 약물 치료를 받는 것 중 어떤 하나가 더 적절할 수 있는데, 잘 모를 때는 어디든 일단 가보는 것 자체가 답일 수 있다. 전문가가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인계해줄테니 말이다.
신체적 증상이 발현되고 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는 정도라면 일단 정신과에서 급한 불을 끄는 것이 먼저일 수 있겠지만, 상담을 통한 심층적인 치료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정신과 중에서도 상담을 중심으로 하는 곳이 있지만 대개는 약물 치료를 주로 한다.
'왜 병원에 못가는 걸까' 항목별 정리
-경제적 이유(그러나 정신과도 의료기관이므로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
-우울증 병력에 대한 두려움
-정신과 치료/상담에 대한 불신
-정보 부족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마음 건강 서비스를 찾지 못하고, 너무 늦게야 필요성을 깨닫곤 한다. 왜 병원에 못가는지, 거기까지의 허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뜯어서 취재한 항목이다.
경제적 이유, 주변 사람들의 시선, 병력에 대한 두려움, 불신이 결국 가장 마지막 항목인 정보 부족과 연관되어있어 흥미로웠다. 정신과도 의료 기관이기에 보험처리가 되어 생각보다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정신과와 마음 건강 서비스 전반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시작된 점, 회사/보험사 등에서 우울증 병력을 실제로 파악할 수 없음에도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는 부분 등 대개 잘못된 정보에서 기인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에 대한 오해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 하물며 내가 나 스스로한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해주지 않을까요? 힘들다고 하면 상담선생님이 정말 많이 힘드셨겠네요 위로하는 게 저한테 도움이 될까 싶었어요."
상담 치료 경험이 있는 현경 작가도 처음에는 구체적인 솔루션과 결론을 원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괜찮아질 거예요. 저렇게 하면 나아질 거예요.' 같은 말들을 바랐다.
"그런데 상담 선생님의 역할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지금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에 대해 나와 이야기하면서 찾는거. 상담을 통해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달까. 가령, 이런 일들은 병원에 가야 하고, 이런 일들은 포기해도 괜찮고 그런 것들. 또 너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을 땐 '아차!'하고 깨닫게 되더라고요. 나는 대충하고 빨리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난 완벽주의자였구나. 그래서 힘들었구나. 이런 걸 되짚어주고 알게 해주는 게 상담의 역할이라는 거예요. 날 한 방에 낫게 해주는 만병통치약 같은 게 아니라."
심리 상담을 받으면 '방법론적'인 것을 알려줄 것, 지시할 것이라는 기대를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심리 상담이 제공하는 것은 완전히 반대의 것이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거기에서 내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 것 말이다. 내 욕구,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 상담사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이런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질문하고 안내하는 데에 있다.
여행을 떠나보라는 조언
우울증은 평소의 자극으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정신과에서는 새로운 방법으로 치료를 하는데, 그 방법은 바로 규칙이다. 일반적으로 주변 사람들은 우울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자꾸 무엇을 하라고 권한다. 운동이나 여행을 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우울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 직장을 바꾸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직장을 쉬라는 것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보통은 평소의 리듬을 바꾸지 않고, 익숙한 환경을 유지하는 게 좋다. (64p)
운동이나 여행처럼 해보지 않은 것을 새롭게 시도해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조언일 수 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바디스캔 명상을 해도 잠이 오지 않던 내가 해리포터 ost를 들으면서 잠을 잘 수 있었던 것도 우울증일 때는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말 덕분이었다.
정보 부족 문제 -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해야하나
현경 작가는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고 해도, 정작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고 했다.
"사람에 따라 정신과를 갈 수도 있고, 상담시설에 먼저 가야할 수도 있거든요. 상담시설에 갔다가 오히려 상처받았다는 분들도 있고, 병원에서 하는 약물 치료가 너무 힘들었다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정신과 중에서도 어떤 병원은 질환을 크게 다루고, 상담과 약물 비율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이게 다 다른데 정보 공유가 잘 안돼요. 이런 것들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기관이나 서비스가 필요해 보여요."
"사실 성형외과, 피부과 정보는 많이 공유되잖아요. 근데 '언니 공황장애 어디서 치료했어요?' 뭐 이런 거 물어보는 것도 조금 이상하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당황하게 되니까 입소문 같은 것으로도 정보 얻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소비자 중심의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 어떤 정신과에 갈지, 어떤 상담 선생님께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상담을 받기로 결정하고 상담사를 알아볼 때 우리도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상담사를 찾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였는데, i) 내 주변의 상담을 받고 있다고 말한, 혹은 상담을 받아봤을 법한 사람에게 내 상황을 어느정도 말하며 상담사를 추천해달라고 하거나 ii) 상담사를 인터넷을 통해서 검색해봐야했다.
두 가지 다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i의 방법으로는 내 주변의 누구에게 SOS를 쳐야할지 잘 모르겠고, 그 사람에게 일단 내 상황을 어느정도 알려야하는 것의 부담감이 있는데다, 충분한 정보 속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내린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한 명에게 물었다면 한 명의 상담사를 추천받을 뿐이고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추천받을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수 있다.
ii의 방법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은 인터넷에 공급자가 주고 싶어하는 정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정보(가격, 후기, 스타일 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만 했다. 좋은 정보들은 트위터, 커뮤니티, 유튜브 등에 산발적으로 게시되어있었다.
이건 상담 뿐만 아니라 정신과 등 마음 건강 서비스 전체가 공유하는 문제점인 것 같다. 티슈 하나에도 좋은 후기를 찾을 수 있는데 이렇게 총체적으로 소비자 중심의 정보가 없는 분야가 있다니, 갑갑했다. 떡볶이 책 등을 보고 '우리나라는 '우울증' '공황장애' 이런 키워드 소비가 너무 심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음 건강에 대해서 쉬쉬하는 분위기는 아직도 압도적이다. 상담센터든 정신과든 마음 먹고 후기, 가격 한번 찾아보시라.
그래서 틈 날 때마다 지도를 만들기로 했다. 전화를 돌려서 가격을 물어봤다. 가격을 물어볼 때 '왜 그것부터 물어보시죠?' 라는 반응이 10번 걸면 최소한 2번 정도는 돌아왔는데 그건 꽤나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내가 몇 번이나 자아성찰하며 생각해봐도 사무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으나 무례한 방식으로 질문하지는 않았다. 한 센터의 상담소장님은 내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듯이 끝까지 가격을 말해주지 않았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거기 수면 내시경 가격이 어떻게 되죠?' 물어봤는데 '왜 그것부터 물어보세요?' 라는 반응이 돌아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찾아보니 알게 된 것은 아무래도 입을 대는(사투리인가..) 상담센터는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의 후기 아닌 후기로 검증된 곳들은 상담사들 앞으로 내담자들이 줄을 서 있어 대기 예약이 길었다. 대부분의 상담사들은 잠재적 내담자들에게 발견성을 높이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데, 아주 소수의 상담사들은 대기 예약 관리로 머리 아파했다. 소비자들이 발견성의 문제로 적절한 시기에 최선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상담 시장은 정보의 관점에서 공급자 중심적이다. 거칠게 말하면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다'는 감각을 갖지 않은 상담사/센터가 많다. 좋은 것이 있어도 좋은 것이 있다는 걸 알리고, 무언가는 '판다'는 인식이 더 커져야 편견이 깨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공급자가 많은 시장에서 매일 전투를 하고 있는 그들에게 필요한 '시장'도 커지지 않을까. 더 좋은 치유자가 되는 일도 중요하지만, 좋은 치유자가 되려는 노력만큼 상담이라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서비스를 잘 알리는 데에도 노력해주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국상담심리학회와 같은 곳들에서 사람들이 정말로 궁금해하는 정보를(전화번호와 이메일, 전문 분야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보다 잘 전달해줄 수는 없을까?
우울증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울증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우울한 정도에서는 영화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면 기분이 나아지지만, 우울증은 이미 그런 걸 할 수 없는 상태인 거죠. 오히려 환기를 시켜도 개선이 안 되는 내 자신에게 더욱 상처받고 자책하게 돼요. 의지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그 너머의 상태인거죠."(150p)
이 부분은 주변에 우울증을 앓는 누군가를 곁에 둔 사람, 그리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 스스로에게 따뜻하고도 따끔하게 일침을 날리는 부분이다.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무지한 타인에게 들었을 때도 상처가 되지만, 스스로에게도 말칼이 된다. 우울증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니 꼭 적절한 치료를 받으시길 바란다.
약물 치료
"주변에서 약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약을 몇 달간 끊은 적이 있어요. 약을 갑자기 끊으니 일이 터지더라고요. 자해를 하게 됐어요. 약물을 임의로 멈춘다는 건 위험한 일인 것 같아요. 나아지고 있는데 나락 속으로 다시 들어간 것 같았어요. 자해 상처가 아물 때까지 얼마간 토시를 끼고 나였어요.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우울증 환자에게 해주는 말들을 독이 될 수 있어요."(140p)
"우울증은 명백한 병인데 사람들은 '병이 났으니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흔히 마음의 병이라고 하는데 마음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뇌의 작용으로 생기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울증은 뇌의 변화로 인해 생긴 질환인 거죠. 생각하고 마음 차원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병원에 가서 꼭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155p)
약물 치료를 받다보면 누구나 불안감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계속 의지하게 되면 어떡하지? 용량은 계속 늘어나는데 정말 괜찮은걸까?' 자의로 약물치료를 끊으면 그 부작용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맞이해야할 수도 있다. 약에 대한 불안감이 든다면 병원에서 용기를 내어 말하고, 의사와 상의 후 약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 좋다.
상담실의 대화 중 가장 와닿았던 상담 선생님의 질문
"우리가 갖는 두려움을 쪼개고 쪼개서 보면 구체적인 대상이 있어요. 예를 들면 부모님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려운지, 또래 친구들에 비해 뒤처지는 게 두려운지 내가 뭔가를 못한다는 느낌이 두려운지... 쪼개고 쪼개서 그 두려움에 조금 더 집중해보세요. 수업시간이 될 수도 있고, 과제를 할 때 일 수도 있어요. 그런 하나의 상황을 떠올렸을 때,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훅 밀려온다거나 다 내려놓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지. 뭐가 제일 두려워요?" (200p)
실제 상담에서는 이런 질문이 오간다. 휘리릭 읽다가 의외로 쿡 하고 파고들었던 표현은 '쪼개고 쪼개서'였다. 상담실에서는 내 감정과 욕구를 '쪼개고 쪼갠다'. 말 그대로 질문과 답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의 내 마음을 쪼개고 쪼개서 더이상 과장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내가 보지 못했던 내 감정이 명징하게 와닿는다. 자기 수용의 초석이 된다.
가슴에 와 닿았던 말
"죽고 싶다는 말은 사실 살고 싶다는 울음이에요."(180p)
생명의 전화 이광자 선생님의 말이다. 죽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죽겠다는 마음 51%, 살겠다는 마음 49%라고 한다. 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며 들어주다보면 2%가 뒤바뀌기도 한다. 생명의 전화는 자살하겠다는 마음 안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끌어내는 일이다.
잘지내? 라고 물었을 때
잘 지내지는 못해, 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병원에 못 가는 이유를 찾다가 밤을 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우리가 병원에 가기까지 정말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하지만 각각의 문제들을 좀 더 취재하면서 우리는 여기에 한 가지 항목을 더 추가하고 싶었다. 결국 병원에 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건 바로 '나자신'이 아닐까.(93p)
<아임 낫 파인>이 세상에 나오게 된 건 어쩌면 우리가 우울증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고, 몰라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저자가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갖고 있는 편견이 적절한 감정적 케어를 받는 것을 막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왜냐면 여전히 감정적인 영역은 중요하지 않고, 어리고, 약한 것으로 쉽게 취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지내?' 라고 물었을 때 '잘 지내지는 못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묻고 답하는 날이 오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