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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작가 Oct 17. 2020

#18. 때로는 자세히 보지 않아야 비로소 보인다

기술은 쌓는 것이지만, 시선은 비우는 것이었다.

스페인 세비야, 2016

  

  다다익선,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호불호과 확실하지 않았던 성격이었다. 뭔가를 결정할 때도 우유부단했고, 시간을 끌기 일쑤였다. 그것이 학업이든, 사람에 관한 것이든간에. 그러다가 가끔 용기를 내서 결정하면, 밋밋한 행동 때문에 일을 그르칠 때가 많았다. 아시다시피, 어렵게 용기를 내서 움직였는데, 일을 그르치면, 사람은 더욱 더 의기소침해진다. 


  나는 용기가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행동을 똑부러지게 하지 못하는 사람인줄 알았다. 뭘해도 칭찬받기가 어려웠고, 오히려 비교와 비난을 받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나는 뭘해도 안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10대였다.


  하지만, 장시간 몰입할 수 있는 좋아하는 것들이 생기면서, 그간 생각해왔던 내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게임을 할 때는 누구보다도 결단력있었고,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에는 나름 시청기준까지 있어, 철저하게 분석하며 보는 습관이 있었다. 게임과 드라마를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레 그것과 관련된 영어를 쉽게 접하게 되었고, 나는 지금도 늘 영어를 게임과 드라마를 보면서 재미를 들였다고 말한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리 어려운 것들이라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핑계보다는 방법을 찾았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쏟아붓기 때문에, 안목과 기술은 시간과 정비례하며 좋아졌다. 물론 정체될 때도 있었지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성장의 가능성이 있는 무엇이었다면, (그것이 게임이든 운동이든)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 때문에 손을 때지 못했다.


  즐거움에 대해서 알기 시작한 후, 자연스레 누군가를 가르쳐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기타와 드럼을 치는 것이 내게 그랬고, 교회활동을 하면서, 정식적으로 커리큘럼까지 만들어 교육을 하기 했다. 그러면서 자신감이라는 것이 생겼다. 처음으로 나 또한 가치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시기였다.


  고2를 두 번 다닐 정도로 공부를 못하던 아이였지만, 두 번째 고2(?) 때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덕분에 중국에서도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랬지만, 20대부터는 스펙과의 싸움이었다. 재미와 즐거움으로 공부를 해왔는데, 어느 순간, 욕심을 내고 있었다. 멀쩡히 좋은 대학을 그만두고, 더 좋은 스펙을 위해 자퇴를 했다. 신분상승(?)을 위해 고시를 2년간 준비했고, 그 과정 속에 결국은 돈이 되는 것이 더 좋아서, 당시 돈이 되었던 영어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전공도 정치외교학에서 영문학으로 바꾸어 편입했다.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스펙이라면, 최대한 많이 땄고, 20대 후반까지, 2개의 외국어의 최고점대 증명서와, 한국사를 비롯한 다수 자격증을 갖게 되었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스펙을 갖췄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니, 현실은 막막했다. 취업시장은 더욱 더 치열해졌고, 사회는 더 많은 스펙을 요구했다. 어느 순간, 미친듯이 추구해오던 모든 것이, 단순히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기 위한, 스펙쌓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진 것은 많았지만, 뭐하나 제대로 활용하는 내 자신을 보지 못했다. 중국어는 더이상 쓸 데가 없고, 영어는 그저 학원 강의를 할 때 말고는 쓰는 일이 없었다. 취업을 할 것이 아니라면, 그 많이 따놓은 스펙들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대단한 스펙은 없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기록해온 친구들이 더 잘 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로봇이 좋아서, 20대 초반부터 간단한 로봇을 만들어 꾸준하게 블로그에 기록해왔던 친구는, 그것 외에는 아무런 스펙이 없는데, 관련 대기업에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입사를 했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친구 중 한 명은, 사람만나는 장사가 너무 좋아서 수년간 꾸준히 해왔고, 이미 20대 후반에 자기 이름으로 식당이 2개나 있었다. 


  그들보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많이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욕심에 열심히 쌓아오기만 했던 스펙들은, 적절히 활용할 수 없다면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만일 지나치게 스펙쌓는 것에만 열중하지 않고, 삶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면, 나 또한 나다움을 지키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위의 사진은 스페인 세비야에 있을 때 담은 사진이다. 세비야에서는 3개월간 살면서 스냅을 담았다. 아프리카를 가기 위한 준비였는데, 처음 스냅으로 돈을 벌어돈 시간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일상이 사람을 만나고 스냅을 찍는 거라, 막상 스페인 일상 사진을 담을 여력이 많이 없었다. 90일동안 세비야에 있었는데, 촬영을 한 팀이 88팀이었으니, 시간이 없을만도 했다. 그래도 사진으로 돈을 벌어보다보니, 자신감과 실력은 더 올라갔다.


  손님이 없는 어느날 오후, 그래도 세비야의 풍경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 간만에 홀로 출사를 나갔다. 사진에 대한 자신감이 마구 치솟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돌아다니면 역대급 사진들을 많이 남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옛날에 막연하게 사진을 찍을 때보다느 훨씬 디테일하게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오산이었다. 스냅을 많이 담으면, 스냅 실력은 올라가지만, 일상 풍경사진을 잘 담는 것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감만 불필요하게 올라가, 뭘 담아야할지 모르겠는 지경까지 온다. 물리적으로 찍으면 찍을 수 있겠지만, 뭔가 마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할까. 그렇다보니, 열심히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찍을 게 없다고 불평하는 내가 보였다.


  장비도 예전보다 좋아졌고, 스냅실력도 옛날보다 많이 개선됐다. 해외에서 스냅으로 돈도 처음 벌어봤고, 생활의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예전에 렌즈 하나로 힘들게 사진을 찍을 때는 보였던 '시선' 이 생기지 않았다. 왜 그랬던 것일까.


  수년 전, 그저 막연하게 앞만 보며 스펙만 쌓아오던 시절이 생각이 났다. 내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면서, 열심히 앞만 보며 살아왔던 시절들이었다. 놀랍게도,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 나온 여행 속에서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내가 보였다. 


  걷기를 멈추고, 이사벨 다리가 보이는 과달키비르 강가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그저 아프리카로 떠나기 위한 여비를 마련한다고 돈 벌기에 바빴던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예전에 아시아를 여행할 때, 오로지 여행지의 즐거움만으로 순수하게 사진을 찍던 시간들을 곱씹어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이 이사벨 다리 위에 딱 걸리는 장면이 목격된다. 카메라의 능력이 아닌 육안으로 보아도 다리 위로 걸어다니는 여행자들의 실루엣이 확연하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실루엣으로 담으니,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더 명확하게 보였다. 디테일을 없이 실루엣으로 담았더니 더 디테일한 사람들의 거동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실루엣으로 담지 않았더라면, 화려한 이사벨 다리와 더불어, 시선을 뺏는 것들이 많아, 위의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을 것 같다. 섬세한 것이 좋다고 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섬세한 성품은 까다로운 사람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키듯이, 섬세할 때는 섬세하고, 놓아두어야 할 때는 놓아두는 것이 지혜였다.


  무엇보다도, 세비야에서 3개월간 살면서, 그간 담은 사진 중, 위의 사진이 스페인 세비야의 뜨거운 여름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사진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줌이 되지 않는 50mm 단렌즈 하나로 여행하는 걸 좋아한다. 줌이 되지 않는 좁은 화각의 렌즈로는 분명 담을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옛날에는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 장비를 구입하는데 열중했다. 하지만, 시선이라는 것은, 장소와 장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시선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즉, 세상을 향해 하고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 곧 시선이었다. 내가 세상에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를 늘 간직하면서, 내가 가진 것들로만 집중하는 연습을 했을 때, 시선이라는 것은 넓어지기 시작했다.

 

  정보가 너무나도 많은 세상, 무엇이든 편리하게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막연히 무수한 정보와 보편적인 편리가 오히려 우리의 삶을 잡아먹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볼 일이다. 수천년 전보다 뛰어난 기술력과 정보력을 가졌는데, 지금은 저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깊이 있는 인물들이 나오기 더 힘들어진 것일까.


  막연하게, 욕심을 많이 낼수록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쌓는 것을 멈추고, 비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정말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고민해보자. 그것이 세상 속에서 나만의 시선을 갖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지 않을까. 때로는 자세히 보지 않아야 비로소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할 때와 그러지 않아야 할 때를 판단하는 것은, 정교하게 비우고 다듬어진 우리의 시선이다.


사진 / 글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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