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의 흔들리는 엉덩이를 슬프게 만드는 이곳
불쑥 기억의 한 모퉁이를 돌고 나를 찾아옵니다.
무언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두려워 온통 겁쟁이란 단어를 머릿속을 채우고 말았겠지요.
한때는 바람결에 일렁이던 문소리에 문득 누가 찾아온 건지 가슴을 쓸어내렸어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시 오지 못한 순간도 미련이 남아 홀연하게 떠날 수 있었던 아쉬움도 마음을 가늠하기엔 어려운 모양입니다.
지금 저는 그곳과는 정반대, 볼리비아의 어느 허름한 곳에서 주린 가슴을 안고 스스럼없이 몸을 흐느적 거리고 있습니다.
곰팡이 냄새와 비릿한 맥주 썩은 내가 홀연히 흩날리며 취객의 흔들리는 엉덩이를 슬프게 만드는 이곳.
우리의 8-90년대 맥줏집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은 싸구려 디스코 음악이 잉카인의 통곡으로 들리는 건 비단 저만의 문제가 아니길 바라는 바입니다.
더하여 저보다 인상이 더 무서운 아저씨를 앞에 두고 맛없는 로컬 비어를 마시는 일도 썩 나쁘지 않네요. 취했나 봅니다.
암튼 전 뭐 잘 지내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이곳처럼 조금은 누추하고 허름한 곳에서 소주에 삼겹살 한 점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언젠가 다시 이 글을 볼때 옆에 있어주길 바랍니다.
그럼. 잘 지내세요.
볼리비아, 라파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