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마음의 태도와 삶의 철학은 모든 균형의 중심이 된다.
터키 이스탄불은 내가 여행한 나라 중 가장 매력적인 도시중 하나다. 단순히 볼 것이 많고 먹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도시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다.
터키 이스탄불은 과거 기독교 국가들과 이슬람 국가들에게 점령되기를 수차례 겪은 도시다. 기독교를 보편적으로 믿고 있던 유럽과 이슬람을 보편적으로 믿고 있던 중동지역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지금도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실제로도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비행기가 가장 많은 공항도 이스탄불에 있다.
그래서인지 이 도시에서는 대조적이면서도 역설적인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수많은 문명들이 짬뽕처럼 얽히고 섥히면서 난잡할 것 같은 도시지만, 어느 곳보다도 절제와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서로 대조적이면서 역설적인 각각의 자아가, 서로를 향해 등을 돌리고 싸우며 파괴하기보다는, 꿋꿋하게 서로의 손을 잡고 살아가고 있는 듯한 곳이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로스 해협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뉜다. 서쪽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대륙이고, 오른쪽은 중동으로 향하는 아시아대륙이다. 위의 사진은 그 해협을 건너면서 북서쪽에 위치한 돌마바흐체 궁전이라는 곳이다. 배를 타고 이동중이었기에, 나는 아직 유럽을 밟은 상태가 아니다. 즉 아시아에서 유럽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이다. 그렇다. 이스탄불은 지리적으로 동서양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것이 사진 속에 담고 싶었던 첫 번째 균형점이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정말 특별한 공간이다. 모스크 돔을 보지 않으면 이 건물은 마치 기독교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 같은데, 실제로는 서구열강에 의해 국운이 기울고 있던 오스만제국의 황제에 의해 건설된 궁전이다. 전체적으로는 모스크의 느낌을 갖고 있지만, 실제 건축 인테리어는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태로 기획되었고, 내부공원들도 모두 프랑스 식이다. 어찌보면, 격동하는 시대 속에 형성된, 이슬람문명과 기독교문명의 역설적인 조화로움 (Ironical Harmony)이 아닐 수 없다. 사진 속에 담고 싶었떤 두 번째 균형점이다.
세 번째 균형점은 불과 몇 초만에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이 순간은 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일 것 같았다. 바로 돌마바흐체 궁전과 그 뒤에 있는 SUZER PLAZA 건물이 서로 맞물리는 순간이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지 않고, 현재가 과거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이것이 곧 이스탄불이었다.
지금의 터키는 이슬람국가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가장 온건하고 세속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도 극단적이지 않고 평화지향적이다. 오랜 시간 치고 박고 싸워온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지역에 살면, 사람들이 거칠어질 수도 있을텐데, 이들은 종교신념, 지역감정등보다는 함께 더불어 조화롭게 사는 삶을 택한 것 같다. 그런면에서 어쩌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우리나라가 참 배울 점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이기심은 평화 속에서도 파괴점을 찾으려고 애쓰나 이타심은 분쟁 속에서도 균형점을 찾으려고 힘쓴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이타심으로 생각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나와 우연히 생각이 같아도 이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도, 상대방의 중심을 보고 함께 가고자 힘쓴다. 하지만, 세상을 자기 유리한대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든 그들을 이용하려고 들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든 헐뜯고 힐난하기 급급하다.
우리가 균형을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종교나 이념과 같은 이데올로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생각이 달라도, 추구하는 것이 조금 달라도, 우리는 인간다움(Humanism) 이라는 동일한 가치 안에서 충분히 융합되고 함께 걸어갈 수 있다. 단지,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할 세력은, 그들이 겉으로는 어떻게 보이고, 어떤 것들을 주장하고 추구하는 것과 상관없이, 이기적인 검은 속내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비전은 자신과 이웃 모두를 위하는 꿈이지만, 야망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꿈이다. 철학(philo + sophy)은 원어 그대로, 만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학문이다. '사랑' 을 대변하는 철학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이타적인 마음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균형을 잃은 이유, 균형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구심점이 없어서다. 결국 철학이 없어서다. 결국 사랑이 없어서다. 탐닉이 아닌, 사랑을 하자.
사진 / 글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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