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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Jan 14. 2020

또 하나의 여행: 이동하는 시간

II. 길 위에서

여행(旅行)이라는 단어의 뜻을 한자로 살펴보니, '나그네 려''다닐 행'이란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나그네처럼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자의 숙명이다. 물론 이번 여행 동안 마음이 동하면 한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기도 했지만, 떠남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고 이동은 그에 수반되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여러 번 육로로 국경을 넘었다. 태국에서 캄보디아로, 캄보디아에서 라오스로, 라오스에서 중국으로, 네팔에서 인도로... 그리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버스나 기차로 이동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장기 여행자에게 매번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은 사치이다. 기차나 버스로 열몇 시간씩 이동하는 시간은  비록 몸은 살짝 고되지만, 나는 이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다.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풍경, 그 풍경이 자극하는 여행에서의 추억을 되새기고,  그리고 무엇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을 정리하는데 안성맞춤인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주는 수단의 의미와 별개로, 이동하는 시간 자체가 설레고 즐겁다.


이쯤에서 내가 애정 해마지 않는 알랭드 보통의 유명한 구절이 떠오른다. <여행의 이유>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여러 번 이동의 경험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이동은 24시간 슬리핑 버스(Sleeping Bus)를 타고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서 중국 쿤밍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긴 이동 시간과 풍경의 뒤바뀜 속에서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내적인 사유가 술술 진행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장 24시간의 버스 타고 국경 넘기 대장정이 도래했다. 오우~ 시간만 보면 굉장히 힘들 것 같지만, 내 체감 상으로는 매우 수월하게 이동한 듯하다. 방콕-캄보디아, 캄보디아-라오스 국경 넘기에 비하면 너무 편하게 왔던 것이 도착 예정 시간도 딱딱 지키고(심지어 30분 일찍 도착함), 중간에 바가지나 속임수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 나라들에서 국경 넘기는 hell 그 자체였음)


이른 아침 툭툭(오토바이 뒤에 좌석이 마련된 개인택시 비슷한 이동수단)을 타고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 입구에서 승객으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중국어로 뭐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팅부동(못 알아듣겠어요)' 이러니 '팅부동?'한다. 그래서 내가 '워스한궈련.(저는 한국인입니다.)'라고 이야기하니 '아.. 한궈?' 라며, 내 표를 보더니 자리를 안내해준다. 들어와서 보니 예상보다 버스가 깨끗하다. 악취와 불결함에 대한 소문으로 기대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객관적으로도 이 정도면 매우 훌륭한 수준의 버스였다.


라오스  루앙프라방 - 중국 쿤밍 간 슬리핑 버스


라오스에서 중국 국경을 넘는 버스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국인들이었다. 유일한 한궈련..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내 앞 칸에 앉은 아주머니가 계속 말을 건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피아오량(예쁘다)" 뿐. "씨에씨에(감사합니다)"로 답한다. 그 외에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팅부동..부꿔이(못 알아들어요. 죄송합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오기 전 개미 똥구녕만큼 공부한 중국어마저 몇 개월 손을 놓았더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좀 더 하고 올걸... 대화가 안 통하니 아주머니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포기하신다.


라오스의 산골 풍경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다가 앉기는 포기하고 누운 채로 창밖을 바라본다. 전형적인 라오스의 산골 풍경이 펼쳐진다. 음악을 들으며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잠이 솔솔 온다. 터미널 비슷한 곳에 버스가 멈추어 선 듯하여 일어나 보니, 내려서 점심을 먹으란다. 라오스 폐인 킵은 이미 다 쓰고 없어, 혹시 중국 위안화를 받는지 물어보니 안 받는단다. 그다지 배도 고프지 않아 그냥 안 먹으려고 했는데, 중국 여행자 중 한 명인 '페이비'가 자기가 킵으로 바꿔주겠단다. (페이비는 다행히도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페이비가 위안 잔돈이 없어 환전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내가 괜찮다고 하니, 자신이 돈을 대신 내줄 테니 쿤밍 가서 갚으란다. 내가 솔직히 말해 돈 떼어먹을 것 같이 생기진 않았지만,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선뜻 돈을 빌려주는 이 친구가 무척이나 고맙다. 페이비가 먹고 있는 볶음밥을 시켜 먹는다. 더럽게 맛없다. 진짜 더럽게 맛이 없었다. 내가 워낙 식욕이 왕성하고 뭐든지 잘 먹는 편인데, 여긴 최초로 아니올시다였다. 이런데가 그렇지 뭐. 반 이상을 남긴다.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 두 분과 페이비, 그리고 또 다른 중국인 여자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버스가 출발하기 전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들이 주로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나는 그냥 듣고만 있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가리키며 뭔 말을 하는 거 같다. 그래서 내가 페이비에게 '이 아주머니 뭐라 하는겨?'라고 물으니, '네가 매번 웃고 있어 이쁘대. 눈이 반달눈처럼 된다고..' 아주머니에게 '씨에씨에'라며 감사를 표한다. 언어가 안 통하니 웃기라도 할 수밖에. 여행 중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바디랭귀지와 환한 웃음.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는 전 세계 어디 가나 통하는 속담이다. 페이비와 대화를 트고 나니, 그녀가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한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안내도 해주고, 내가 중국에 도착하는 때가 국경절이니 숙소도 미리미리 알아보는 게 좋을 거라고 귀띔을 해준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또 쿨쿨 잠에 빠져든다. 일어나 보니 라오스-중국 국경에 도착했다. 기사가 버스에서 내려서 출국심사를 받으란다. 어떻게 알아들었냐고? 이런 건 그냥 감으로 알아듣는다. 사람들을 따라 내려간다. 라오스 출국심사 사무실 앞에서 줄을 서 있는데, 기사 아저씨가 사람들에게 '한궈련, 한궈련'이라 말하며, 나를 맨 앞줄로 데려다준다. 사람들도 군말 없이 '시더 시더..(그래, 그래)'라며 웃는다. 가뿐히 출국심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중국 국경에 입성했다. 이번에는 모든 짐을 다 내려서 입국심사장에 들어간다. 방금 통과한 라오스 출국장과는 그 위용부터 다르다. 공항 같은 삐까뻔쩍한 건물에 면세점까지 갖추어져 있다. 공안이 다가와 짐을 열어 검사를 하고, 보안 게이트를 통과해 입국 절차를 밟는다. 이렇게 기사 아저씨의 특별 호위를 받으며 입국 절차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탑승한다. 드디어 중국에 왔구나. 그래도 아직 쿤밍까지 도착하려면 14시간이나 남았다. 참으로 먼 길이다. 창 밖으로 무지개가 보인다. 중국에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무지개


이렇게 육로로 국경을 넘으며 생각해 보니,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문득 인식 속을 파고든다. 문득 <여행할 권리>의 저자 김연수의 문장이 떠올랐다.

국경에 가서 아무런 사상의 전환 없이도, 혹은 어떤 권리도 포기하지 않은 채 내 다리로 월경(越境)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내 발로 국경을 넘는 그 기분은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것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 이번 여행에서는 비록 타국에서 타국으로의 월경(越境)에 국한되었지만, 만약 내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의 경계선을 내 두 발로 넘는 느낌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경계선을 눈으로 보고 그것을 자신의 발로 뛰어넘는 행위는 어쩌면 사유의 월경(越境)과도 연결될 수 있을 듯한데, 삼면이 바다이고 한 면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내 나라의 사람들에게 혹여 사유의 월경이 부족하다면 일부분 이런 국경의 가로막힘이 일조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 본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고등학교 사탐 문제에서 세계지도를 거꾸로 돌려놓고 우리나라가 반도 국가가 아니라 환태평양 시대에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취지로 한 문제가 출제된 기억이 났다. 어떻게든 반도 국가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발악이었으리라. 발악이라고 하면 너무 서글프니 노력이라고 해두자. 어쨌든 통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이 순간은 통일이 되어 기차를 타고 중국이든 러시아든 국경을 넘어 여행하는 상상을 해 본다.


중국으로 넘어오니 라오스와 달리 길이 엄청 잘 깔려 있다. 중국을 라오스와 같은 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이제 무리이겠지. 잘 포장된 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저녁 6시 반쯤 도착한 곳은 '멍라'라는 작은 도시였다. 여기서 '징홍'이라는 지역으로 갈 사람들은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쿤밍으로 갈 사람들은 8시까지 저녁을 먹으란다. 나와 같이 쿤밍으로 가는 페이비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토마스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나는 이들을 졸졸졸 쫓아다니며, 시켜주는 대로 밥을 먹는다. 요리를 몇 개 시켜 함께 나누어 먹었다. (나중에 쿤밍에서도 이들과 하루를 함께 보내며, 따뜻한 정과 도움을 받게 된다.)


멍라 풍경. 남쪽이라 야자수가 즐비하다.


저녁을 먹고 페이비, 토마스와 멍라를 둘러본다. 토마스가 내 걱정을 한다. 중추절과 국경절 기간에 중국 윈난에 가게 되면 관광객도 많고, 방값 비싼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방 구하기도 힘들 거라고 말이다. 중추절과 국경절에 대해 모르던 바는 아니었으나, 막상 알아본 방값이 2배가량 뛰는 것을 알게 되니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중국의 대명절인 중추절과 국경절 풍경과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기회이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약간의 흥분과 설렘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8시가 되자 멍라에서 쿤밍으로 가는 새로운 승객을 더 태운 버스가 출발한다. 이제 본격적인 밤 버스의 여행이 시작되는 것. 밖은 어두워지고 낮에 읽던 e북도 읽을 수 없게 되자, 이어폰으로 정엽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다. 누워서 보이는 창밖에는 푸른빛이 어렴풋이 감도는 어두운 하늘에 무수한 별이 반짝인다. 이 순간은 이 우주에 오직 나 혼자만 있는 느낌이다.  알 수 없는 묘한 감동이 밀려온다. 그 감동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창밖을 주시한다. 버스는 너무나 순조롭게 달려가는 가운데 어느새 또 잠이 들었다. 중간에 한 번쯤 버스가 선 것 같은데, 눈이 떠지지 않아 내리지 않고  잠에 빠져든다.

화장실이 급해질 즈음 또다시 버스가 섰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몰려가는 화장실로 발길을 따른다. 화장실 입구인 천막을 걷고 들어가니 칸막이도 하나 없는 곳에 대여섯 개의 푸세식 변기 칸이 마련되어 있다. 허거걱. 순간 당황한다. 이미 안쪽 몇 칸은 아주머니들이 점령하고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고 있었고, 광저우에서 온 페이비도 약간은 낯설었는지 0.03초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바로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기 시작한다. 나는 아무래도 안될 거 같아 참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내 방광이 내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봐, 그러다 내가 터지면 너 책임질 거야? 그냥 여기서 싸!"

그래 방광의 이야기도 일리가 있었다. 어차피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지금 뭐가 대수냐. 생리적 현상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캄보디아에서 라오스 넘어갈 때도 들판(이른바 Natural Toilet)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보던 너 아니었더냐. 바로 쭈그려 앉아 나의 방광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 방광이 나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잘했어!"


다시 버스에 탑승하고 얼마간 길을 가다 버스가 멈추고 공안들이 들어와 검문을 한다. 나도 주섬주섬 가방 속에서 여권을 꺼내어 손에 쥔다. 살벌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내 차례가 되자, 공안이 내 얼굴에 플래쉬를 비춰보고 여권을 받아간다. 그런데 무시무시할 줄만 알았던 공안님의 얼굴이 너무너무너무 앳되고 귀여운 것이다. 짜식 호감형인데...'한궈, 한궈~'하며 씨익 웃는다. 뭐라 뭐라 중국어로 말하자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건너편 2층에 있는 토마스를 가리키며 걔한테 물으라는 식으로 말한다. 토마스랑 뭐라 이야기하더니, 내게 여권을 되돌려준다. 공안이라는 기관이 공포스러운 것이지 그 집단 안의 개인은 개인일 뿐임을 새삼 느낀다.


버스는 다시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뚫고 길을 달린다. 또다시 잠이 들고 (그렇게 자고도 참 잘 잔다.), 살짝 추위가 느껴질 즈음 버스가 서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기사 아저씨에게 다가가 '쿤밍? 쿤밍?'이라고 물어보니 맞단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반이다. 예정 시간인 7시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동남아에서 매번 정시에 도착한 적이 없었던 터라, 완전 감동이다. 이렇게 장장 24시간을 달려 중국 쿤밍의 새벽이슬을 맞는다. 고될 것이라 예상했던 24시간을 매우 편하고 수월하게 보내며 중국에 도착하게 되어, 매우 산뜻한 기분으로 중국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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