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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작가 Oct 08. 2020

#10. 무엇을 위해 고민하나요?

선택 그 자체보다는, 나의 내면에 집중할수록 고민은 가치를 갖는다.

이탈리아 로마, 2015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할 때 담은 사진이다. 천사의 성당 앞에서 두 명의 길거리 예술가가 있었다. 한 명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하는 음악가였고, 한 명은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이었다. 서로 분야(?)는 다르니까 경쟁상대는 아니었지만, 사람의 이목을 끄는 버스커로서 나름 경쟁을 하는듯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행위예술가가 눈에 더 띄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음악가에게 관심을 더 많이 주는듯했다. 역시 낭만의 나라 이탈리아라서 그런지, 이곳에서 낭만을 느끼고 싶어하는 여행객들이 많은 걸까. 자연스레 음악가의 동전박스는 채워져갔고, 반면에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행위예술가의 동전박스는 허전했다.


  그러던 중,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 있었던 여자아이가 두 버스커 사이에 선다. 관심은 음악가에게 더 있는 것 같았지만, 시선은 자꾸만 행위예술가를 향한다. 두 사람을 두고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더니, 음악가에게 발길을 돌리는 듯 싶더니, 다시 몸을 돌려 잽싸게 행위예술가에게 손에 쥔 동전을 건네주고는 쑥스러운 듯이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찰나의 고민의 순간, 아이는 과연 무엇을 위해 고민을 했던 것일까. 뭔가 모두가 음악가에게 나눔을 하고 있는 분위기였는데,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행위예술가에게 홀로 다가가는 것이 부끄러웠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에게 불쌍함을 느껴 그를 선택했을수도 있을지도 있겠다. 확실한 건, 아이 스스로 선택한 것에 쑥스러움을 느끼면서도 만족하는 얼굴이었다는 것이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산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살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선택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선택이라기보다는, 사회에서 정해놓은 정답대로 살아가는 것이 안전하다며, 그렇게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선택을 당하며 살아왔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는 길인데, 다들 그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해서 그런 줄 알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하지만, 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 아니면, 그 길은 아무리 걸어도 가치를 갖기 어려워졌다. 원하지 않으니, 마음을 쏟을 수가 없고, 마음을 쏟을 수가 없으니, 더 나은 생각 또한 떠올릴 수가 없다. 더 나은 생각을 떠올릴 생각이 없는데, 매일매일 가치의 기준이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과연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더군다나 세상의 흐름과 달리 가거나, 앞서갈 때 생기는 간극들이 우리에게 '가치' 로 다가올 때가 훨씬 많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걸 누구나 다 갖고 있으면, 상대적인 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천편일률적인 가치를 위해 미친듯이 달려왔던 것은 아닐까.


  누구나 고민을 한다.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없기에, 우리는 고민을 한다. 고민은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과정이다. 하지만, 고민은 나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동기이기도 하다. 그저, 내 마음 속에 기준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고민의 질과 가치가 달라질 뿐이다. 남들과 다른 고민을 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고민을 오래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마음의 중심만 명확하다면, 고뇌하는 모든 시간은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믿는다.


  사진을 시작한 이후로 생긴 가장 좋은 습관이 하나 있다. 좀 더 내가 좋아하는 것, 내 마음을 이끄는 것에 주목하고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고 지냈던 '나' 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 나는 이런걸 좋아했구나, 아, 나는 이런걸 힘들어했구나 라는 걸.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게 명확해지니,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내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도 조금 더 마음 편히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기준이 모호할 때는 그저 막연한 욕심에 남의 눈치만 보다가 시간만 흘려보내며 선택하지 못했었지만.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한 민박집 사장님에게서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이 왔다. 3개월동안 민박스탭을 하면서 사진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민박스탭일만 하다가 사진과 동떨어진 시간을 보내면 어떻게 하나 고민이 많았다. 당분간 다른 지역으로 여행도 갈 수 없어서 답답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이 됐다. 하지만 내 여행의 시작, 그 본질을 생각하면, 오히려 3개월간 숙식걱정없이, 피렌체라는 한 도시에 머물면서 사진을 찍는다는 건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고민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 지속되면, 그것은 내 마음에 정해진 것이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이 여행을 해야했던 나였기에, 오히려 더 본질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욕심같은 것이 내 안에 비집고 들어올 틈 조차 없었으니까. 만일 내가 돈 걱정하지 않고 여행을 할 수 있는 여행자였다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순간들이 없었다면, 돈이 없어야만 겪을 수 있는 이러한 소중한 경험들과 만남들을 절대로 겪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 글 이정현


#철학

#인문학

#고민의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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