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작가 Oct 20. 2020

#20. 나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시선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도 나를 향한 두 가지 시선은 늘 공존했다.

말라위 음주주, 2017


  나는 잘하려고 계속 노력하는데, 계속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들 때문에 힘든 적이 있다. 옛날에는 그런 부정적인 시선들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어 노력을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에 입맛에 맞게 행동하면, 오히려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그렇게 깜짝 놀라 다시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던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리면, 반대편에서 다시 공격을 해왔고, 결국 나중에는 줏때없는 박쥐같은 사람이라며 비난을 받게 됐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 저질렀던 과거의 실수였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편 저편에 서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쪽에 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그곳에 서있느냐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경찰은 사람들을 지켜주는 선한 존재로 여겨지지만, 나쁜 사람들에게 경찰은 그들의 기준에서는 '악한 존재' 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 것인가.




  아프리카 여행의 끝자락, 말라위의 작은 도시, 음주주에서 만난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서 인화해주고 싶어 다가갔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보통 사진을 주면 대부분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에, 습관처럼 다가갔다. 좋은 의도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낯을 가리는지 숨어서 나를 쳐다보았고, 여자아이는 나를 또 언제 봤다고 아주 편안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남동생은 나를 낯설어하는데, 누나는 나를 오히려 편안하게 바라보는 그 순간이 재밌어서 담은 사진이다. 사진을 찍어서 바로 인화해주니, 그제서야 남동생도 미소를 보이며, 뛸듯이 좋아했다. 나를 보며 피하려고 했던 것이 그저 낯설었다는 증거였다.



  

  나에 대해서 정보가 없어도 호의적인 사람이 있다. 나에 대해서 정보가 많아도 악의적인 사람이 있다. 단순히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나에게서 느끼는 지극히도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다. 이유없이 싫은 사람은 아무리 잘해도 싫고, 이유없이 좋은 사람은 못나도 모든 것이 용서가 되니, 사람의 마음은 정말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하는데, 어찌 모든 사람에게 사랑만 받고 살 수 있을까.


  바르게 살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너무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면, 한 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스스로는 수용하지 않고 바른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나는 철두철미한 시장조사와 나름의 가치판단으로 바른 투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가 계속 옆에서 더 좋은 것이 있다면서 그 돈을 더 좋은 곳으로 재투자한다고 유혹하면,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의도로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수많은 오해와 편견으로 뒤섞여 난도질이 되어있어도, 나의 마음의 중심과 그것을 지키며 맺어낸 열매가 결국 나를 있는 그대로 대변해준다고 믿는다.


  저 사람이 이렇게 얘기해서 내가 이렇게 행동했는데 실패했고, 이 사람이 저렇게 얘기해서 내가 이렇게 행동해는데 실패했다면, 그 실패의 원인은 나에게 조언해준 그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판단이 부족한 내탓이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남탓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본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늘 돌아볼 일이다.


사진 / 글 이정현


#철학

#사진

#해외여행

#인문학

#메타인지

#두시선

#남들이나를바라보는시선보다

#내스스로가나를바르게보는것이중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